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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침을 열며]산업의 속도, 사회의 속도

속도가 경쟁력의 핵심이지만, 속도 자체가 목표가 되는 순간은 경계가 필요하다. 목표에 이르는 길에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아침을 열며]산업의 속도, 사회의 속도

속도가 경쟁력의 핵심이지만, 속도 자체가 목표가 되는 순간은 경계가 필요하다. 목표에 이르는 길에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의 속도전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을 당부하면서 “속도전을 넘어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지와 기반시설의 중요성을 지목하면서 “관련 절차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 소요 시간을 대폭 줄이고 규제도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했고, “정부 자체가 혁신 모델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가 절박한 의지로 속도전에 나선 상황은 충분히 이해된다.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과 그에 따른 반도체 초호황을 맞은 현재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분기점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던 한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라는 두 반도체 공룡이 유례없는 수준의 이익을 거둬들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AI는 이제 기술 발전의 수준을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모든 산업과 일상에 빠르게 확산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변화의 물결에 AI 산업의 핵심 국가로 한국이 떠오르면서, 이 호황을 길게 끌고 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커졌다.

AI 패권 경쟁 ‘골든타임’ 판단

정부, 3대 메가프로젝트 전격전

전력 공급 등 사회적 갈등 우려

빠르게, 그러나 제대로 해야

정부는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제시했다. 서남권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고, 전국에 피지컬 AI와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확충해 미래 성장동력과 지역균형발전을 동시에 꾀하겠다는 구상이다. 서남권 반도체 팹의 1차 완공 시점을 2029년으로, 산단에 전력 공급을 시작하는 시기를 2028년 말로 제시해 구체적 목표 시점도 공개했다.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난제도 적지 않다. 가장 핵심적인 것이 산단에 필요한 전력과 용수 공급 문제다.

서남권 반도체 신규 팹 4기와 충청과 영남 등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수요는 각각 6.3GW(기가와트), 18.4GW로 총 24.7GW에 이른다. 원전 24기 이상의 전력 공급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필요한 전력량의 발전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송전망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등 민감한 숙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규모 산업시설을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가장 중요한 과제다.미국에선 데이터센터 건립에 반대하는 집단 시위가 확산하고, 주정부 차원에서 인허가를 제한하거나 세제 혜택을 철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인도에서도 물 부족을 우려하는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기요금 상승이나 소음 및 환경오염 우려가 생기면서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이 실제 내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데, 이때 정부가 ‘AI 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는 당위만 앞세워서는 사업의 추진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정부는 각 시설에 필요한 전력 및 용수의 사용량과 기반시설 비용, 정부가 세우고 있는 공급 계획과 그에 따른 주민 불편 또는 편익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AI 산업의 미래에 대한 면밀한 진단과 전망은 사업의 신뢰를 만드는 가장 기본이다. 지역 균형 개발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도록 일자리 창출 및 상생 효과를 최대화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메가프로젝트 전격전의 성패는 단지 목표 시점의 달성 여부로만 평가돼서는 안 된다. 미래 성장동력을 뒷받침할 산업 인프라를 적기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력·용수 부족과 지역사회의 갈등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정했는지도 함께 평가받을 것이다. 전격전의 성패는 빨리 짓는 것이 아니라, 빨리 짓기 위해 발생하는 문제까지 얼마나 빠르게, 잘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이번 3대 메가프로젝트는 한국 정부가 산업의 속도와 사회의 속도를 함께 맞춰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종합적인 정책 능력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윤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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