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 경쟁이 국가 대항전으로 재편되고 있는 지금 한국이 내놓을 수 있는 패가 무엇인지를 두고 정부와 산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오픈AI·앤스로픽·구글 딥마인드가 수십조원 규모의 자금을 등에 업고 질주하는 가운데, 한국의 토종 LLM 기업들은 자본력의 열세를 기술력으로 메워야 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성장펀드가 AI 유니콘 업스테이지에 5600억원을 집중 투입하기로 한 결정은, 분산 지원이 아닌 전략적 선택과 집중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에서 유일하게 중견급 규모를 갖춘 참가사에 민관이 함께 베팅했다는 점에서, 이번 투자는 기술 지원의 성격과 생태계 설계의 성격을 함께 띤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회를 열어 업스테이지에 대한 5600억원 규모의 직접 지분투자를 승인했다고 3일 밝혔다.
재원은 첨단전략산업기금 1000억원, 산업은행 300억원, SK네트웍스·사제파트너스·우리벤처파트너스·미래에셋 등 민간 자금 4300억원으로 구성됐다. 국민성장펀드의 두 번째 직접투자 사례로, 지난 3월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 리벨리온에 이은 행보다. 이번 건까지 포함하면 누적 집행 규모는 총 11건 8조4000억원에 달한다.
업스테이지는 LLM '솔라'를 개발한 벤처기업으로 국내 AI 모델 스타트업 가운데 유일하게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서도 벤처·중소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1차 평가를 통과한 상태다.
순수 스타트업과 대기업 계열사 사이 어딘가에서, 독립적인 기술 기반과 일정 수준의 사업 규모를 동시에 갖춘 사실상 유일한 참가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투자의 근거는 명쾌하다. 업스테이지가 카카오로부터 포털 다음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대규모 한국어 데이터 자산을 확보하게 됐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국내 대표 포털사와의 협력을 통해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해 한국어 특화 모델의 성능을 정교화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 맥락이다. 한국어 LLM의 고질적 약점으로 꼽혀온 데이터 품질과 규모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반이 생겼다는 점에서 이번 투자금이 기술 고도화로 직접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한국어 특화라는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이 현실성을 얻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진=회사제공
다만 투자 시점을 둘러싼 시선이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업스테이지가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에 참여 중인 상황에서 대규모 정부 자금이 유입된 만큼, 심사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
기술 심사와 투자 심사의 관장 기관이 다르다고는 하나 정부 자금이 수천억원 규모로 투입된 기업을 이후 평가에서 탈락시키기란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투자 결정의 논리와 시점에 대해 보다 투명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이번 심의에서는 업스테이지 투자 외에 전남 해남군 솔라시도에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구축하는 사업에 4000억원 규모의 출자가 함께 승인됐다. 민관 합동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GPU·NPU 등 첨단 AI 반도체 1만5000장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SPC는 향후 최대 2조원의 대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2028년까지 센터를 완공해 AI 인프라 주권 확보의 핵심 거점으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포스코퓨처엠 자회사 퓨처그라프에는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구형 흑연 생산 기반 구축을 위해 2500억원의 저리 대출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기업 에스티젠바이오에는 850억원의 장기 저리 대출이 각각 승인됐다.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가스 생산기업 후성에도 165억원의 자금 지원이 결정됐다.
금융위는 "산업 파급효과가 크고 정책적 의미가 있는 사업을 선별해 첨단산업 생태계 전반의 자금 수요에 상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AI 주권 확보라는 목표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그 실행 과정의 투명성을 어떻게 담보하느냐가 앞으로 국민성장펀드의 신뢰를 좌우할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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