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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예술과 오늘]생존과 이야기

2038년, 지구의 인류는 절반만 살아남는다. 폭염과 가뭄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동시다발적 산불로 숲이 사라지며,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 도시들이 잠기는 등 극단적 기후변화가 빚어낸 결과였다. 그해, 미국 애리조나의 한 기밀 실험기지 앞에는 7인의 생존자가 모여든다.

[예술과 오늘]생존과 이야기

2038년, 지구의 인류는 절반만 살아남는다. 폭염과 가뭄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동시다발적 산불로 숲이 사라지며,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 도시들이 잠기는 등 극단적 기후변화가 빚어낸 결과였다. 그해, 미국 애리조나의 한 기밀 실험기지 앞에는 7인의 생존자가 모여든다. 생존 의지 하나로 광활한 사막을 건너온 자들이었다. 그들은 굳게 닫힌 실험기지의 문을 열고 생존을 위한 임무를 완수해야만 한다.

EBS ‘과학 생존 리얼리티’ <최후의 인류>는 이 같은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SF 세계관으로 출발하지만, 7인의 생존 실험은 매우 현실적으로 진행된다. 기밀 기지는 실제로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생태계 실험 시설이고, 7인이 수행하는 미션 역시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고 생존을 지속하기 위한 과학적 프로젝트였다. <최후의 인류>는 그렇게 다큐멘터리, SF, 리얼리티 서바이벌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으로 눈길을 끈다. 지난달 4일 넷플릭스를 통해 동시 공개된 뒤 국내 시청 순위 4위까지 올랐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서 꽤 의미 있는 성취다.

더 흥미로운 것은 출연자 구성이다. 흔히 생존 리얼리티 장르는 극한 환경을 힘으로 개척해가는 신체 능력자 혹은 의식주와 같이 기본적인 생존 조건에 특화된 전문가를 선호한다. 그런데 <최후의 인류> 출연진은 성격이 좀 다르다. 지구과학자 김한결, 화학자 장홍제, 뇌과학자 장동선, 전문의 출신 작가 이낙준, 배우 유승호, 코미디언 이은지, 가수 비비 등 과학자와 대중예술인들로 구성되었다. 이는 <최후의 인류>가 단순히 ‘사막에서 살아남기’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 측면에서 이낙준 대원의 역할이 사뭇 인상적이다. 작가인 그는 그동안 생존 리얼리티 장르가 주목하지 않았던 ‘이야기’의 힘을 일깨운다. 임무를 수행할 때는 항상 그 뒤의 의도와 전체 구조를 읽어내려 애쓴다.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지가 폐쇄되는 긴급 상황에서 스토리텔링 능력이 무슨 소용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위기 상황일수록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바로 여기에서 ‘이야기’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야기는,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인식의 좌표 역할을 함으로써 출구를 향해 나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후의 인류> 각 미션은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최초의 미션은 생존 기지의 정확한 좌표를 찾아 문을 여는 것이었다. 기지의 ‘폐’를 찾아 기압을 조절해야 하는 2화의 미션에서는 흩어진 퍼즐 조각이 단서로 등장한다. 조각을 다 맞추면 실험기지의 지도가 그려진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기지에 모여든 이들은 기지 전체의 지도를 완성해가면서 차츰 생존 너머의 의미와 목적을 파악하게 된다.

1화, 기지 입성에 성공한 생존자들이 보상 시스템에 의해 미스터리 박스를 하나 얻는 장면이 등장한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조심스레 문을 열었을 때, 안에서 맥주 한 캔이 나온다. 모두가 맥주를 한 모금씩 나눠 마시는 동안 생존 실험의 궁극적 의도에 대해 해석한 이낙준 작가의 말이 인상 깊다. “세상이 망하기 전 인간이 누렸던 향수를 느끼게 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단순히 생존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 일곱 명이 행복한 이야기로 귀결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판도라의 상자 아래 남은 희망처럼, 혼돈의 상황에서도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 이야기의 힘 아닐까.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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