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칩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엔비디아가 타사의 칩까지 포용하는 새로운 인프라 전략으로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칩 판매를 넘어 네트워크와 서버 아키텍처를 중심으로 ‘AI 생태계의 중심’ 지위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이다.
23일(현지시간) 디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연례 개발자 행사인 GTC에서 GPU뿐 아니라 경쟁사 칩도 구동할 수 있는 새로운 서버 랙 ‘MGX ETL’을 공개했다.
이 랙은 칩 간 고속 통신을 지원하는 네트워킹 기술을 포함해, 다양한 칩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MGX ETL은 엔비디아가 2023년 도입한 MGX 표준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이 구조는 하나의 캐비닛에 최대 256개의 칩을 탑재할 수 있으며, 자사 제품뿐 아니라 다양한 칩 구성을 지원하는 모듈형 아키텍처다.
특히 이번 설계는 구글, AMD 등 주요 고객들이 자체 AI 칩을 확대하는 흐름에 대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객들이 경쟁사 칩을 사용하더라도,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엔비디아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기존에는 엔비디아의 고속 연결 기술인 NV링크(NVLink)를 통해 칩 통합을 지원했지만, 이번 ETL 랙은 이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이더넷 기반 네트워크 ‘스펙트럼-X(Spectrum-X)’를 활용한다. 이로 인해 별도의 라이선스 없이도 다양한 칩을 쉽게 연결할 수 있다.
이 같은 ‘개방형 전략’은 특히 중국 시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해 엔비디아 칩 판매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이 자국산 칩을 사용하면서도 엔비디아의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일부 중국 기업들에 대해, 자국 칩과 외산 칩을 혼합해 ETL 랙에 탑재하고 자사 네트워크 기술을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의 이런 전략 변화는 네트워크 사업의 급성장과도 맞물려 있다. 최근 분기 기준 네트워크 부문 매출은 약 110억달러(약 16조원)로 전체 매출의 15% 이상을 차지했으며, 전년 대비 268% 급증했다. 이는 엔비디아 내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다.
고객에게 칩과 네트워크를 묶어 판매한다는 비판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 등 일부 대형 고객들은 이러한 ‘번들링’ 관행에 불만을 제기해왔고, 유럽 규제 당국의 조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번 행사에서 AI 산업이 ‘훈련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 에이전트가 실제 서비스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더 빠르고 저렴하며 대규모 데이터 접근이 가능한 인프라가 필요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2년간 추론에 필요한 연산량이 약 1만배 증가했고, 사용량도 100배 늘었다며 전체 컴퓨팅 수요는 사실상 “100만배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아마존, 메타, 화웨이 등 주요 기업들이 AI 칩 개발에 나서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는 칩 자체보다 상위 레이어인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서버 아키텍처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결국 MGX ETL은 단순한 서버 제품이 아니라, 어떤 칩을 쓰든 엔비디아를 거치게 만드는 인프라 장악 전략의 핵심이라는 평이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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