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재정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나왔다. 내년도 본예산에 시청 본청 공무원 인건비를 고작 8.5개월분만 편성했다. 나머지 3개월여분은 추가경정예산으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공무원 급여처럼 예측 가능한 필수 경비조차 본예산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정상적인 재정 운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조상호 세종시장이 4일 발표한 2027년도 본예산은 2조1579억원이다. 올해보다 750억원 늘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딴판이다. 법정·의무지출 비중이 66.2%에 달하면서 시가 정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예산 총액이 늘었다고 재정 여건까지 나아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필수 지출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재정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종시 재정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취득세 등 자체 세입은 줄어드는 반면 행정수도라는 특성상 공공시설물 관리와 각종 행정 수요에 따른 고정 지출은 계속 늘고 있다. 세입 기반은 취약한데 지출 구조는 경직돼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적 한계를 알고도 그동안 재정 체질을 개선할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시는 60여 개 사업을 폐지하거나 유예해 109억원을 절감하고 교육청 비법정전출금 200억원을 조정했다. 무상급식비 159억원을 삭감하고 시정 4기 핵심 사업인 이응패스도 폐지하기로 했다. 공무원 연가 보상과 건강검진 지원까지 축소했다.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이라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 복지와 교육, 교통 혜택을 줄이는 방식의 긴축만으로 재정난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한쪽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혼인지원금 20억원, 아이맞이 지원금 61억원, 기업 투자유치 보조금 178억원 등 신규·확대 사업을 추진한다. 저출생 대응과 기업 유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업의 우선순위와 지속 가능성을 얼마나 엄밀하게 검증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일회성 지원금이나 보조금 확대가 실제 인구 유입과 산업 기반 확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특히 공무원 인건비를 추경에 의존하는 예산 편성은 재정 운용의 경고등이다. 추경은 예상하지 못한 세입·세출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지, 처음부터 부족할 것을 알면서 필수 경비를 미뤄두는 재정의 안전판이 아니다. 향후 세입 여건이 개선되지 않거나 예상한 국비 지원이 차질을 빚는다면 인건비 부족 문제는 고스란히 현실이 될 수 있다. 본예산의 책임을 다음 추경으로 넘기는 방식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조 시장은 관행과 중복을 줄이고 시민의 일상과 안전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말보다 재정 운용의 우선순위와 실행 가능한 대책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불요불급한 사업을 가려내는 데 그치지 말고 세입 확충과 세출 구조 개선, 공공시설 관리비 부담 완화를 위한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까지 해법을 찾아야 한다. 행정수도라는 국가적 과제를 떠안은 세종시에 그에 걸맞은 재정적 책임을 중앙정부가 분담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시장의 몫이다.
재정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시정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다. 공무원 월급조차 추경에 기대야 하는 현실은 세종시 재정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 예산 규모를 키우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이고 어디에 투자할지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도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미래 세대에 빚과 부담을 넘기지 않겠다는 조 시장의 약속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재정 위기의 원인을 직시하고 책임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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