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고브릭 실눈뜨기] 월드와이드 흥행 7억 달러를 돌파하며 순항 중인 영화 <마이클>의 관객은 누구일까 떠올려봤다. MZ들이 밈으로 소비되던 시대의 아이콘을 확인하기 위해 쇼츠와 릴스를 떠나 극장으로 향한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이런 젊은 관객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팝의 황제가 군림하던 제국의 신민들일 것이다. 킹 오브 팝이 내놓았던 끝없는 히트곡에 열광하고, 문워크를 따라하려 길바닥이며 어디든 신발을 끌었던 세대의 경험은 어떤 광고보다 효과적인 프로모션이다.
<마이클> 주요 관객층이 공유하는 또 따른 경험은 부채감 혹은 죄책감일 거다. 지금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되지 않아도 마이클 잭슨의 음악만은 전 세계의 실시간 공용어였다. 그를 둘러싼 가십과 루머는 음악보다 더 빠르고, 어쩌면 더 강하게 퍼졌다. 황색언론을 통해 재생산된 왜곡된 이미지를 검증하거나 선별해서 판단하기에는 매스미디어가 가진 힘이 너무 강했고, 대중들의 미디어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한 시대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사망 소식에 의한 동정심. 사후에도 이어지는 미담을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한 재평가 등은 죄책감과 부채감을 동정심으로 연결됐다. 조던 챈들러와의 합의문에서 발견된 조항 때문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줬던 아동성추행 논란을 언급할 수 없어서 3막을 재촬영했다는 후일담이 있지만 1, 2부로 나뉜 것치고도 전기영화로서의 밀도감을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란 인물에 대한 가치판단을 마친 관객들이 영화표를 끊는 데는 문제가 없다. <마이클>의 기획 의도도 관객들의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듯 보인다.
영화 '마이클' 스틸이미지
마이클과 아티스트를 소거한 VCR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마이클>은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잭슨5로 데뷔한 5살부터 Bad 투어가 시작되는 1988년까지 25년의 세월을 담아야했고 러닝타임은 빠듯하다. 마이클이 극복했던 문제들은 한 편의 공연에서 다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의상을 갈아입거나 무대구성을 바꾸기 위해 준비되는 VCR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개봉일에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지인들에게 추천할 때 마이클 잭슨에 대한 유튜브 클립을 함께 보내야 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물론 큰 맥락은 존재한다. 아버지 조셉의 폭력과 통제다. 잭슨가의 여덟번째 아이, 그룹 잭슨5의 메인보컬로 영원히 주저앉히려던 조셉의 욕심과 달리 마이클은 한 명의 온전한 성인이자 아티스트로 발돋움하려 한다. 평범한 청소년의 삶을 빼앗긴 마이클의 상실감과 외로움도 강렬한 서사의 하나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마이클이 존 브랑카를 변호사로 고용하고 팩스로 해고를 통보하며 너무 부드럽게 해소된다.
조셉의 해고 후 [Thriller] 앨범이 발매되고 문워크를 선보이며 대중문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로 꼽히는 모타운 25주년 공연의 ‘Billie jean’ 무대 이후는 사실상 A면을 반복하는 오토리버스다. 세계적 슈퍼스타가 됐지만 마이클은 여전히 성인으로 독립하지 못한 채 조셉에게 휘둘린다. 펩시 광고 촬영 중에 벌어진 치명적 사고, 오로지 잭슨스의 브랜딩을 위해 동원된 빅토리 투어가 극의 후반에 사용되는 VCR이다.
마이클은 끔찍한 화상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펩시의 보상금을 어린이병원에 기부하며 빅토리 투어에 참여하겠다고 밝힌다. 그리고 북미 투어의 마지막 공연장인 LA에서 ‘이 공연이 잭슨스의 마지막이다’라고 깜작 선언을 한다. 예상하지 못한 조셉의 표정을 대비하며 통쾌함을 선사하지만, 이는 극의 전개를 통해 갈등이 해결되어 자연스레 발산되는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마이클의 삶의 궤적을 선행 학습했기에 따라오는 정보의 재확인에 따른 만족감에 가깝다.
영화 '마이클' 스틸이미지
<마이클>은 성인이 아닌 마이클을 위해 삶의 일부를 강조하거나 지워버린다. 꾸준히 등장하는 ‘피터팬’의 이미지는 훗날 짓고 생활하는 네버랜드의 복선이기도 하지만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아이들의 직접적인 상징이다. 안무와 가사, 무대연출 등에서 강하게 드러나는 성적 메타포들은 소거된다. 본인의 요청으로 삭제된 첫사랑 다이애나 로스를 비롯해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자라며 겪을 감정들은 아이들을 위한 무한한 사랑, 침팬지 버블스와 동물들에 대한 애정으로 대체된다.
