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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연재] 도시가 헤어졌다··· 부부도시 부평과 부천

카카오 지도나 네이버 지도에서 '부부다리'라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부부교는 서로 살가울 때 계획됐고, 사이가 나쁠 때 공사하고 완공됐다. 예전 같으면 함께 모여 준공식을 열고, 서로와의 협력을 기뻐했을 것이다. 이...

[연재] 도시가 헤어졌다··· 부부도시 부평과 부천

‘사진 속 부평’ ㉝ 부부도시에 얽힌 사연들

성기창 주무관.

인천투데이|

인천 부평구(구청장 차준택)가 2025년 개청 30주년을 맞이해 <인천투데이>와 함께 20년 4월부터 ‘사진 속 부평’ 연재를 한다. 1995년 개청 후 30년 동안 구가 촬영하고 보관 중인 사진을 선별해 역사와 기억을 기록하고자 한다.

2000년 12월부터 25년 간 부평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성기창(60) 부평구 사진 담당 주무관이 구술한다.<편집자주>

‘부부도시’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까. 부평구와 부천시. 둘은 부부도시였다. 부평사람들은 인천보다 부천이나 소사를 더 가깝게 생각했다. 경계를 맞대고 있고, 과거 함께 부평도호부에 속해 있었다.

둘 다 수도권 도시답게 걸어온 길도 엇비슷했다. 더 잘 나가는 도시를 질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부부도시라는 이름으로 몇 년은 함께 걸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혼한 셈이 됐다. 필자가 짐짓 대단한 선생처럼 원인과 결과를 되짚고 분석하고 ‘이래선 안 된다’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필자는 그저 사진을 찍는 기록자로서 사진과 자신의 소소한 감정을 남길 뿐이다. 친하게 지냈던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1970년대 부천은 포도와 복숭아 과수원 가득했던 곳

부천 상동 전경이 담긴 자료사진. 1996년 8월 촬영. 저 멀리 건설 중인 외곽순환고속도로와 개발된 중동의 아파트 숲이 보인다. 푸른 논은 나중에 상동 신도시로 개발된다. (사진제공 부평구)

1970년대 어린 시절 기억 속 부천은 포도와 복숭아 과수원이 가득한 곳이었다. 서울 친척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과일향을 만끽했다. 출입문이 열리면 송내역에서는 포도향이, 소사역에서는 복숭아향이 물씬 밀려들었다. 아삭아삭 맛있었던 복숭아도 소사에서 난 것이었다.

그 시절 부천은 도시로 보긴 어려웠다. 부평사람들은 그냥 과수원과 농촌 마을이 드문드문 있는 지역이라 생각했다. 부천은 몰라도 복사골과 경인선 옆을 분홍색으로 수놓았던 복숭아꽃은 다들 알았다.

필자가 부천을 도시로 인식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정부가 수도권 신도시 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시절이다. 당시 부평도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느라 야단이었지만, 그 규모는 중동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텅 비어 있던 논밭은 순식간에 아파트 숲으로 바뀌었다.

순식간에 아파트 숲이 된 부천

부천 상동 전경이 담긴 자료사진. 1996년 8월 촬영. 저 멀리 건설 중인 외곽순환고속도로와 개발된 중동의 아파트 숲이 보인다. 푸른 논은 나중에 상동 신도시로 개발된다. (사진제공 부평구)

1998년쯤부터는 외곽순환고속도로(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부평·부천 구간도 완성되고 차가 다니기 시작했다. 거대한 고속도로 옆에 빈 땅이 있다면, 더구나 그 땅이 수도권 한복판이라면 개발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 빈 공간은 대부분 부천 땅(상동)이었다. 부천이 더 커지겠구나 직감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부천은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상동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시기에 부평도 삼산동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됐지만, 부천의 절반도 안 되는 규모였던 것 같다.

