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항쟁 유족들 처절한 마음, 몸으로 그렸죠”
고흥 출신 김금숙 작가 ‘흰 신:여순항쟁 이야기’ 펴내
유족들 인터뷰·자전적 서사 등 결합…손발에 먹 묻혀 표현
국내 첫 ‘만화계 오스카상’ 하비상 수상…27일까지 북펀딩
2026년 09월 20일(일) 20:10
<김금숙 작가 제공>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그린 ‘풀’, 제주 4·3항쟁을 다룬 ‘지슬’ 등 한국 현대사를 직시해온 그래픽 노블 작가 김금숙(55·사진)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꿈틀댄다. ‘언젠가는’ 꼭 그려야한다고 마음 먹었던 ‘여순항쟁’ 역시 오랫동안 품었던 이야기다. 지난 2020년 순천에서 열린 한 북토크에서 “우리 고장 여순 이야기도 그려달라”는 말을 들은 그는 이번에 약속을 지켰다.
고흥 출신 김금숙 작가가 기획, 자료조사, 작화 등 4년여의 작업 끝에 여순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그래픽 노블 ‘흰 신:여순항쟁 이야기’(창비)를 펴냈다. 작품은 돌아가신 아빠와의 추억이 담긴 ‘흰 운동화’가 사라진 것을 안 주인공 상아가 아빠의 20대 시절과 자신의 어린시절로 되돌아가 ‘역사적 사실’을 만나는 이야기다.
전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된 ‘풀’을 통해 대한민국 만화가 최초로 ‘만화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하비상을 수상한 김 작가는 지난 6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으며 한국 만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작업하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여순항쟁 영령을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흰 신’에 대해 “몸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유족들 입장에서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거잖아요. 제가 보통 붓과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이번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몸’을 찾아다니는, 유족들의 처절한 마음과 그들의 존재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손과 발에 먹물을 묻혀 그렸습니다. 어떨 땐 먹물이 진한 핏물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유족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문헌기록과 유족들 인터뷰, 현장 답사 등을 바탕으로 쓰인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도 함께 담겼다. 작가가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흥 팔영산은 여순항쟁과 한국전쟁 당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곳이다. 아빠는 여순항쟁을 어떻게 살아내고 기억할까 생전에 묻지 못했던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픽션이지만 그 곳에 아버지의 이야기, 그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두 담겼습니다. 내가 태어난 나라, 자란 고향, 조상이 살았던 땅에서 일어난 일이다보니 더 각별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서사를 통해 보편적인 이야기를 끌어내려합니다. 이 이야기가 전쟁으로 고통받고 분열로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의미있게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지금까지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도 들려주려 애썼습니다.”
김 작가는 취재중 만난 유족들에게 여순항쟁은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바뀌어도 아픔이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듯했습니다. 어릴 때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는,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여전히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잘못된 교육으로 여순항쟁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여전합니다. 이제는 여순항쟁에 대해 폄훼하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우고, 공감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번 작품에 그래픽 노블 작가로서 여순을 겪은 세대와 이후의 세대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작품에 다양한 이야기를 넣었습니다.”
김 작가는 슈발리에 훈장에 대해 “국내에서는 오래전부터 출판만화가 홀대받고 그래픽 노블의 위상이 낮은데 이번 수상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래픽 노블을 예술장르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흰 신’은 오는 27일까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통해 북펀딩도 진행중이다.
/김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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