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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시론] 무엇을 위한 발전공기업 통폐합인가

공기업이 보유한 자본과 인프라를 민간 스타트업의 AI 수요 예측 기술이나 가상발전소 플랫폼과 결합하여 새로운 에너지 서비스를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들이 차별화된 서비스와 요금제를 바탕으로 판매...

[시론] 무엇을 위한 발전공기업 통폐합인가

이유수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이유수 숭실대 교수

[이투뉴스/시론] 정부가 한전의 5개 발전자회사를 거대 공기업으로 통폐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명분은 중복 투자 방지와 연료 구입비 절감을 통한 경영 효율화다. 조직결합을 통한 의사결정 신속화와 규모의 경제 효과도 기대된다. 그러나 이는 전력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간과한 채 조직의 외형적 변화에만 치중한 행정편의주의적 접근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발전공기업들이 진정으로 효율화되지 못한 근본 원인은 시스템 자체에 있다. 전기요금을 정치적 표심에 연동해 묶어두고, 도매가격을 자의적으로 통제하며, 경영평가라는 잣대로 5년마다 에너지 정책을 흔들어댔기 때문이다. 원가 변동이 가격에 반영되지 못하고 정산조정계수 등 인위적인 가격 통제로 발전사의 자발적 혁신 효과가 가려진다. 정권마다 바뀌는 가이드라인과 예측 불가능한 재생에너지 의무비율 조정은 장기적 투자계획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왔다. 이런 상태에서 조직의 체급만 키운다고 진정한 효율성이 달성되기는 어렵다.

정부가 내세우는 '연료구입비 절감' 역시 에너지 시장의 생리를 단순화한 논리이다. 국제 LNG 가격은 2021년 MMBtu당 40달러까지 급등했다가 2023년 10달러 이하로 하락하는 등 변동성이 극심하다. 이런 시장에서 단일 창구의 대량 구매가 협상력으로 작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일본 전력회사들은 2022년 에너지 위기 시 각사가 계약 시점과 도입선을 다변화한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평균 20% 이상 도입 비용을 절감했다. 도입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은 시장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를 가로막고 관료적 경직성만 키워 국가 전체의 에너지 수급 리스크를 높일 수 있다.

이번 통폐합 추진의 실질적 배경은 석탄발전소 폐쇄 과정의 부작용을 관리하기 위한 행정적 목적에 가깝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라 향후 수십기의 석탄화력을 폐쇄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분산된 자회사의 이해관계를 개별 조율하고 고용 전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부담이다. 단일 법인으로 통합하면 정책 기조를 관철하고 인력 재배치를 내부화하기가 용이해진다. 이는 시장논리보다 정책집행의 편의성을 우선한 조치다.

더 큰 문제는 단일 독점공기업의 등장이 전력거래소가 추진 중인 '전력시장 선진화 로드맵'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전력당국은 실시간 시장개설, 재생에너지 가격입찰제 도입 등을 통해 다수의 공급자가 참여하는 경쟁 기반의 시장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 공급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발전사들이 하나로 묶이면 시장은 사실상 거대 독점 체제로 전환된다. 독점 공급자가 제시하는 가격이 곧 시장 가격이 되는 구조에서는 실시간 입찰제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발전공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에너지 전환기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조직의 통합이 아니라 '시장구조와 사업영역의 재설계'에서 찾아야 한다. 먼저, 정부의 규제로 유명무실해진 연료비 연동제를 실질화하고 전기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취약계층 보호장치를 병행하되, 대규모 수요가 몰린 산업용 판매시장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하여 시장 가격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둘째, 발전공기업을 도매시장에만 묶어둘 것이 아니라 소매시장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 다만 공정경쟁 이슈를 해소하기 위해 회계분리, 독립 자회사 설립, 민간과의 컨소시엄 형태 등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공기업이 보유한 자본과 인프라를 민간 스타트업의 AI 수요 예측 기술이나 가상발전소 플랫폼과 결합하여 새로운 에너지 서비스를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들이 차별화된 서비스와 요금제를 바탕으로 판매 시장에서 상호 경쟁하게 만든다면, 인위적인 규제없이도 자발적인 효율화와 시장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셋째,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발전공기업의 사업 영역 제한 조항을 완화하고, 에너지 저장, 수요관리, 분산전원 통합 등 신규 사업진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영국은 2013년 전력시장개혁(EMR)을 통해 도매시장 유동성 강제 규제를 통해 민간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용량시장과 차액정산계약(CfD)이라는 정교한 소프트웨어 제도를 설계해 계통 안정성과 저탄소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도했다. 우리 전력시장 역시 조직 통폐합이 아닌 시장 친화적 제도의 고도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 전력산업에 필요한 조치는 관리의 편의를 위한 거대 독점기업의 재탄생이 아니다. 공정하고 정교한 시장제도를 정립하고, 공기업과 민간 생태계가 융합해 고부가가치 중심의 신산업을 촉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일이다. 구조적 청사진이 결여된 단일 통폐합은 도매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전력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뿐이다. 이제 하드웨어 중심의 조직 개편보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시장 제도 개선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이유수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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