2000년대 초 부천에 들어선 야인시대 세트장은 ‘부천이 부평보다 더 잘 사는 것 같다’라는 인식에 불을 지폈다. 야인시대는 최고 시청률 57%를 기록한 최고의 드라마였고, 세트장은 마침 부평구 삼산동 경계에 딱 붙어 있었다. 관광객들이 줄을 이었다. 부평은 그 모습을 바라만 봤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팠던 부천을 바라본 시선

2002년 5월 촬영한 야인시대 세트장. 그 시절 야인시대를 안 봤던 사람이 있을까. 그 촬영지가 부천에 있었다. 부평 사람들은 부평에 세트장을 짓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사진제공 부평구)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했다. 부천을 바라보는 부평의 시선이 딱 그랬던 것 같다. 논밭에서 대도시로 개발하는 것을 넘어 문화를 전면에 내세워 도시의 고급화까지 꾀하는 전략에 다들 감탄했다.

한편에선 ‘우린 왜 저런 걸 안 했을까’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사실 역사 문화 자산은 부평이 더 풍부했다. 부평은 근현대사 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그런데 누구는 유산들을 부수다가 뒤늦게 그 가치를 알아챘고, 누구는 일찌감치 중요성을 알고 자산을 만들었다. 그 차이는 분명했다.

부동산 가격에도 격차가 생겼다. 부천은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뛰었고, 부평은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 물론 부동산이 지역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필자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지표가 아니겠는가.

2003년 10월 촬영한 상동 호수공원 루미나리에 축제 현장. 아름다운 조명 뒤에는 ‘부천 사람만 입장료 무료’라는 동네 사람들의 불만이 있었다. (사진제공 부평구)

사람들의 감정도 조금씩 표출되기 시작했다. 2003년 10월 상동호수공원에서 루미나리에(조명 건축물) 축제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아름다운 야경을 기대하고 많은 사람들이 호수공원을 찾았는데,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옆 동네 부천시민은 입장료가 무료였다. 사람들은 화를 냈다.

물론 부천 땅에서 열린 축제에 부천시민의 세금이 쓰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다. 그래도 길 건너에서 왔는데 돈을 내라 하니 동네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심지어 일부 주민들은 주민과의 대화 시간에 고(故) 박윤배 전 부평구청장에게 항의까지 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외곽순환고속도로를 기준으로 지역 경계를 다시 정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호수공원이나 야인시대 세트장은 도로 서쪽이니 부평으로 하고, 도로 동쪽 삼산4지구를 부천에 넘겨주자는 생각이었다. 이를 누가 수긍하겠는가. 반발만 사고 그냥 없던 이야기가 됐다.

2011년 5월 양 도시 사이에 분 훈풍

부평구와 부천시의 상호 교류 협력 협약서. 2011년 5월 촬영했다. 이 협약은 부부도시의 시작이었다. (사진제공 부평구)

서로 잔치에 초대하는 것. 그게 친분의 첫걸음이다.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초청된 홍미영 전 부평구청장이 둘리와 인사하고 있다. 2011년 8월 촬영. (사진제공 부평구)

질투와 시기의 시간이 흘러 2011년 5월에 이르렀다. 양 도시의 사이에 훈풍이 불었다. 몇 번의 단체장 모임과 논의 끝에 부평과 부천은 ‘상호 교류 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서로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자는 취지였다.

이즈음부터 ‘부부도시’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양 도시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부부처럼 살갑게 지내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당시 단체장들이 대화 도중 즉흥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협약 이후 양 도시는 적극적으로 함께하기 시작했다. 함께 성장하자는 의미에서 공동 발전 토론회와 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두 도시의 현안인 경인선 지하화에 뜻을 모아 함께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부천시 공연단이 부평풍물대축제 무대에 서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협력의 흔적들은 지금도 남아있다. 부평구청 잔디광장에는 곰 인형 한 마리가 서 있다. 유쾌한 얼굴에 붉은 장미를 건네고 있는데, 이름은 ‘빼꼼이’라고 한다. 과거 부천이 슬로건 ‘문화특별시’와 함께 쓰던 캐릭터다.

