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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침을 열며] 운동장과 운동회가 사라지는 사회

가을이 오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만국기, 청군·백군으로 나뉘어 목이 터져라 외치던 응원 소리,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였던 이어달리기, 부모님과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즐겼던 복주머니 터뜨리기. 운동회는 단순히 달리고 뛰는 행사가 아니었다.

[아침을 열며] 운동장과 운동회가 사라지는 사회

실패·좌절 회피는 성장에 도움 안 돼

안전하게 다시 일어서는 법 가르쳐야

가을이 오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만국기, 청군·백군으로 나뉘어 목이 터져라 외치던 응원 소리,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였던 이어달리기, 부모님과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즐겼던 복주머니 터뜨리기. 운동회는 단순히 달리고 뛰는 행사가 아니었다. 넘어진 아이를 함께 응원하고, 졌지만 웃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가을 풍경은 점점 낯선 기억이 되어가고 있다. 운동회는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심지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운동장마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학교 주변 주민들은 시끄럽다고 민원을 제기하고, 일부 학부모는 아이가 경쟁에서 지거나 상처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운동회를 꺼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소음이 되고, 승패를 경험하는 일은 피해야 할 상처가 되어버린 셈이다.

물론 학교 주변 주민의 평온한 일상도 존중해야 하고, 아이들이 경쟁 과정에서 불필요한 상처를 받지 않도록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 사회가 어느 정도의 소리와 활기를 함께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과 성장에 필요한 공간과 활동을 불편과 민원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결국 아이들이 누려야 할 일상부터 좁아질 수밖에 없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이 경험해야 할 좌절과 갈등까지 미리 제거하려는 태도다. 달리기에서 지는 것, 공을 놓치는 것, 응원하는 팀이 패배하는 것, 친구보다 잘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에게 속상한 일이다. 그러나 실패와 좌절은 적절한 지지와 성찰이 뒷받침될 때 회복탄력성과 자기조절 능력, 타인을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한 번도 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졌을 때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민원과 책임을 우려해 교육활동을 위축시키는 학교의 방어적 태도와 아이들에 대한 부모들의 과잉보호와 맞닿아 있다. 아이가 힘들어할까 봐, 속상해할까 봐, 혹시라도 민원이 발생할까 봐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의 경험 범위를 좁힌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부딪치고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잃는다. 보호라는 이유로 아이가 겪어야 할 경험마저 빼앗아서는 안 된다.

가을 운동회는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는 작은 사회였다. 함께 힘을 모으는 기쁨을 배우고,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을 견디며, 나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반드시 이기는 법만이 아니라 지는 법도 배웠고, 언제나 즐거운 순간만이 아니라 속상한 순간도 지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 하겠다는 어른들의 선의가 오히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지나치게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실패도 갈등도 없는 완벽한 환경이 아니다. 실패와 갈등을 경험하더라도 안전하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이다. 모든 불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불편을 이해하고 함께 조정하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운동장에 아이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일이 더는 특별한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운동장도 운동회도 사라지는 사회라면,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소음이나 패배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을 지키려다 정작 아이들이 성장할 기회까지 빼앗는 현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돌아봐야 할 문제이다.

/김혜정 젠더N정책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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