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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마, 배고파” 2살 아이가 움직이지 않았다…하늘이 준 고통, 책임은 누구에게 [지구, 뭐래?]

자연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명제는 틀렸다. 그 누구보다 철저히 가난을 가려내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국제구조위원회(IRC) 공동 기획

<기후재난, 우리가 모르는 피해자들③-남수단>

자연이 모두에게 공평하다는 명제는 틀렸다. 그 누구보다 철저히 가난을 가려내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막대한 화석연료를 태우며 경제성장을 이룬 곳이 있다. 그리고 온실가스가 만든 폭염과 가뭄, 홍수의 대가를 온몸으로 받는 곳이 따로 있다.

이른바 기후변화의 피해자들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은 누구인가. 구분이 모호할지라도, 책임의 무게는 명확히 다르다.

우리나라도 자유로울 수 없다. 빠른 산업화를 거치며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고, 그만큼 풍요로운 삶을 축적했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는 여전히 ‘불편’의 영역에 가깝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생사’의 영역이다. 기후위기가 불러온 재난으로 한순간 집과 일터를 잃고, 끼니를 줄이고 질병에 시달리며, 가까운 이의 죽음을 목격한다.

피해자 다수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하늘을 원망할 뿐이다.

헤럴드경제는 이번 기획에서 현지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국내에서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해외 기후위기 피해자들의 실제 삶을 따라간다.

IRC ‘남수단: 기근 속의 목소리’ 영상 갈무리.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IRC 제공]

“나는 엄마라고 불리는 게 좋아요”

#. 스스로 ‘엄마’라고 소개하는 걸 좋아하는 25살 여성. 특히나 두 살배기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면, 꼭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를 듣는 게 괴롭다.

조금씩 야위더니, 온몸에 힘을 잃어버린 아이. 누워 있다 몸을 일으키는 것도, 혼자 앉아 있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건강하던 아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하나 뿐이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물론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먹이면 된다는 걸 알았지만, 음식이 없었다. 음식을 구할 돈도, 능력도 잃었다.

남수단 벤티우의 유엔(UN) 기지에 마련된 피란민 임시 거주 시설. [IRC 제공]

풍족하지 않았지만, 부족하다고 느낄 새 없는 지난날이었다. 농사를 지을 땅이 있었다. 밭에서 거둔 작물로 아이들을 먹였고, 남은 것은 시장에 내다 팔았다. 농사가 잘되지 않는 해에는, 염소를 팔아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홍수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면 다시 밭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물은 정도를 모르고 차올랐다. 정성스레 가꾼 밭은 물속에 잠겨 위치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애써 키운 작물도 마찬가지. 먹지도 팔지도 못한 채, 어딘가로 흘러 내려갔다.

가족이 살던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린 엄마가 가진 모든 것이 물에 잠겼다. 가족은 긴 악몽을 버텨냈지만,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IRC ‘남수단: 기근 속의 목소리’ 영상 갈무리.[IRC 제공]

고통이 무색하게, 제시간이 되면 배가 고파왔다. 아이들은 허기짐을 참지 못했고, 어린 부모들은 아이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외면하지 못했다.

남은 것을 하나씩 돈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현재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가축을 팔아 식량을 마련했다. 다음 흉작을 견디게 해줄 마지막 재산이었다. 하지만 당장 굶는 아이 앞에서 앞날을 걱정할 여유는 없었다. 다음에는 농기구. 집 안의 집기들을 하나둘 내다 팔았다.

당장 입에 넣을 수 없는 모든 물품을 처분했다.

집 안이 비어갈 때마다, 다시 일어날 가능성도 함께 줄어들었다.

무력 충돌을 피해 피란한 주민들이 남수단 아웨리알 카운티의 밍카만 지역에 모여 있다. 밍카만은 사실상 피란민 수용소로 사용되는 임시 거주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약 10만명이 머물고 있다. [IRC 제공]

홍수가 지속되자, 시장의 음식값도 오르기 시작했다. 거센 비가 주변 농가의 작물까지 앗아갔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곡물을 실어오던 도로까지 물에 잠기며, 식량을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가장 먼저 무너진 것은 어린아이의 인내심이었다.

허기짐을 견디다 못한 아이의 몸은 얼마 없던 지방과 근육마저 끌어다 썼다. 눈꺼풀을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그때마다 엄마의 고통은 배가 된다.

어떻게든 살아내자. 다짐과 함께 무너진 밭을 다시 일구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도박과 같은 결정이다. 이대로 다음 홍수가 찾아온다면, 마지막 남은 모든 것들마저 빼앗길 터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제는 하늘을 보며 기도할 뿐이다. 영문도 모른 채 성난 하늘이 잔잔해지기를, 우리 가족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기를.

