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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론] 불확실성에도 적정 수준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일 프랑스 파리에서 마티아스 코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을 만나 성장의 기회와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는 ‘포용적 성장론’을 재차 강조했다. 고성장뿐만 아니라 저성장 시대에도 필요한 원칙이다.

[시론] 불확실성에도 적정 수준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일 프랑스 파리에서 마티아스 코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을 만나 성장의 기회와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는 ‘포용적 성장론’을 재차 강조했다. 고성장뿐만 아니라 저성장 시대에도 필요한 원칙이다. 그러나 잠재성장률마저 1%대로 내려앉은 작금의 초저성장 시대에는 한 가지를 더 고려해야 한다. 불확실성이다.

경제학자 프랭크 나이트는 1921년 저서 <위험, 불확실성 그리고 이윤>에서 위험과 불확실성을 구분했다. 위험은 발생 가능한 결과와 그 확률을 알거나 예상할 수 있어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 반면 불확실성은 가능한 결과와 그 발생 확률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기조차 어렵다. 나이트의 저서가 나온 지 100여 년이 지난 올해, 우리 사회는 그가 말한 불확실성을 생생히 경험했다. 6월 9000을 넘어선 코스피지수는 불과 한 달여 만에 5600까지 추락했다. 300만원에 육박하던 SK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120만원대로 밀려났다. 이미 알려진 위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이 시장을 지배한 결과다.

기업가치는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결정된다. 과거에는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흐름을 ‘위험을 반영한 할인율에서 성장률을 뺀 값’으로 나눠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저성장 시대에는 이 산식에 불확실성까지 더해야 한다. 미래 현금흐름과 위험, 성장률이 같더라도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가치는 하락한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공정한 분배에도 불확실성 관리가 필요하다. 불확실성이 기업가치와 성장을 훼손하면 나눌 과실 자체가 줄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모두 없앨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정부와 국회가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해서는 안 된다.

가령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둘러싼 논란은 신중해야 하지만 모호해서는 안 된다. 파병 여부뿐 아니라 판단 기준과 절차, 국회의 역할과 결정 시점을 설명해야 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을 둘러싼 논란도 청문회를 지켜보겠다는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후보자의 적격 여부와 별개로 청와대의 인사 검증이 어떤 기준과 절차로 이뤄졌는지 밝혀야 한다.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대통령과 대법원장 간 갈등도 헌법적 권한만 내세운 채 해결을 미룬다면 사회적 불확실성만 커진다.

불확실성을 줄이자고 해서 변화와 혁신을 멈추자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이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다. 부채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지렛대가 되기도 하지만, 감당할 만한 수준을 넘으면 오히려 독이 된다. 변화와 혁신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은 성장을 위해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방향과 일정이 보이지 않는 변화는 그 자체로 혼란이 된다.

변화와 혁신으로 인한 불확실성도 사회가 견뎌낼 수준을 넘으면 오히려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사관학교 통합이 대표적이다. 미래전 대응을 위한 혁신은 필요하다. 사관학교 통합이 이를 위한 적절한 해법인지는 충분히 논의하되, 우리 사회와 군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추진해야 한다.

불확실성에도 적정 수준이 있다. 초저성장 시대,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변화의 불확실성을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하는 데 있다. 그러려면 정책 목표와 기준, 절차와 기한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에 따라 적시에 결정해야 한다. 결정 권한은 지켜볼 권리가 아니라 결론을 내릴 책임이다. 국가가 할 일은 불확실성을 하나 더 보태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예측 가능한 내일을 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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