어쩌면 가장 큰 비중으로 다루었어도 될 예술가의 고민마저 흔적기관처럼 남아 있다. 마이클의 재능을 알아보고 스타로 만들어준 모타운을 벗어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처럼 자신의 곡을 쓰고 앨범에 수락하는 걸 허락하지 않는 베리 고디와의 갈등 탓이었다. [Thriller] 앨범의 목표로 1억 장 판매를 세운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핫 100 차트 TOP 10에 네 곡을 올린 최초의 솔로 아티스트가 된 [Off the wall]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래미에서 R&B 남자 솔로 부분만 수상한 푸대접 탓이라는 걸 영화에서는 알 수 없다.
MTV에서 ‘Billie Jean’ 뮤직비디오를 틀어달라는 요청이 단순히 [Thriller]의 판매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자 목표였을까. 1981년 8월 개국한 MTV 기준으로 헤비 로테이션은 하루에 다섯 번 내보내는 것인데, 1983년 3월 처음 송출된 Billie Jean 이전에 헤비 로테이션된 흑인 뮤지션의 비디오는 뮤지컬 유스(Musical Youth)의 Pass the dutchie, 프린스(Prince)의 1999 정도였다. 오죽하면 영국 뮤지션인 데이빗 보위(David Bowie)마저 MTV의 인종차별을 성토했을까. 흑인 뮤지션들의 대우를 바꾼 대사건은 <마이클>에서는 빌보드 차트 1위 곡을 틀어주지 않는 가벼운 에피소드 하나로 그친다.
영화 '마이클' 스틸이미지
You got to be startin' somethin'
파블로 피카소는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을 남겼다. 1985년 We are the world 녹음 스튜디오에서 마이클은 블루아이드소울 듀오 홀 앤 오츠(Hall And Oates)를 만난다. 그리고 Billie Jean의 전설적인 베이스라인을 I Can’t Go for That (No Can Do)에서 따왔다고 대릴 홀(Daryl Hall)에게 고백한다. 한 인터뷰에서 대릴 홀은 그때의 마이클의 고백에 대해 ‘전혀 몰랐다’며 ‘자신들도 다른 사람 노래를 많이 훔쳤다’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영화 <마이클>은 위대한 아티스트를 훔치려는 야심보다 어떻게 해야 그를 더 완벽히 모방할 수 있는지 고민한 듯 보인다. 저메인 잭슨의 아들인 조카 자파르 잭슨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삼촌의 아우라까지는 훔칠 수 없었으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이클 개인의 삶과 아티스트적 고민의 선택적 소거는 관객으로서는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영역이나 제작진이 나서서 ‘우리 잭슨 착하고 순수한 아이예요’라고 외치는 건 다른 층위의 문제가 된다.
4곡의 메들리가 나오는 <마이클>의 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상영관을 나오며 거친 표현이지만 뇌리를 떠나지 않는 키워드는 ‘돌돔 매운탕’이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둘도 없을 IP임을 생각한다면 더 잘 해낼 수 있는 부분들이 떠오르는 영화다. 마이클의 가장 친한 가족이자 역시 슈퍼스타인 자넷 잭슨이나 딸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과 대비되게 생전 마이클과 대립했던 가족이나 지인들이 제작진으로 참여해 마이클을 위하는 척 자신들의 과오를 세탁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에도 일견 공감은 간다.
영화 '마이클' 스틸이미지
하지만 Wanna Be Startin' Somethin'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에서 ABC, I’ll be there, Ben 등을 거쳐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Rock With You를 지나 Beat it, Thriller, Billie Jean로 정점을 찍고 Bad로 마무리 되는 역사적인 공연 목록을 거부할 수 있는 음악팬은 드물다. 음악팬이 아니라도 대중음악의 정점을 찍은 아티스트의 삶은 스케치만으로도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메이킹 필름으로 수백만 카피가 판매되고 유튜브에서 어느 때고 풀 버전을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지만 제작 과정을 느끼고 싶다는 소망은 히트곡을 알면서도 공연장을 찾는 마음과 같다.
히트곡을 모르고 가는 콘서트는 드물다. 내가 사랑하는 노래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까지가 공연 목록의 일부다. 마이클의 음악을 함께한 가족과 친구들. 영화관에서 만나는 이름 모를 옆자리 관객. 닉네임만 확인되는 유튜브 댓글의 주인공들과 함께 그를 추억하는 콘서트는 매 순간이 하이라이트다. 비록 살코기는 다 발라먹은 뒤라도 서더리로 끓인 매운탕을 먹어야 한 끼의 식사가 끝나듯, 거부할 수 없는 한 끼로 배를 채우고 유튜브로 그의 흔적들을 찾는 ‘마이클 잭슨 마라톤’을 시작하자(You got to be startin' somet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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