30살의 아북(Abuk)이 잠든 네 살 딸 니로(Nyriou)를 안고 남수단의 북 바르 알 가잘주에 있는 홍수로 잠긴 자신의 집 앞에 서 있다.[IRC 제공]

위 내용은 국제구조위원회(IRC)가 남수단에서 접한 기후재난 피해 가족들의 실제 사례와 현지 인터뷰를 종합해 재구성한 이야기다. 남수단에서는 반복되는 홍수와 분쟁, 경제난으로 농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주민들이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가축과 농기구를 처분하고 생명까지 위협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남수단 북부 바르엘가잘에 살던 아난 아방(2022년 당시 25세)의 아들 피터는 홍수로 가족이 농장에서 쫓겨난 뒤 영양실조를 겪었다. 아난은 당시 “아이의 온몸에 힘이 없었고 혼자 앉지도 못했다”고 회상했다. IRC 진료소에서 치료받은 피터는 이후 건강을 회복했다.

홍수, 또 홍수…1년 내내 물에 잠긴 땅

남수단에서 농업·생계 회복 업무를 맡고 있는 다니엘 무사(Daniel Musa) IRC 경제회복 및 개발 코디네이터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현지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을 묻는 질문에 “재난과 재난 사이의 회복 시간이 사라졌다”고 대답했다.

다니엘은 현재 중앙에콰토리아, 종글레이, 어퍼나일, 레이크스, 북부 바르엘가잘, 유니티주 등에서 농업·식량 시스템과 기업·고용, 현금 지원, 기후회복력 및 재난위험 경감 사업 등을 담당하고 있다.

2021년 10월 16일 남수단 북부 바르엘가잘 지역의 자택에서 피터가 부모와 함께 있는 모습. [IRC 제공]

실제 다니엘이 본 남수단의 홍수는 예전과 다르다. 그는 “예전에는 홍수가 났다가 물이 빠졌지만, 이제는 땅이 한 해 대부분 물에 잠겨 있다”며 “그사이에 찾아오는 건기조차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반복되는 속도다. 과거에는 수확물을 잃어도 한두 번 농사를 지으며 다시 일어설 시간이 있었다. 가축을 늘리고 씨앗을 마련해 다음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홍수로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도 전에 다음 홍수가 닥친다. 다니엘은 “위기와 위기 사이에 회복할 시간이 거의 없다”며

“한 차례 수확을 잃고 다시 일어서기도 전에 다음 홍수가 찾아오고, 분쟁도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

고 설명했다.

결국 주민들이 가장 먼저 꺼내 드는 것은 그동안 쌓아놓은 재산이다. 가축은 대표적이다. 농가에서 가축은 단순히 고기나 우유를 얻는 수단이 아니다. 수확을 망친 해에 팔아 식량을 마련할 수 있는 ‘저축’이다.

2013년 12월 이후 남수단 난민 4만2000명 이상이 피란한 케냐 카쿠마 난민촌.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촌 중 하나로, 당초 수용 능력의 약 2배에 달하는 17만7000명이 머물고 있다. [IRC 제공]

그런 가축마저 사라지면 다음은 농기구다. 다니엘은 “가족들은 끼니를 줄이고 다음 농사철에 필요한 도구나 가축을 팔기도 한다”며 “식비와 학비 가운데 하나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며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미래를 위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그가 접한 주민 중에는 불과 4년 동안 세 차례나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가족도 있었다. 홍수와 분쟁이 반복될 때마다 살던 곳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IRC ‘남수단: 기근 속의 목소리’ 영상 갈무리.[IRC 제공]

아동 ‘220만명’이 영양실조…배부른 아이가 드물다

문제는 이런 선택을 하고도 충분히 먹지 못하는 가정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유니세프가 지난 4월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올해 4~7월 남수단에서는 약 780만명이 ‘위기’ 이상 수준의 급성 식량불안을 겪은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56%다. 이 가운데 약 250만명은 한 단계 더 심각한 ‘긴급’ 단계에 놓였다. 약 7만3000명은 극심한 식량 부족과 생계 붕괴로 아사와 사망 위험까지 높아지는 가장 심각한 ‘재앙’ 단계에 해당했다.

어린이들이 받는 충격은 더 크다.

현재 남수단에서는 5세 미만 어린이 약 220만명이 급성 영양실조를 겪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약 70만명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중증 영양실조 상태다.

