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자
시와 철학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해온 학문이자 사상이다. 시는 세상을 노래하고, 철학은 세상을 묻는다. 시는 느낌의 언어로 존재를 드러내고, 철학은 사유의 언어로 존재의 의미를 해석한다.
그러나 그들이 향하는 질문은 같다. "인간은 왜 태어나는가, 왜 고통받는가, 그리고 운명에서 그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시와 철학은 각각 운명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떤 인간적 진실로 수렴되는지를 살펴본다.
첫째, 시와 운명. 시인은 언어로 세계를 짓는다. 언어는 개념이 아니라 숨결이며, 논리보다 울림에 닿는다. 시 속의 운명은 분석의 대상보다는 체험의 질감으로 드러난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는 사랑과 상실의 정념(情念)을 넘어서 있다. "님은 갔습니다…(중략)…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내면과 운명에 내리는 엄숙한 결단이다. 절제된 언어로 운명을 회피하거나 도피하지 않는다. 고통에서도 고요한 의지와 헌신을 나타낸다. 이별의 슬픔이 만남의 방향으로 전환된다.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에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는 무상함에서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품는다. 허무와 상실에도 사랑의 잔광을 붙드는 인간의 운명을 노래했다. 정조는 낭만에 머무르지 않는다. 세월을 초월하는 지속성으로 아름다움을 부여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덧없는 현세가 고통스럽겠지만 열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심적 불안을 운명의 문으로 보고, 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영혼의 성숙을 읽었다. '두이노의 비가'에서 그는 고통을 성장의 동력으로 본다.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세계대전으로 인한 문명적 파괴와 개인적 절망을 겹쳐 놓았다. 절망을 언어의 갱신으로 되돌리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시가 말하는 운명은 주어진 격랑을 언어로 재구성하며 의미를 길어 올리는 창조적 행위다. 시의 운명론은 '체험의 전환'이다. 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찾아온 고통에서 대신 울어준다. 울음으로 존재의 진실을 증언한다. 운명은 시에서 미학적, 윤리적 자원으로 재탄생한다.
둘째, 철학과 운명. 철학은 운명이 사유의 대상이다. 시가 감정의 형태로 운명을 드러낸다면, 철학은 그 형태의 논리적 근거를 탐구한다. 스피노자는 범신론을 바탕으로 자연(神)의 필연성과 인간의 필연성 이해를 통하여 자유 가능성을 제시했다. 자신의 조건을 통찰할 때 조건은 압도하는 운명이 아니라 이해되고 수용될 수 있는 현실이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운명을 '불안의 심연'으로 보았다. 그는 그 심연을 절망의 굴레로만 두지 않았다. 절망은 자기성찰과 신에 대한 결단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니체는 운명을 긍정하라고 명령한다. 'Amor Fati(運命愛, 운명을 사랑하라)'는 고난을 부정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을 연인처럼 받아들임으로 인간을 강화한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으로 운명을 존재론으로 해석했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한계를 자각하고 자각에서 자기됨으로 향한다. 철학은 운명을 객관화하고 태도를 규정한다. 수용, 저항, 긍정, 재해석 등은 구체적인 선택으로 실천적 의미가 있다. 철학적 사유는 운명을 성찰의 장으로 삼는다.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생성하고 자기결정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지를 물어본다. 운명은 깨달음을 통하여 받아들여야 할 진실이다.
셋째, 두 운명의 만남. 시와 철학은 다른 길을 걷지만 동일 목적지를 지향한다. 시는 운명의 심장을 노래한다. 철학은 심장의 리듬을 분석한다. 시 없는 철학은 건조하다. 철학 없는 시는 표류한다. 시는 '감정'으로 질문하는 언어다. 철학은 '이성'으로 응답하는 언어다. 시가 마음의 등불로 내면을 비춘다면, 철학은 등불을 검토하고 행위로 나아갈 근거를 제공한다.
'어떻게 살아 낼 것인가?'라는 물음에 시는 심적 울림의 방향으로 철학은 논증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두 걸음은 하나의 중심에서 '운명을 사유하고 받아들이는 존재'로 만난다. 시와 철학은 운명을 창조하는 주체로 이끄는 힘이다. "느껴라, 생각하라" 그 사이에서 너의 운명을 새겨보라. 순간 너는 운명의 피조물에서 운명의 개척자가 된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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