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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야스쿠니 무단 합사’ 재일동포 유족, 첫 취소 소송 참여

한국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도움으로 외종조부가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일동포가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에 참여하기로 했다. 2001년부터 이어져 온 야스쿠니 합사 취소 소송에 재일동포가 원고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스쿠니 무단 합사’ 재일동포 유족, 첫 취소 소송 참여

작년 9월부터 3차 소송 시작

한국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의 도움으로 외종조부가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재일동포가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에 참여하기로 했다. 2001년부터 이어져 온 야스쿠니 합사 취소 소송에 재일동포가 원고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쿄신문은 일본 간사이 지역에 사는 30대 재일동포 3세 여성 A씨가 야스쿠니 합사 취소 소송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7일 보도했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소 소송은 여러 차례 제기됐으나 재일동포가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다.

보도에 따르면 A씨 외할머니의 오빠 2명은 각각 1916년, 1920년 일제강점기 조선 남부에서 태어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살았다. 외할머니의 큰오빠는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시설부 소속 공원(工員)으로 전쟁에 동원됐다. 그는 28살이던 1944년 10월 북방 쿠릴열도 인근 해상에서 수송선 탑승 중 잠수함 공격을 받아 선박이 침몰하면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다. 히로시마 구레 제217설영대 소속이던 외할머니의 작은오빠는 괌에서 비행장 건설 작업 등에 투입됐다가 24세인 1944년 8월 지상전 중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은 형제자매들은 두 사람의 전사 경위를 수소문했지만 끝내 진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외종조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A씨는 올해 초 민족문제연구소의 도움으로 일본 정부가 작성한 전사자 개인 기록표를 입수했고, 이 기록에서 1959년 10월 ‘야스쿠니신사 합사 완료’라는 문구를 확인했다.

A씨는 “강제로 전쟁에 끌려간 식민지 조선인 희생자가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전몰자들과 함께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59년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는 당시 식민지 국민이었다는 이유로 조선인 희생자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했다. 일본 정부는 합사된 당사자나 희생자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야스쿠니신사에는 한국인 2만여명이 합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사에는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 전범재판)에 따라 처형된 도조 히데키 전 일본 총리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도 합사돼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2001년부터 여러 차례 소송을 냈지만, 일본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2013년 한국인 합사자 유족이 낸 합사 취소 소송에서 정교분리 원칙, 법률이 정한 소송 유효 기간 만료 등을 이유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희생자의 손주 세대가 주축이 돼 모인 유족 6명이 지난해 9월 일본 법원에 3차 소송을 내고 다시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A씨는 이 3차 소송에 원고로 합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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