2025년 2월 4일 나이지리아 북동부 보르노주 마이두구리. 2024년 9월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집을 떠난 마리암 모하메드(35)가 아들 무사 무스타파(2)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무사를 비롯한 두 아들은 피란 생활 중 급성 영양실조를 겪었으며, 국제구조위원회(IRC)의 영양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치료받았지만 이후 다시 건강이 악화됐다. 현재 가족은 구비오 국내실향민 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마리암은 전통 모자를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IRC 제공]

도입부의 사례처럼 먹지 못해 몸에서 힘이 빠지는 아이들이 특별한 사례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남수단의 굶주림을 기후변화만의 문제라고 하기는 힘들다. 반복되는 분쟁과 강제이주, 경제난이 동시에 주민들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 이웃나라 수단에서 이어지는 전쟁으로 대규모 인구가 유입된 것도 이미 부족한 식량과 일자리, 인도주의 지원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여기에 물가까지 치솟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남수단의 2025회계연도 연평균 식료품 물가상승률은 234%에 달했다. 극빈층 비율도 2024년 84%에서 지난해 87%로 높아졌다.

가진 것을 팔아 손에 돈을 쥐어도,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음식은 갈수록 줄어드는 셈이다.

2024년 1월 25일 나이지리아 북동부 보르노주 마이두구리의 술룸부리 보건소에서 중등도 급성 영양실조를 겪는 아동의 팔둘레를 측정하고 있다. 팔둘레 측정띠(MUAC)는 아동의 영양실조 상태를 평가하는 데 사용된다. [IRC 제공]

물 차오르는데 피할 곳도 없다…분쟁이 막은 피난길

물이 차오르기 전에 다른 곳으로 피하면 되지 않을까. 남수단에서는 그마저 쉽지 않다. 분쟁 때문이다.

통상 홍수가 발생하면 주민들은 가족과 가축을 높은 지대로 옮긴다. 물이 빠질 때까지 고지대에서 버틴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동해야 할 곳이 분쟁지역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고지대 자체가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곳으로 가는 길이 무장세력이 활동하는 지역을 지나갈 수도 있다.

다니엘은

“효과가 있었던 대처 방법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며 “결국 사람들은 물이 차오르는 곳에 남게

된다”고 말했다.

국제구조위원회 영양실조 책임자인 제임스가 홍수가 난 후 남수단 아윌에서 방문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IRC 제공]

살던 곳을 떠나는 것 역시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피란민이 잃는 것은 집과 땅, 가축 같은 물리적인 재산만이 아니다. 어려울 때 돈을 빌리던 저축모임, 외상으로 물건을 내주던 상인, 농기구를 빌려주던 이웃과의 관계도 끊긴다.

다니엘은 “이런 관계들이 과거에는 가족들이 어려운 농사철을 버틸 수 있게 했다”며 “하지만 그 관계는 피난길에 함께 따라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홍수는 새로운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물에 잠기지 않은 좁은 땅으로 사람과 가축이 몰리면 목초지와 식수를 둘러싼 경쟁이 커진다. 무기가 널리 퍼진 지역에서는 이런 다툼이 더 큰 폭력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기후충격이 분쟁을 키우고, 분쟁은 다시 기후충격에서 도망칠 길을 막는 구조다.

IRC ‘남수단: 기근 속의 목소리’ 영상 갈무리.[IRC 제공]

남수단 기후변화 기여 0.12%…기후재난 피해는 온 몸으로

남수단이 기후변화를 만들어낸 책임은 크지 않다.

세계은행이 올해 내놓은 ‘남수단 국가 기후·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남수단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0.12%다.

하지만 남수단은 기후변화와 분쟁이 동시에 주민들의 삶을 흔드는 17개 취약국 중 하나다. 세계은행은 극심한 홍수가 발생하는 해에는 남수단 국토의 최대 4분의 1이 물에 잠길 수 있다며, 이런 대규모 홍수가 사실상 ‘새로운 일상’이 됐다고 분석했다.

IRC 분석에 따르면 17개 취약국가에는 전 세계 인구의 10.5%가 살지만 연간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3.5%에 불과하다.

반면 전 세계에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의 71%, 최근 3년간 자연재해 피해 인구의 약 3분의 1이 이들 국가에 집중돼 있다.

발전소.[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1850~2019년 화석연료 사용과 산업에서 발생한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 가운데 선진국이 차지한 비중은 57%에 달한다.

산업화를 먼저 시작한 국가들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렸고, 동시에 재난 피해를 줄일 사회 기반을 갖출 여력도 키웠다. 하지만

온실가스의 영향은 국경 안에 머물지 않고, 피해 역시 똑같이 나눠지지 않는다.

피해를 줄이는 데 필요한 돈조차 가장 취약한 곳에 충분히 흘러가지 않고 있다. IRC가 지난해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기후·분쟁 취약 17개국은 2022년 개발도상국에 배정된 기후적응 재원의 12%만 받았다.

2026년 10월 20일 수단과 남수단 국경의 아비에이 지역에 위치한 아미에트 시장. 위성사진에 불에 탄 건물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플래닛랩스 PBC 제공·로이터]

한국 역시 이 구조와 무관한 국가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연료 연소에 따른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6t으로 OECD 평균 7.8t보다 많았다.

