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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옥창준 칼럼] 흔적의 한국학

답사의 계절이다. 학생들과 어디를 찾아가 볼지 생각할 때면, 내 후보지에는 늘 서울 구기동의 이북5도위원회, 흔히 이북오도청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이곳을 생각할 때면 ‘흔적 기관’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생물의 몸에 남은 흔적 기관은 현재의 모습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준다.

[옥창준 칼럼] 흔적의 한국학

한국학 의미있는 곳 ‘이북오도청’

중앙연구소·고전번역원 등 통합

서로 다른 일을 모으는 것보다

독립적으로 남아야하나 살펴야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답사의 계절이다. 학생들과 어디를 찾아가 볼지 생각할 때면, 내 후보지에는 늘 서울 구기동의 이북5도위원회, 흔히 이북오도청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이곳을 생각할 때면 ‘흔적 기관’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생물의 몸에 남은 흔적 기관은 현재의 모습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준다. 분단 이전의 행정구역인 ‘오도’를 유지해온 기관명에는 언젠가 달라질 한반도의 모습을 상정했던 기대가 담겨 있다.

한 개인을 이해할 때도 무엇을 선택했는가보다 무엇을 끝내 버리지 못했는가가 그 사람을 더 잘 설명할 때가 있다. 공동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기관은 당장의 쓰임을 넘어 공동체가 어떤 미래를 상상해왔는지를 후대에 남긴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나는 이북오도청을 매우 의미 있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한국’이 어디까지인지를 묻게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문학 연구에서는 한국문학의 경계를 폭넓게 확장하는 논의가 이어져 왔다.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인 디아스포라 문학을 한국문학의 범주 안에 넣으려는 시도도 그중 하나다. 한국문학의 범위가 디아스포라 문학까지 넓어지는데, 정작 북한은 한국학 바깥의 별개 영역으로 밀려나고 있다. 한국학이 세계로 확장되고 있지만, 오히려 축소되고 있기도 하다.

남북을 따로 연구한다고 해서 분단 이전의 역사까지 따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북한사를 남한의 역사와 무관한 별개의 역사로 읽을 수 있을까? 북한사가 한국사가 아니라 아시아사의 일부로 다루어진다면 어떨까? 분단 이후의 변화도 상대편과의 관계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분야를 나누더라도 그 관계를 읽는 시야까지 좁아질 필요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북오도청은 매우 흥미진진한 상징투쟁의 장소가 된다.

한국학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가는 무엇을 한국의 역사와 고전이라고 부를 것인지를 정하는 출발점이다. 한국의 역사와 고전은 이미 완성된 목록이 아니다. 그 목록은 한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며, 더 구체적으로는 자료를 모으고 읽고 가르치며 배우는 사람들의 손을 거친다. 한국학을 배우러 온 외국인 유학생이 늘어나면 그들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한국학을 바라보는 시야 역시 달라진다.

이 점에서 정부가 최근 발표한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고전번역원·동북아역사재단의 통합 추진안 역시 단순 조직 개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세 기관은 모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지만, 맡은 일의 중심축은 다르다. 고전문헌을 모으고 번역하는 일, 동북아의 역사 현안을 연구하는 일, 한국학의 자료를 축적하고 연구와 대학원 교육을 이어가는 일은 서로 연결될 수는 있어도 같은 일은 아니다. 서로 다른 일을 한데 모으는 것보다 각각의 일이 어떻게 이어지고 무엇은 독립적으로 남아야 하는지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나라살림의 ‘다이어트’를 논의할 때에도 무엇을 줄일 것인가만 물을 수는 없다. 동시에 무엇만큼은 줄여서는 안 되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물론 기관의 이름과 역할은 바뀔 수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2005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꾼 지도 20여 년이 지났다. 같은 이름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조건을 꾸준히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처음 이북오도청을 언급하면서 과거의 사람들이 남긴 기대를 말했다. 그렇기에 그것은 꼭 과거만의 일이 아니라 현재에 비추어 미래를 해석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먼 훗날 누군가가 운중동의 지금 이 자리를 바라보며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통합 추진 과정에서도 이런 질문들이 놓일 자리가 있었으면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국내외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과거가 남긴 흔적을 미래의 관점에서, 세계의 시야로 다시 읽어나가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이 어디까지인지 한번 생각해보고 싶다면 구기동의 이북오도청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운중동의 한국학중앙연구원도 좋겠다. 어떤 장소가 왜 남아야 하는지, 남아서는 안 되는지를 살펴보는 일도 한국학을 공부하는 한 좋은 방법일 테니 말이다.

/옥창준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 정치학 조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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