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국 국민권익위원회 심사기획과장이 지난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의료기관 내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집중신고기간 운영 및 교육지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리에 앉아 선배들 음료 주문을 받은 것이 그렇게 잘못이었을까. 선배 간호사는 “쟤 짬(경력)에 저기 앉는 게 말이 되냐”며 면박을 줬다. 그날 이후 경기 광주시 한 병원 간호사 강수빈씨를 겨냥한 괴롭힘, ‘태움’이 시작됐다.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괴롭히며 업무를 교육하는 악습이다. 들들 볶다 못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강씨는 “신규 (간호사가) 자살을 생각할 때까지 태울 수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견디다 못해 강씨는 병원을 그만뒀고, 지난 6월 결국 목숨을 끊었다. 일기장에는 고통이 빼곡하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장례식엔 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2019년 서울의료원, 2018년 서울아산병원에서도 태움을 당한 간호사가 자살하는 비극이 있었다. 이들의 죽음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이 생겼고, 이후 사용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강화됐다. 하지만 현장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강수빈씨가 세상을 등진 것도 고용노동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았지만, 가해자가 훈계 처분만 받은 뒤였다. 계속 지연되기만 하는 ‘정의’에 그가 삶을 포기한 것만 같아 안타깝다.
강씨 죽음이 알려진 뒤 이재명 대통령이 엄정 대응을 지시했고, 관련 기관들이 대책을 내놨다. 보건복지부와 노동부는 지난 13일 대한병원협회·대한간호협회 등과 ‘일하고 싶은 안전한 병원 만들기’ 업무협약을 맺었다. 협약 기관들은 인권침해 실태를 조사하고 근로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3년 차 미만 간호사를 대상으로 ‘태움 특별진단’을 실시한다. 이번 대책이 또 한 번의 희망고문이 되지 않으려면 병원 내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간호사들은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 문제는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수련 과정이 후배를 태우는 폭력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다 그렇게 배웠다”는 논리 속에 ‘폭력의 대물림’은 정당화된다. 여기엔 만성적 인력 부족, 병원 내 교육 시스템 미비 등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줄 순 없다. 하지만 근본적인 노동환경 개선 없인 태움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도 타들어가는 간호사들이 있을 터다. 우리가 귀를 닫으면, 누군가가 또 벼랑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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