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아산의학상 수상 당시 인터뷰 재조명
녹조생물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광유전학’ 개척
뇌 연구 넘어 망막질환 치료·심장 등으로 확장
지난해 아산의학상을 수상했던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교수는 페터 헤게만(Peter Hegemann) 교수, 게오르크 나겔(Georg Nagel) 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세 연구자는 빛을 이용해 특정 신경세포의 활동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광유전학(optogenetics)’의 토대를 마련하고 이를 현대 신경과학의 핵심 연구기술로 발전시킨 주역이다.
다이서로스 교수와 한국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3월 18일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선정하는 제18회 아산의학상 기초의학부문을 수상했다. 당시 미화 25만달러의 상금도 받았다. 특히 아산의학상 시상식을 하루 앞둔 2025년 3월 17일 서울아산병원과 아산생명과학연구원을 방문해 광유전학에 대한 특강을 하고 자신의 연구 과정과 철학을 상세하게 밝혔다.
바다의 녹조생물에서 시작한 생각
세계 신경과학의 흐름을 바꾼 광유전학의 출발점은 의외로 바다에 사는 작은 생물이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바다에 사는 식물성 단세포 생물인 녹조생물의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 ‘옵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포유류의 신경세포에서도 작동하게 할 수 있다면 빛으로 원하는 신경세포를 켜고 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제 구현은 쉽지 않았다.
포유류와 녹조생물은 세포에서 단백질을 발현시키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녹조생물에서 옵신을 만드는 유전자를 포유류 세포에 넣어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그는 이 과정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끊임없이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 시도가 만들어낸 것이 광유전학이다. 유전공학을 이용해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특정 신경세포에 발현시키고 특정 파장의 빛을 비추면 원하는 신경세포나 신경회로의 활성을 실시간으로 조절할 수 있다.
기존 전기자극과 비교하면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전기자극은 주변의 여러 신경세포를 함께 자극할 수 있지만 광유전학은 특정 종류의 신경세포를 선택해 조절할 수 있다. 시간적으로도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특정 신경회로의 작동과 동물 행동 사이의 ‘인과관계’를 직접 실험할 수 있게 됐다.
빛을 비추자 쥐가 돌았다
하지만 다이서로스 교수 자신도 처음부터 광유전학의 성공을 확신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세포 수준의 연구에는 성공했지만 살아 움직이는 동물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신경세포를 조절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주변의 우려도 컸다.
결정적인 순간은 2007년 찾아왔다. 광유전학을 취재하러 뉴욕타임스 기자가 연구실을 방문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당시 상황을 “기자에게 뭐라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회고했다.
연구진은 쥐의 뇌 우반구 운동피질에 광섬유를 삽입했다. 그리고 빛을 비췄다. 쥐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빛 자극을 중단하자 움직임도 멈췄다.
그에게는 오랫동안 머릿속에서만 그려왔던 생각이 실제 살아있는 동물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움직이는 동물에 광유전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뇌를 ‘관찰’하는 데서 ‘조절’하는 시대로
이 실험은 신경과학 연구의 방법 자체를 바꿨다. 과거에는 특정 행동을 할 때 뇌의 어느 영역이 활성화되는지를 관찰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광유전학은 한발 더 나아갔다.
특정 신경세포를 연구자가 직접 활성화하거나 억제한 뒤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뇌와 행동 사이의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는 강력한 연구도구가 등장했다.
이 기술은 이후 파킨슨병과 간질, 수면장애 등 다양한 신경계 질환의 발생 기전을 연구하는 데 활용됐다. 새로운 치료 표적을 찾거나 개발 중인 신약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데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다이서로스 교수가 바라본 광유전학의 종착지는 연구도구에 머물지 않았다. 사람의 질병을 직접 치료하는 기술로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해 서울에서 “색소성 망막염으로 시력이 상실된 환자를 광유전학 기술로 치료한 연구 결과를 2021년 발표했다”고 소개했다. 빛으로 특정 세포를 자극해 직접 질병을 치료하는 길이 열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광유전학으로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세포를 찾아내면 신약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다.
그는 “어느 세포에 무엇을 전달해야 뇌 질환 치료가 가능한지 연구가 진행될수록 광유전학 적용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뇌 속 광섬유 없애고 심장까지 확대
다이서로스 교수의 관심은 이미 광유전학의 다음 단계로 향하고 있었다. 핵심 가운데 하나가 ‘비침습화’다. 초기에는 뇌 깊숙한 곳의 신경세포에 빛을 전달하려면 수술을 통해 광섬유를 삽입해야 했다.
환자 치료에 적용하려면 넘어야 할 큰 장벽이다. 하지만 빛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옵신이 개발되면서 뇌 깊숙이 광섬유를 삽입하지 않고도 신경세포를 조절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지난해 “민감도가 높은 옵신들을 개발하면서 수술로 광섬유를 뇌심부에 삽입하지 않고 뇌표면에 빛을 전달하기만 해도 뇌심부 뉴런들을 조작할 수 있게 됐다”며 “비침습적인 방향으로 기술적 진보를 이뤄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유전학의 무대도 뇌에서 다른 장기로 확대되고 있다. 그의 연구팀은 쥐의 심근세포에 옵신을 발현시킨 뒤 적색 발광다이오드(LED) 조끼를 입혀 빛을 조사했다. 그러자 심근세포가 활성화됐고 심장 박동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장기들에 적용하는 연구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벨상 1년7개월 전 서울에서 남긴 열정
다이서로스 교수는 아산의학상을 받으면서 자신의 성취를 기술적인 성공만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그는 “과학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어지려면 창조성, 원칙, 정직성, 열정 등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산의학상 수상에 대해서도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뷰 마지막 질문에서 자신의 연구 인생을 압축하는 듯한 말을 남겼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중요하다.” 다이서로스 교수에게 광유전학은 성공 가능성이 보장된 연구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우리 연구도 확률이 매우 낮았지만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구자들에게 “실패 가능성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며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게 더욱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 말을 서울에서 남긴 지 1년7개월 뒤 광유전학 연구는 노벨 생리의학상으로 이어졌다. 바다의 작은 녹조생물이 빛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 시작한 아이디어, 포유류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난관, 살아 움직이는 동물에서도 가능할지 알 수 없었던 불확실성을 거쳐 광유전학은 현대 신경과학의 핵심 연구기술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25년 아산의학상 수상 당시 다이서로스 교수가 남긴 한마디는 그래서 이번 노벨상 수상과 겹쳐 읽힌다.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게 더욱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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