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들이 6.3 지방선거일인 지난 3일 전북 전주시 혁신동 한 아파트 내 투표소에 줄지어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선거 결과는 여러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선거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이번 선거는 내란 진압 이후에 치러진 선거라는 점에서,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광역단체장 16석 가운데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몇 석을 획득하느냐만으로 선거의 승패를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의 광역단체장을 차지할 것이라는 점은 선거 초반부터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니, 15:1로 민주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승패의 기준은 민주당이 광역단체장 몇 석을 확보하느냐가 아니라, 상징성이 큰 지역, 예를 들어 스윙 보터들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과 부산에서 누가 승리하느냐, 그리고 각 정당이 자신들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을 수성할 수 있느냐가 승패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양당은 모두 각자의 텃밭을 지켜냈다. 민주당은 가장 우려했던 전북 지역을 수성했고, 국민의힘은 그간 접전 지역으로 분류됐던 대구와 경북을 지켜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남은 것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 서울과 부산을 민주당이 가져갈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는데, 민주당은 서울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부산 역시 민주당이 완승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부산 시장 선거에서는 승리했으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에 밀렸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당은 12석의 광역단체장을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를 온전한 승리로 자평하기 어렵게 됐다.
민주당 ‘서울시장 선거’ 패배, 이재명 정권에 정치적 부담
서울에서의 패배는 이재명 정권에도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모든 선거는 현 정권에 대한 평가적 성격을 내포하는데, 스윙 보터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서울에서 여당이 패배했다는 사실은 중도층이 현 정권을 바라보는 시각의 단면을 드러낸 결과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의 ‘불완전한 승리’ 역시 중도층이 현 정권을 바라보는 시각을 일정 부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재명 정권이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진보든 보수든 강성 세력은 거부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30 세대가 이념 지향적 투표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투표하는 행태를 이번 선거에서 보여줬다는 점이다. 먼저, ‘강경 세력 거부’라는 민심의 표출은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할 당선인으로는 한동훈 의원, 오세훈 시장, 유의동 의원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합리적·온건 보수로 평가받는 정치인들이다. 이들의 당선은 단순히 합리적 보수의 재건 가능성을 높였다는 의미를 넘어, 앞으로 한국 정치에서 생존하려면 강경 세력의 논리를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유권자가 직접 입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유권자들이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는 단초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민심의 흐름도 중요하다. 아직까지는 2030 세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는지를 세부 데이터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출구 조사에서 나타난 2030 세대의 표심은 분석이 가능하다. 세대별 표심은 출구 조사 결과 이외에는 공식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선관위에서도 어떤 세대에 속한 유권자가 누구를 선택했는지는 확인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공식 통계로 발표할 수 있는 부분은 세대별 투표율 정도에 그친다. 결국 세대별 투표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출구 조사 결과뿐이다.
그런데 이번 출구 조사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서울·대구·울산·충북 네 곳의 특정 성별과 연령대가 어느 정당과 후보를 지지했는지에 대해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원인은 사전 투표 데이터 누락으로 알려졌으며, 이번 출구 조사에 참여했던 한국리서치의 실수로 확인됐다.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30대 여성에서 정원오 후보의 지지가 높았음에도 낮은 것으로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고 한다. 출구조사 집계값은 정상적으로 합산됐다고 하는데, 어쨌든 2030 세대의 이념 성향은 보수가 우세하다는 분석이 있다.
그렇다면 2030 세대가 이토록 보수 정당에 표를 몰아준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를 이해하려면, 이들 세대의 정치적 사고 구조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이들은 집단적 이익의 대표적 상징인 ‘이념’을 우선시하는 40·50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번 선거에서도 4050 세대는 어김없이 민주당에 몰표를 줬다. 실제로 4050 세대의 약 70%가 민주당 후보들을 선택했는데, 이들의 이념적 성향은 상당히 견고하다고 평가할 만하다. 반면 2030 세대의 사고 구조는 이념보다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정당과 후보를 선택할 때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느냐를 우선적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인데, 이런 투표 행태는 ‘이념이 생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현실적 감각에서 비롯된 ‘합리적 정치 행동’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청래 대표가 지난 10일 국회에서 지방선거 이후 처음으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 결과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을 강조하는 황명선 최고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30, 지방선거서 ‘조국 사태’ 떠올릴 수 있는 사안 마주해
이는 현대 다원주의 하에서의 민주주의와도 부합한다. 이념이 ‘과거의 유물’로 취급되는 경향이 뚜렷한 유럽 각국의 정치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다원주의의 본질은 다양한 개인적 이익들이 갈등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이익이 집단의 이익을 압도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비로소 젊은 세대들이 이런 후기 산업 사회적 다원주의에 걸맞은 사고 구조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들이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공정’이라는 문제를 개인의 이익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요소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세대는 과정만 공정하다면 결과를 수용하는 경향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만일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결과를 수용하지 못한다. 과거 ‘조국 사태’ 역시 2030 세대가 과정의 공정성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2030 세대가 과거 자신들이 경험했던 조국 사태를 떠올릴 수 있는 두 종류의 사안과 마주했다는 점이 이번 선거 결과를 좌우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이른바 ‘조작 기소 특검’이다. 해당 특검을 바라보는 2030 세대는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정성조차 지켜지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결국 이들 세대의 분노 투표로 이어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들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요소는 또 있다. 바로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다. 자신도 열심히 살았고,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직원들도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한쪽은 평생 만져보지 못할 금액을 성과급과 저리 융자금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보면서, 이들 젊은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삼성전자와 삼성 초기업 노조 간 분쟁 중재에 정부가 나섰다는 점이다. 이런 장면을 바라보면서 2030 세대는 진보 정권의 노동 정책이 진보적 가치에 부합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결과를 보면 ‘말 따로 행동 따로’라고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다시금 조국 사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 부동산 정책마저 자신들의 ‘현재’를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 정책으로 뚜렷하게 집값이 안정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상승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비거주 1주택자 문제까지 꺼내 들어 전세 가격은 물론 월세까지 상승하게 만들고 있으니, 이에 대한 불만 역시 이번 선거 결과에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선거 전략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도와달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정청래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 드리는 선거다. 이 대통령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국민들은 민주당 기호 1번을 찍어 달라”고 자주 말했다. 이런 주장을 했음에도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징인 서울을 국민의힘에게 내준 것은 정권 차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앞으로 이재명 정권의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
신율 명지대 교수 weeklyh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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