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석 문화예술작가
AI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이미 우리의 곁에서 생각하고, 만들고, 심지어 감정을 흉내 낸다. 음악조차 몇 번의 클릭으로 생성되고, 분위기와 스타일까지 선택할 수 있는 시대다. 기술은 인간이 오랫동안 쌓아
온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피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대신해주는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반드시 지켜내야할 것은 무엇인가.
최근 공연계의 흐름은 장르를 막론하고 점점 더 감정이 형성되는 순간과 흐름을 관객이 직접 경험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연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영역이 어디
인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기술이 계산과 생산을 담당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느끼고 해석하는 존재로서의 역할을 더욱 요구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감정이 더 이상 자연스럽게 길러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거에는 느린 시간 속에서 감정이 쌓였다. 반복되는 일상, 긴 호흡의 관계, 기다림이 전제된 경험들은 감정을 숙성시키는 토양이었다.
감정은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머물고, 되새겨지고, 해석되면서 깊이를 얻었다.
지금은 정반대다. 정보는 짧아졌고, 반응은 즉각적이며, 감정은 자극을 따라 빠르게 소모된다. 우리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강한 감정을 경험하는 일은 많아졌지만, 그것을 곱
씹고 이해하는 시간은 사라졌다. 감정은 폭발하지만 축적되지 않고, 공감은 발생하지만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이해는 깊어지지 못하고 단순한 판단으로 축소된다.
이 변화는 특히 아이들에게 치명적이다. AI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질문을 오래 붙잡는 데는 서툴다. 감정을 느끼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다
루고 해석하는 경험은 부족하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 평가하고 분류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효율적인 인간은 얻을지 몰라도, 공감하는 인간은 잃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예술교육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우리는 더 많은 지식을 전달할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이 느끼는 능
력을 길러줄 것인가. 지금까지의 교육은 전자에 가까웠다. 음악조차 기능과 평가의 영역으로 축소되었고, 예술은 결과 중심의 성취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은 감정을 다루는 데 있다. 타인의 이야
기를 듣고, 그 감정을 자신의 내면에서 다시 살아보며,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 이 반복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한다.
이 지점에서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우리는 AI를 속도를 높이는 도구로만 사용해왔다. 더 빠르게 배우고,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 반대의 방향이 필요하다.
AI를 감정을 '느리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음악을 여러 방식으로 반복 경험하게 하거나, 같은 장면을 다른 관점에서 재구성하게하고,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고 다시 돌아보게 하는 방식은 모두 AI를 통해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기술
활용이 아니라, 감정을 머물게 하고 숙성시키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감정은 강도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깊어진다. 그리고 그 시간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사라진다.
결국 AI 시대의 교육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더 빠르게 갈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이 들어갈 것인가. 기술은 이미 충분히 빠르다.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를 늦추고, 감정을 붙잡고, 그것
을 이해하는 힘이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효율적인 인간을 키울 것인가, 아니면 공감하는 인간을 키울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교육에서 결정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이미 충분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느림을 회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송현석 문화예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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