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미국 달라스 텍사스주립대 교수
▲ Smart chip processor with buildings. Smart city concept. 3d rendering. / 클립아트코리아
최근 생성형 AI 분야의 선두 주자 중 하나인 엔트로픽이 개발한 ‘미토스(Mythos)’ 모델 등 최첨단 AI 시스템을 둘러싼 보안 취약성 논란은 전 세계 IT 업계에 커다란 경종을 울렸다.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놓는 시대가 됐지만, 거꾸로 그 지능을 악용해 보안망을 무력화하거나 가짜 정보를 생성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니다. 디지털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극에 달한 현대 사회에서, 사이버 보안의 성벽이 무너지는 것은 곧 우리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재난’의 시작임을 시사한다. 전통적으로 ‘재난’이라 함은 태풍, 지진, 화재와 같은 자연재해나 대형 붕괴 사고 같은 물리적 실체가 있는 사건을 의미했다.
하지만 모든 행정과 경제, 시민의 일상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혈관처럼 연결된 오늘날, 재난의 정의는 완전히 달라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송되는 코드 한 줄이 국가 기간망을 멈춰 세우고, 데이터가 오염되거나 마비되는 순간 우리는 전례 없는 사회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제 사이버보안은 정보 보호라는 기술적 영역을 넘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재난관리’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격상돼야 한다.
사이버 공격은 이제 특정 기업의 금전적 손실을 넘어 공공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발생한 행정망 마비 사태는 주민등록등본 한 통 발급받지 못하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부동산 계약이나 금융 거래 등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일시적으로 정지시켰다.
만약 이러한 공격이 의료 시스템을 향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해외에서는 랜섬웨어 공격으로 병원의 응급실 시스템이 마비돼 수술이 취급되고 환자가 전원하는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성벽을 아무리 높이 쌓아도 창은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제 사고를 100% 막을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엔트로픽의 사례처럼 완벽한 방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난관리 관점의 보안은 사이버 회복탄력성 (Cyber Resilience)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공격을 당하더라도 필수 기능을 얼마나 신속하게 복구하고, 시민의 일상 중단을 최소화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우리 지역 사회는 세 가지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
첫째, ‘통합 대응 거버넌스’의 구축이다. 사이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단순히 IT 부서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소방, 경찰, 지자체 재난 안전 부서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사이버 재난 통합 대응 매뉴얼’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둘째, ‘지역 밀착형 보안 인프라 보호’이다. 다수의 공공기관 데이터 센터와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경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 기반의 보안 관제 협의체를 활성화하고, 민·관·학이 협력해 위협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
셋째, 시민들의 ‘디지털 안전벨트’ 의식 제고이다. 재난 대비의 시작이 가정 내 소화기 비치와 대피로 숙지인 것처럼, 사이버 재난 역시 사용자들의 기본 보안 수칙 준수에서 시작된다. 강력한 비밀번호 설정, 출처 불분명한 링크 클릭 금지 등 사소해 보이는 습관이 거대한 디지털 재난을 막는 최전선의 방어벽이 될수 있다.
충북도를 비롯한 중부권은 대한민국 혁신 성장의 심장부이다. 청주 오창의 이차전지 클러스터, 오송의 바이오 단지, 그리고 반도체 산업 인프라는 국가 경제의 핵심 자산이기 때문에, 이러한 첨단 산업 인프라를 제어하는 시스템에 사이버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국지적인 경제 손실에 그치지 않으며 유독물질 유출, 폭발 사고, 에너지 공급 중단 등 물리적인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사이버 위협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치명적인 ‘현대판 재난’이라 할 수 있다. 물류와 교통의 중심을 넘어 데이터와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는 충북 지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디지털 토양’이다. 아무리 화려한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더라도 보안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언론은 디지털 전환 시대의 새로운 위험 요소에 대해 지역 공동체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야 하고, 지자체는 사이버 보안 예산을 ‘비용’이 아닌 ‘미래를 위한 보험’으로 인식하고 과감하게 투자해야 하며 지역 대학은 현장에 즉각 투입 가능한 보안 전문가를 양성해 지역의 자생적 방어력을 키우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 김도형 미국 달라스 텍사스주립대학교 교수
재난은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파고 든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보고 일상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이 시점에서, 보안을 소홀히 하는 것은 재난의 문을 열어두는 것과 다름없다. 사이버 보안은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가족과 이웃의 일상을 지키는 현대적 의미의 ‘민방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장부터 기업인, 그리고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지역사회 전체가 사이버 보안을 ‘공공의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한 안전 지대로 거듭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지역의 미래와 소중한 자산을 지키는 일, 그것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숭고한 재난관리의 첫걸음이다. 안전에는 결코 마침표가 있을 수 없으며 끊임없는 경계와 철저한 대비만이 우리의 디지털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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