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대립·혐오 발언 등 심각성 인식
연대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욕망 깨워야
1920년대 카프 작가 송영의 소설은 구체적인 법과 제도와 결합된 내면에 주목한다. 가령 <선동자>(<개벽>, 1926.3)의 주인공 필승은 취재 중 T 학원 여학생들이 울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K 선생이 C 선생의 모함으로 쫓겨나자 여학생들은 동맹휴학을 시작하고, 학교는 배후로 필승을 지목해 남학생들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만든다. 피를 흘리면서도 대항하지 않던 필승은, 학생들의 말투가 ‘사법관인(司法官人)의 어조’로 변하고 죽음이 목전에 왔음을 깨닫자 비로소 ‘야수적 맹염(猛炎)’을 참지 못하고 대항 폭력을 행사한다. 소설이 주목하는 것은 교사에서 학생으로 이어지는 폭력의 순환구조가 발생하는 맥락과, 바로 그 순환구조를 정지시키는 방법으로서 주체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열의이다.
지금 우리는 ‘분노 사회’를 살고 있다. 정치적 국면마다 소환되는 이대남-이대녀 대립이나,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묻지 마 범죄, 인종과 계급 격차에 기반한 혐오 발언까지 주변에서 그 예를 찾기란 어렵지 않다. 심각성은 모두가 공유하지만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리에게 익숙한 분노는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향한 긍정적인 분노가 아니라, 젠더나 계급 격차에서 발생하는 타인을 향한 혐오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감정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AI(인공지능) 시대로 접어든 지금, 우리의 노동은 연대와 상생이 아니라 효율성과 생산성을 우선하는 가치를 좇는다. 이에 길들여진 우리의 내면은 삶의 가치체계 전반을 재조정한다. 삶은 힘들지만 ‘적’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우리 감정은 주변의 가시적 대상을 택하여 분노를 표출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필승처럼 나의 내면과 행동을 규정하려는 시스템에 대항할 열정을 되찾는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순환구조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그러므로 이 구조를 인식할 수 있는 힘과 그것을 끊어낼 본능의 힘이 함께 필요하다. 이 과정은 한마디로 ‘온전한 나’를 되찾는 일이다.
‘온전한 나’를 되찾는 첫걸음은 지금 나를 사로잡은 욕망의 정체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자본이 제시하는 단 하나의 욕망, 즉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을 나 자신의 욕망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필승을 마침내 움직인 것은 물질적 욕망이 아니라 부조리를 더는 견딜 수 없어 하는 마음이었다. 자본이 가르쳐주지 않는 욕망, 연대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욕망은 지금도 우리 안에 잠재해 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 다른 욕망을 상상하는 힘이다. 자본이 정해놓은 성공 척도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는 것, 그 바깥에도 지향할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분노는 방향을 바꾼다. 옆에 있는 동료나 낯선 타인이 아니라, 그러한 상상력을 가로막는 사회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분노해야 할 대상은 옆 사람이 아니라 나의 내면을 이렇게 축소시킨 시스템과 그 종사자들이다.
필승이 남학생들 폭력을 참았던 것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 폭력의 근원을 알아보려는 안간힘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다르지 않다. 나를 겨눈 분노를 그대로 받아치기 전에 그것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되묻는 일, 그 물음 끝에서라야 우리는 타인이 아닌 사회를 향해 ‘온전한 나’의 이름으로 분노할 수 있을 것이다.
/최병구(경상국립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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