빼꼼이와 ‘우애의 숲’

부천시 캐릭터 ‘빼꼼이’는 오늘도 부평구청 잔디광장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13년째 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호의 상징으로 부천에서 부평으로 건너 온 빼꼼이는 부부도시의 기억과 함께 이름마저 잊혀졌다. 2015년 3월 부평구청 잔디광장에서 촬영. (사진제공 부평구)

상동 호수공원에 조성된 부평구·부천시 우애의 숲 제막식. 2012년 4월 촬영했다. 양 도시 사람들은 머릿돌 주변에 나무를 심으며 서로의 우정을 확인했다. 당시 김만수 전 부천시장이 홍미영 전 부평구청장이 심을 나무로 특별히 준비한 홍매화를 내밀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진제공 부평구)

부부도시가 함께 지역 발전을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다. 2012년 5월 부평구 민방위교육장 대강당에서 촬영. (사진제공 부평구)

빼꼼이는 2014년 1월 부평에 왔다. 부천사람들이 빼꼼이를 현관에 내려놓았는데, 홍 전 청장이 필자에게 “어디 설치하면 좋겠느냐”라고 물었다. 필자는 “사진 찍으면 구청이 배경에 나오도록 현관 앞에 두시죠”라고 답했다. 그 자리에 선 빼꼼이는 1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애의 숲’도 만들었다. 2012년 4월 상동호수공원에 사람보다 훨씬 큰 머릿돌을 설치하고, 양 도시의 사람들이 여럿 나와 나무를 심었다. 저마다 도시의 우정과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머릿돌은 원래 분수광장 근처에 있었는데, 식물원이 생기면서 옮긴 걸로 알고 있다.

양 도시의 분위기는 정말 괜찮았다. 적어도 2016~2017년 부천 상동 복합쇼핑몰 논란이 지역이 휩쓸기 전까지 그랬다.

상동 복합쇼핑몰은 지금의 삼산월드체육관 우측 만화박물관과 만화영상진흥원 일대 공원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신세계가 참여했는데,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쇼핑몰도 들어온다 하니 지역 상인을 중심으로 난리가 났다. 일종의 투쟁단체까지 결성됐다.

우리 구도 여기에 발을 맞췄다. 지역 경제 파탄, 교통난 및 정주 여건 악화 등을 이유로 굳건히 반대했다. 양 도시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부천시 입장에서는 사업을 추진해야 했다. 서로 소송전까지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산된 상동 복합쇼핑몰 사업과 ‘부부교’

부천 상동 복합쇼핑몰 논란은 부부도시를 사달냈다. 2017년 3월 부천시청 앞에서 촬영한 입점 저지 기자회견. (사진제공 부평구)

부천 상동 복합쇼핑몰 논란은 부부도시를 사달냈다. 2017년 3월 부천시청 앞에서 촬영한 입점 저지 기자회견. (사진제공 부평구)

부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7년 8월 부천시민 집회 장면. (사진제공 부평구)

결과적으로 상동 복합쇼핑몰 사업은 무산됐다. 필자는 복잡한 셈법이나 이유까지는 잘 모른다. 다만 부평과 부천 사이의 감정이 크게 상했다는 건 안다. 부천 입장에서는 부평 때문에 지역 발전을 방해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후로 ‘부부도시’라는 말은 다시 쓰이지 않았다.

사연 있는 다리를 소개하고 싶다. 공사 기간 2016년 11월부터 2017년 7월, 총연장 67m, 교량폭 4.61m. 굴포천을 건너 삼산동과 부천을 걸어서 오갈 수 있는 보도교이다. 그 이름은 부평구‧부천시 교량을 줄여 ‘부부교’라고 한다. 카카오 지도나 네이버 지도에서 ‘부부다리’라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부부교는 서로 살가울 때 계획됐고, 사이가 나쁠 때 공사하고 완공됐다. 예전 같으면 함께 모여 준공식을 열고, 서로와의 협력을 기뻐했을 것이다. 이 다리는 10년 가까이 기억하는 이 없이 양 도시를 잇고 있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슬슬 마주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부부도시’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부부교는 아직도 두 도시를 이어주고 있지 않은가. 사람 일도, 도시 일도 끊어진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법이다. 언젠가 부평과 부천이 예전처럼 서로를 반갑게 찾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이제는 다들 잊어버린 삼산동 부부교. 2017년 8월 촬영했다. 사이 좋을 때 계획했고, 사이가 나쁠 때 완공됐다. 서로 안 볼 듯해도 언젠가 다시 마주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는 모습이다. 사이 좋았던 예전 부부도시의 모습을 추억한다. (사진제공 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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