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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름다운 사람들

하던 일을 멈추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섰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주행속도를 조금 내야 한다. 오늘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동료들 앞에서 낭송해야 할 애송시를 소리 내서 암송하며 달린다. 아무도 없는 차 안이니 부끄러울 것도 없다.

아름다운 사람들

[월요일 아침에] 김영애 수필가

하던 일을 멈추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섰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주행속도를 조금 내야 한다. 오늘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동료들 앞에서 낭송해야 할 애송시를 소리 내서 암송하며 달린다. 아무도 없는 차 안이니 부끄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어제까지도 줄줄 잘 외우던 시가 지우개로 지운 듯이 떠오르지 않는다. 운전대 옆에 붙여놓고 읽으며 다니던 시를 슬쩍 훔쳐보며 희미해지는 기억력에 고개를 젓는다.

“바다를 떠나 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의 손에게 이렇게 따듯함을 느껴본 것이 그 얼마만인가.” 정호승 시인의 시‘연어’는 내가 좋아하던 시라 낭송을 잘해보고 싶었다. 읽고 또 읽으며 필사도 한다. 어려서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으면 명문 대학도 갔을 것이다. 그렇게 시는 나의 눈에서 입으로 드디어 가슴에 와 닿으며 울컥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시 낭송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혼자서도 시간을 유용하게 잘 보낼 수 있는 나의 노후 설계 플랜 중에 하나였다. 시를 좋아하던 터라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역동적이지 않는 내게 시 낭송 공부는 일주일에 두어 번 시간만 내면 재미있게 배우고 우아하게 즐길 수 있는 내게는 딱! 안성맞춤인 취미생활이었다.

용기를 내서 찾아간 시 낭송 교실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은 여고 시절 국어 선생님처럼 시인의 시를 구절구절 이해시켜 주셨고 내 또래의 아니 나보다 연배가 높으신 어른들은 소년 소녀가 되어 그 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낭송을 하고 있었다. 그 수업시간의 풍경은 나에게 그 어떤 유명한 시인의 시 한 편보다도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인향과 시의 향기에 푹 빠졌다.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꽃가라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멋쟁이 할머니가 수줍어하며 시를 읽고 있는 모습이 낭창낭창 하다. 창밖에 시선을 던지시고 시인이 써서 뉘어놓은 시에 낭송가는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이순의 나이를 살아온 삶의 연륜들이 배어있는 음성으로 조곤조곤 다가온다. 정년퇴직을 하고 시를 낭송하는 초로의 중저음 음성은 치열하게 살아냈을 그분의 지난 시간들에 무게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어떤 이는 손주를 돌보다가 또 누군가는 생업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달려왔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집안 구석구석을 윤기나게 걸레질 하면서도 시를 가슴에 품고 외우고 또 외웠으리라! 삶의 무게둘이 다 비워지는 시간이다. 성경 필사도 제대로 안해본 내가 누군가의 시를 필사하고 있을 때는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해진다. 전신거울 앞에서 몇 날 며칠 암송한 시를 낭송하고 있는 우아한 내 모습을 틈틈이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나이 들어가며 건강한 노년을 살고 싶은 욕망으로 몸에 좋은 비타민과 보약은 챙겨 먹어도 정신을 건강하게 해줄 마음의 보약은 준비하지 못한다. 몸에 좋은 보약들 때문에 육신은 건강해져서 평균수명이 길어졌다. 대책 없이 오래 살면서 지독한 고독감은 육신의 병듦보다 더 무서운 불치병이 될 수 있다. 날마다 문화센터로 출근해서 노래 교실을 가고 시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경로당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십원 내기 화투놀이를 하거나 그것도 무료해지면 공짜 버스를 타고 시장 어귀에 캄캄한 지하로 출근을 한다. 떳다방 약장수가 주는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씩 선물 받고 백만원 짜리 가짜 만병통치약을 덥석 구입 하기도 한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를 지나면서 바람결이 달라졌다. 이제 푸르던 나무들도 서서히 물기를 잃어 갈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가을을 우리도 맞이해야 한다. 석양에 불타는 노을빛처럼 나도 나무들도 곱게 물들어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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