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미드저니AI의 도움으로 만들었습니다
법정에서 만나는 남편들 중에는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유형이 있다. 가정을 지키고, 경제적인 책임도 다하며, 특별한 갈등도 크게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 아내는 너무 답답해한다. “저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런데 제 감정을 전혀 몰라요.”
이른바 ‘둔감형 남편’이다. 이 유형의 남편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감정을 ‘읽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눈에 보이는 행동과 결과는 잘 이해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을 잘 포착하지 못한다.
그날도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온 남편은 식탁에 앉아 있는 아내를 보았다. 밥은 차려져 있었지만, 아내는 숟가락을 들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왜 안 먹어?” 아내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입맛이 없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도 있지.” 그리고 혼자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이 특별한 시작은 아니었다. 이미 비슷한 장면은 여러 번 반복되고 있었다. 아내는 그 전부터 자주 이렇게 말했다. “요즘 계속 기운이 없어”, “아무것도 하기 싫어”, “사람 만나는 것도 너무 피곤해” 등 남편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비슷하게 반응했다.
“그럴 때도 있지”,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마.” 그는 나름대로 위로를 하고 있었다.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는 방식이었다. 어느 날은 아내가 말했다. “나 요즘 잠이 잘 안 와.” 그는 휴대폰을 보다가 대답했다. “요즘 다 그렇지 뭐.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또 어느 날은 아내가 아이를 재우다 같이 울었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도 “왜 그래 또?”라고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에게 그 장면은 ‘지나가는 감정’처럼 보였다. 아내는 점점 말을 줄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명하려 했다. 왜 힘든지, 무엇이 버거운지, 어디까지 지쳐 있는지 말하려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늘 비슷했다. “다들 그렇게 산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 “생각을 좀 긍정적으로 해 봐라”라는 충고였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가 원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녀는 점점 확신하게 된다. ‘이 사람은… 내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후로는 아내의 말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설명 대신, 짧은 말만 남게 됐다. “그냥 좀 힘들어”, “괜찮아” 그리고 어느 날, 식탁 앞에서 말했던 그 한마디. “입맛이 없어.”
그건 단순한 상태 설명이 아니었다. 그동안 쌓여온 신호의 마지막에 가까운 말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그저 평범한 하루의 한 장면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내는 더 이상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고, 집안일은 미뤄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만나는 약속도 하나둘 취소했고, 아이에게도 짜증이 늘어갔다. 남편은 그 변화를 보면서도 이렇게 생각했다. ‘요즘 좀 지쳤나 보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결국, 아내는 혼자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최근에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 많았나요?”, “수면이나 식사 패턴에 변화가 있었나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나요?” 아내는 그 질문에 처음으로 길게 대답했다. 그리고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 초기였다.
하지만 남편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내는 말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달 뒤, 이혼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꺼내게 된다.
“나 병원 다녔던 거 알아?” 그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언제?”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계속 신호 보냈었어.” 이혼 법정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힘들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심각한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은 변명이 아니라, 그의 인식 그 자체였다. 그는 아내가 그동안 했던 말을 ‘정보’로 이해했다. 하지만 감정의 깊이까지는 읽어내지 못했다. 그에게 ‘힘들다’라는 말은 일상적인 표현이었고, 특별한 경고로 느껴지지 않았다.
둔감형 남편의 특징은 여기에 있다.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강도’를 체감하지 못한다. 상대의 표정, 말투, 침묵 속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그에게 ‘정말 힘든 상태’는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태였다. 울거나, 화를 내거나, 분명한 요청을 하는 경우였다. 그렇지 않으면 괜찮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내의 신호는 그와 달랐다. 작고, 반복적이고, 점점 약해지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점점 더 알아차리지 못했고, 아내는 점점 더 지쳐갔다.
이 부부의 갈등은 소리가 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아내는 계속해서 신호를 보냈고, 남편은 계속해서 놓쳤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내는 더 이상 보내지 않게 된다.
그때 남편은 오히려 안도했다. ‘이제 괜찮아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회복이 아니라, 포기였다.
법정에서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항상 설명해야 했어요. 내가 왜 힘든지, 어디까지 무너졌는지… 다 말해야만 알아듣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 말 앞에서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유형의 남편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방식대로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기준이 상대와 다르다는 데 있다. 그는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관계를 이해하고, 아내는 ‘느껴지는 것’을 기준으로 관계를 경험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그래서 이 관계는 쉽게 지친다. 한 사람은 계속 설명하다가 지치고, 다른 한 사람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한 채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게 된다.
“왜 그렇게까지 힘들다고 말 안 했어?”
하지만 그 질문은 이미 늦었다. 아내는 이미 충분히 말한 뒤였기 때문이다. 둔감함은 의도가 아니다. 하지만 그 반복은 결국 상대를 혼자 남겨두는 결과를 만든다. 감정은 항상 큰 소리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아주 작게, 그리고 점점 사라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 신호를 놓치는 순간, 관계 역시 조용히 멀어진다.
[안귀옥 변호사의 법정에 선 남편 리포트] 13화는 ‘모든 것을 논리로 설명하는 남편, 감정은 왜 틀렸다고 할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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