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모두의 시선이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꽂혀 있는 것 같다. 투자자들은 가격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하며 오르면 도파민이 터지고 내리면 멜랑콜리에 빠지는 조울증에 시달린다. 나만 뒤처져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공포, 즉 포모(FOMO, 기회 상실 우려) 증후군도 심각하다. 여기서 기회는 단연 ‘집’과 ‘칩’이다. 한편에는 자산 증식의 전통적 수단인 아파트가 있다. 요즘 금리가 뛰면서 집을 사느라 큰 빚을 낸 사람들의 곤경이 입에 오르내린다. 다른 한편에는 수익 창출의 새로운 아이콘인 인공지능(AI)과 반도체가 있다. 칩 관련 회사들의 주가 등락에 모두가 울고 웃는다.
오늘날 시장은 단순히 기회를 넘어 지상명령으로서 모두의 운명을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다. 시장의 지상명령 아래 무제한의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에 베팅하고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며 이를 재투자하는 경쟁이 체계적으로, 가차 없이 전개되는 시스템이 곧 자본주의다. 이 자본주의에는 별다른 규칙도 없다. 각자가 살아남으려면 죽기로 싸워야 한다. 그럴진대 주가가 급락하고 대출 이자가 급등한다면, 혹여 마지막 보루인 집값마저 하락한다면 시장 참여자들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시장 맞은편엔 국가가 있다. 국가가 어디까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지, 국가가 시장을 이길 수 있는지 종종 논란이 되곤 한다. 국가와 시장은 갈등하기도 하고 제휴하기도 한다. 국가는 자주 시장을 살리고 돕는데도, 여론은 국가보다 시장에 훨씬 더 우호적이다. 어떤 정부든 국가의 평판은 대체로 좋지 않다. 시장은 자유롭고 공정한 혁신자인데, 국가는 억압적이고 부당한 간섭꾼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국가와 시장은 공히 힘이 지배하는 냉혹한 제도다. 어디에도 인간의 온기는 없다.
우리의 문제는 국가와 시장만 있다는 것이다. 응당 그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이 없다. 바로 ‘사회’가 그것이다. 일찍이 영국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마거릿 대처 총리는 사회는 없고 개인만 있다고 선언했다. 원래 사회는 인간들의 관계로 이뤄지지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관계는 단절되고 사회는 망각됐다. 이제 원자화된 개인은 권위적 국가와 경쟁적 시장 앞에서 무력하다. 특히 경제적 약자일수록 어려운 시절에 도움 받을 ‘관계 자본’이 절대적으로 빈약하다. 이는 경제적 파산 이전에 사회적 관계가 먼저 무너진다는 점을 말해주며, 그 자체로 사회의 부재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국가와 시장, 즉 구약성서의 리바이어던과 마블 코믹스의 저거너트라는 강력한 두 힘 사이에서 사회를 재건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가 시장과 국가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시선에서는 선한 행위도 이익 추구요, 이념 편향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선 시선을 바꾸고, 사회를 발견해야 한다. 지금과는 달랐던 과거를 기억하고, 달라질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로부터 자율적이고, 시장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AI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벌써 일각에선 AI에 피로감을 느껴 ‘사람 티’ 나는 진정성 있는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고 한다. 결국 사람 냄새와 온기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도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인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 없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고 썼다. 사회가 없다면 세상은 ‘지독한 곤경(dire straits)’에 처할 것이다.
문득 사회는 없다던 1980년대 영국에서 ‘다이어 스트레이츠’라는 전설적 밴드가 그런 당대인들의 곤경을 노래했던 곡이 떠오른다. 그들은 우울증의 해독제도 없다며, 이 세상에 제정신 따위는 없다는 것만이 가장 제정신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라며 읊조렸다. 한결같은 케케묵은 소식들 속에서, 이 곡의 제목이기도 한, 조화로운 ‘하나의 세상(One World)’을 찾을 순 없노라고.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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