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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시론] 새로운 기술에 대처하는 법의 자세

얼마 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작업반 회의에 참석했다. 데이터 거래에 관한 원칙을 정하는 모델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다. 최근 인공지능을 비롯한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데이터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는데, 이를 둘러싼 권리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론] 새로운 기술에 대처하는 법의 자세

얼마 전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의 작업반 회의에 참석했다. 데이터 거래에 관한 원칙을 정하는 모델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다. 최근 인공지능을 비롯한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데이터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는데, 이를 둘러싼 권리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적으로 데이터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데이터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권리의 객체들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물건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다. 저작권 같은 지식재산권도 저작물이라는 무형 자산에 독점적 권리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보호된다. 그런데 데이터는 물건이나 무형 자산과는 달리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데이터는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복제할 수 있고, 복제한다고 해서 효용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데이터가 다양한 경로로 생성될 수 있고,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으며, 원데이터에서 파생된 새로운 데이터가 생성되기도 한다.

어떤 데이터와 결합할 수 있는지, 어떻게 처리되는지,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에 따라 그 가치도 크게 달라진다. 이런 데이터는 특정하는 것부터가 매우 까다롭고, 이를 소유권의 객체인 물건이나 무형 자산처럼 취급하는 건 여러모로 맞지 않다.

이런 이유로, 기존에는 ‘데이터는 누구 것인가’ 하는 ‘데이터 오너십’ 연구가 주류였는데 최근엔 ‘누가 데이터에 접근하고 이용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기엔 데이터가 과소 생산되지 않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되, 그 혜택이 독점되지 않고 생산·유통에 기여하는 이들에게 정당하게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데이터 유출·침해의 책임을 누구에게 귀속시킬 것인지 등의 고민이 포함돼 있다. 이번 작업반 회의도 각 회원국의 의견을 모아 데이터 거래의 원칙을 세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흔히 ‘법이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규제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뿐이므로, 이렇게 새로운 분야에 대해 법은 한발 떨어져 있어야 하고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는 주장도 자주 들린다. 낡은 규제가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일이 많았으니, 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뼈아픈 지적이다.

그런데 ‘법’과 ‘규제’가 동의어는 아니다. 법은 기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약속을 의미한다. 새로운 기술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도 중요한 가치지만, 이를 둘러싸고 어떤 권리관계가 발생하는지, 무엇을 보호해야 하는지,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이들은 상반되는 가치처럼 보이지만, 사실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권리나 책임 문제가 정리되지 않아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그런 기술을 이용하거나 발전시키는 데 제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적인 공백 상태가 기술을 잘 알고 힘이 있는 사람이 정한 규칙으로 채워질 가능성도 크다.

법은 새로운 법 현상을 이해하고, 이에 관한 사회 구성원의 합리적인 약속을 담아내서, 예측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기술과 속도를 맞추거나, 한발 물러나 있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법과 기술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바람직한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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