[온누리]황진장군로
칼럼
새전북
2026년 06월 25일 16:46
승인
2026년 06월 25일 20:29
남원시는 주요 도로 '서부로'를 '황진장군로'로 이름을 바꾸고 도로표지판 교체를 완료했다. 황진장군로는 광치동 방자교차로에서 금지면 금곡교까지 약 18km 구간의 자동차전용도로로, 10개 교차로를 통해 연결되는 남원의 핵심 교통축이다.
도로명 변경은 남원 출신 역사 인물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 1550~1593)장군을 재조명하고 지역 정체성과 역사성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다. 장군은 조선시대 대표 무장으로 '해전에는 이순신, 육전에는 황진'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공훈을 남겼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낮은 인물로 꼽힌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공을 세운 황진장군, 산서(山西) 조경남(趙慶男, 1570~1641)장군과 청계(靑溪) 양대박(梁大樸·1543~1592)의병장은 남원의 3웅(三雄)이라 불리운다. 장군은 조선초기 명재상 황희의 5대손으로, 남원 주생면 출신이다.
임진왜란 당시 웅치·이치 전투에서 2000여 명 남짓 병력으로 3만여 일본군을 막아 전라도를 지켰다. 이 전투는 임진왜란 첫 육상 승전보로 전세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북 기념물 '이치전적지(梨峙戰蹟地)는 완주와 금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로, 임진왜란 때 광주목사 권율(權慄)과 동복현감 황진(黃進) 장군이 관군 1,500명과 함께 적장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부대를 격퇴함으로써 임진왜란의 첫 승리를 장식한 전적지이다. 이치전투는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권율의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치전투는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진 웅치전투와 더불어 왜적의 기세를 꺾어 전라도 땅을 침범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유재란(1597) 때까지 7년 동안 군량보급과 병력보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후 죽산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는 등 육상에서 큰 공훈을 세웠지만,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충청도 병마절도사로서 끝까지 항전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장군의 공훈은 조정에서도 인정받아, 남원 대산면에 부조묘(不祧廟)가 세워졌다. 부조묘는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의 신주를 왕이 허락해 영구히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장군의 위업을 기리는 상징적인 장소다.
이와 함께 시는 주소행정 고도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시는 국악의 본고장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송흥록 생가와 국악의 성지를 잇는 2.2km 구간에 '송흥록길' 명예도로명을 부여했다. 명예도로명은 실제 주소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지역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춘향가와 흥보가의 배경이 된 남원에서 ‘가왕’ 송흥록(宋興祿, 1801~1863)은 산유화조를 개발하고 진양조를 완성하며 판소리를 민족예술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통상 동편제의 계보는 송흥록-송광록(동생)-송우룡(아들)-송만갑(손자)으로 이어진다고 알려져 왔다. 예부터 운봉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인 옥보고가 거문고를 크게 발전시킨 곳(운상원)이자 송흥록, 송만갑, 김정문, 이중화선, 박초월, 강도근, 안숙선 등 수많은 명인 명창을 배출한 곳이다.
이곳에서 송흥록에 의해 동편제가 창시되었으니, 그야말로 판소리의 성지이자, 명실공히 판소리 동편제 탯자리다. 그도 그럴 것이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국창 송흥록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인간문화재였던 박초월(1916∼1984) 명창의 소리의 고향이다. 국악의 성지에서는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초·중·고·대학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국악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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