특정 국가의 배출이 남수단의 홍수를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같은 기후충격이 닥쳐도 이를 버틸 수 있는 여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다 팔고 난 뒤가 아니다”…홍수 오기 전에 현금부터

이 같은 격차 속에서

현장에서는 재난이 벌어진 뒤 복구하는 것보다,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지원하는 방식이 강조되고 있다.

남수단에서 IRC가 먼저 지원하는 것 중 하나는 ‘현금’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당장 오늘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몇 달 뒤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고민할 여유는 없기 때문이다.

[IRC 제공]

다니엘은 “

끼니를 거르고 있는 가구는 한 철 농사를 계획할 수 없다”며 “현금 지원은 염소나 농기구를 헐값에 처분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설명했다.

식량을 직접 나눠주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 어떤 집에는 먹을 것이 가장 급하지만, 어떤 집에는 아픈 아이를 치료할 돈이 먼저 필요하다. 피란 과정에서 조리도구나 침구를 잃은 가정도 있고, 빚 때문에 남은 재산을 처분해야 하는 가정도 있다.

실제 지원금을 받은 주민들이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식량이었다. 이후에는 의료비와 학비, 조리도구와 침구, 주거 자재, 빚 상환 등 가정별로 사용처가 달라졌다. 다니엘은 “무엇이 필요한지는 어떤 조사보다 그 가족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IRC ‘남수단: 기근 속의 목소리’ 영상 갈무리.[IRC 제공]

현금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역할도 한다. 주민이 지원금으로 시장에서 곡물을 사면 돈은 상인에게 간다. 다시 제분업자와 운송업자 등으로 흘러간다.

반면 외부에서 식량을 들여와 배급할 경우 이미 위기로 손님을 잃은 현지 상인들과 경쟁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다니엘은 “현금 지원은 시장과 경쟁하는 대신 시장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다음 단계는 다시 돈을 벌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농민에게 현지 환경에 맞는 종자를 제공하고, 재배와 수확 후 관리 방법을 교육한다. 홍수로 기존 작물을 키우기 어려워진 지역에서는 아예 작물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IRC ‘남수단: 기근 속의 목소리’ 영상 갈무리.[IRC 제공]

다니엘은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몇 달 전부터 예측할 수 있다”며 “예보에 따라 미리 대응하고 현금을 전달하며 종자와 가축을 보호하는 데 드는 비용은 재난이 닥친 뒤 대응하는 비용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충분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다니엘 또한 “가장 답답한 점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아니다”

라며 “무엇이 효과적인지 정확히 알면서도, 그 일을 해내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지원 기간이 짧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기후재난으로 생계가 무너진 농가가 다시 일어서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끼니를 해결하고, 씨앗을 뿌리고, 수확물을 얻고, 다시 가축과 저축을 늘리는 과정은 몇 달 만에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지원은 3개월이나 6개월 만에 끝나는 경우가 있다.

다니엘은 “특정 위기에서 회복하는 사이 어느새 또 다른 위기가 닥친다”며 “긴급구호와 회복, 회복력 강화까지 뒷받침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재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수단 수도 주바에서 수천명의 피란민들이 학교와 교회, 공터, 거리 등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생활하고 있다. [IRC 제공]

“우리는 동정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처럼 남수단에서 수천㎞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다니엘은

단순히 ‘동정’해야 할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는 ‘경제적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다니엘은 “사람들은 기후변화라고 하면 기온 그래프를 떠올리곤 한다”면서도 “남수단에서 보고 있는 기후변화는 ‘그래프’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그가 기후변화를 설명하며 꺼내 든 것은 숫자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불과 4년 사이 세 차례나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가족, 손님들의 소비가 줄어 결국 문을 닫은 작은 가게, 당장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내일의 생계수단까지 팔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IRC ‘남수단: 기근 속의 목소리’ 영상 갈무리.[IRC 제공]

기후변화는 이들에게 먼 미래의 위협이 아니다. 이미 일상과 생계를 뒤흔들고 있는 현실이다. 그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상의 경제적 손실이 이곳 남수단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남수단 주민들이 마냥 구조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축모임에 참여한 여성들은 조금씩 돈을 모아뒀다가 홍수가 닥치면 꺼내 쓴다. 국제기구가 도착하기도 전에 스스로 마련한 돈으로 위기를 버티는 경우도 많다.

물에 잠겨 기존 작물을 키우기 어려워진 일부 농민들은 벼를 심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위험지역을 파악하고, 기상예보에 따라 홍수가 오기 전에 움직이는 지역도 있다.

다니엘은 “이곳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가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 역시 단순한 연민이 아니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동정이 아닙니다. 기후 충격을 경제적 문제로 바라보고, 그에 맞는 경제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다니엘 무사 IRC 경제회복 및 개발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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