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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침뜨락] 멀미

인공 지능이 꽤 똑똑하게 세부를 파고들어 기특함을 넘어 섬뜩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상황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하루에도 6천 번 생각이 바뀐다니 그러려니 하며 다름을 인정했을...

[아침뜨락] 멀미

이영희 수필가

▲ 튤립 / 이영희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꽃 같은 숙녀가 동석해서 부러운 마음으로 젊음을 응시했다. 내게도 저리 탱탱한 시절이 있었던가. 감탄하면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한참 가다가 그 고운 젊은이가 안절부절못하는 눈치다. 내 눈길이 부담스러운가보다 싶어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아픈 것은 아닌지 물어보니 차멀미하는 것 같다고 한다. 얼른 포장한 비닐봉지를 벗겨 내밀었더니 무척 고마워한다.

오래전 일이 생각났다. 제천이 고향이라 가끔 박달재를 넘어 청주를 다녀갔다. 그때는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 교통수단이 기차 아니면 버스였다. 그럴 때마다 멀미가 제일 많이 걱정되고 야속했다. 하루는 차가 만원이 되어,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꼬불꼬불한 박달재를 넘어가는데 멀미가 일어 참을 수 없었다. 마침, 어떤 청년이 비닐봉지를 내주어 망신을 면할 수 있었다. 그 청년이 내리기 전에 미리 인사해야지 했는데 종착지까지 가지 않고 먼저 하차했다.

제대로 고맙다는 소리도 못 하고 보내서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후 봉양서 통학하던 친구가 오빠를 소개한다며 자리를 마련했다. 쑥스러운 마음으로 나갔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부끄러워서 도망쳐 나왔다. 하필이면 멀미 현장을 들킨 청년이 친구의 오빠가 아닌가. 그 자리서 고마움을 표했으면 좋았을 텐데 자리를 걷어차고 나온 게 걸렸다. 얼마 후 국민소득이 높아져 자가용 시대가 됐고 1,960미터의 박달재 터널이 개통됐다. 자가운전 하며 터널을 편하게 통과하니 멀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언틀먼틀한 박달재를 걸어서 넘어보았지만 그래도 멀미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멀미 증세가 슬며시 나타났다. 중동전쟁으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도미노 셧다운 우려가 나오는 등 글로벌경제가 혼란에 빠졌다. 기름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쓰레기봉투도 마음대로 살 수 없으니 오래 전의 중동전쟁과는 생판 다른 먼 산의 불이 아니다. 이런데도 전쟁을 일으킨 국제 범죄자를 아무도 단죄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니 멀미가 난다. 평소에 멘털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 영향이 아닌지 제미나이에 넌지시 물어보았다.

차, 배, 비행기 따위 운송 수단의 흔들림을 받았을 때 몸의 평형감각이 적응하지 못하여 메스껍고 어지러운 걸 일반적 멀미라고 하는데, 사람이 진저리나도록 싫어지는 증세를 사람멀미라 한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에만 그런 게 아니고, 여러 요인이 통합 작용하여 그럴 수 있다며 되려 위로한다. 그러면서 다른 인간관계가 중첩된 것은 아닌지 질문까지 한다. 인공 지능이 꽤 똑똑하게 세부를 파고들어 기특함을 넘어 섬뜩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고 상황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하루에도 6천 번 생각이 바뀐다니 그러려니 하며 다름을 인정했을 것을. 황희 정승이 못되어도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며 다 맞다고 하거나 못 들은 체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홍매화를 구경하러 지난번 방문했던 화엄사 진입로에 나쁜 말을 하지 말고, 듣지 말며 보지 말라는 법구경의 말씀을 새겨 놓지 않았던가. 신파시즘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답답함과 나쁜 세 가지를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충돌을 일으켜 멀미를 일으키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람 인(人)자 자체가 서로 기대어 사는 것인데 그는 어쩌자고 자신의 욕망만 채우려 죄의식이 실종됐는가.

요즈음 멀미 증세를 이야기했더니 많은 시간을 같이하는 반려자가 충고한다.

▲ 이영희 수필가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폭풍우가 되면 큰 피해를 주게 되고 구름이 떠돌아도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매지구름이 되면 소나기를 퍼붓는다. 다 내려놓으라.” 성인이 따로 없다고 툴툴댔지만, 자신보다 속내를 더 잘 아는 족집게 같아서 뜨끔해진다.

죽은 줄 알았던 튤립 구근에서 어느 날 새싹이 올라오더니 꽃을 피웠다. 삶은 멀미하며 생명을 피워 올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질서랄까 섭리를 배운다.

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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