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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스토킹 피해자 된 여성 기자, 7번의 소송으로 고발한 망가진 시스템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한 곽아람 기자는 2019년부터 일면식도 없는 1967년생 남성에게 스토킹,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여성기자협회 포럼W ‘위협 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 현장. 사진=한국여성기자협회.

“가해자는 법정에서 내가 쓴 신문 기사, 내가 회사 지시로 진행한 팟캐스트를 통해 나를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단지 업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표적이 돼서 범죄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 여기 있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우리는 직업 특성상 얼굴과 이름을 내놓고 일하는데, 일부 남성들은 신상이 공개된 여성을 공공재로 여긴다.”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

2003년 조선일보에 입사한 곽아람 기자는 2019년부터 일면식도 없는 1967년생 남성에게 스토킹,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가해자는 본인의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 일베 게시판에 곽 기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글을 올렸고 ‘내가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자 곽 기자가 허위로 본인을 고소했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가해자는 곽 기자의 기사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기사에도 지속적으로 모욕적 댓글을 달았다. 심지어 수감 중에도 곽 기자에게 음란물을 동봉한 편지를 보냈고, 동료들에게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고소를 취하시키라고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2021년 6월 친구로부터 이 사실을 인지한 곽 기자는 고소에 나섰다. 이후 현재까지 가해자를 대상으로 여섯 번의 형사고소와 한 번의 민사소송을 진행했다. 가해자는 1차 사건에서 통신매체이용음란, 모욕 등으로 징역 1년, 2차 사건에서 스토킹,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 협박, 정보통신망법 위반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모욕 등으로 징역 2년6개월, 5차 사건에서도 통신매체이용 음란, 정통망법 위반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 현재 복역 중이다. 지난 2일 3·4차 병합 사건 1심에서는 스토킹,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모욕 등으로 징역 3년과 3년간의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 명령이 선고됐다.

가해자는 법정에서 기사와 팟캐스트를 통해 곽 기자를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기자 일을 충실히 했다는 이유로 당한 피해였다. 곽 기자가 신고한 가해자의 유튜브 콘텐츠에는 다른 여러 여성 기자들을 성적 대상화한 콘텐츠도 함께 존재했다. 하지만 일터인 언론사는 여성 기자들의 피해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여성기자협회 포럼W ‘위협 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 주제발표에 나선 곽 기자는 “‘기자니까’ 당연히 겪고 이겨내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기자가 그것도 못 참냐’는 말을 회사 구성원들로부터 들은 적은 없는지, 일하다가 피해를 입었는데도 ‘개인적인 일 아니냐’며 회사로부터 지원을 거부당한 적은 없는지 묻고 싶다”며 “우리의 일터는 우리를 얼마나 보호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오늘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여성기자협회 포럼W ‘위협 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 현장. 곽아람 조선일보 기자. 사진=한국여성기자협회.

일곱 번의 소송 책 ‘탁월한 피해자’로 엮여 “형사 사법 시스템 비판 위해 쓴 책”

곽 기자는 ‘탁월한 피해자’였다. 가해자와 아는 사이도 아니고, 범행의 증거가 명확하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런데도 그는 갖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고소를 하러 갔더니 경찰이 한 시간 동안 서로 사건을 맡지 않으려 하기도 했고, 경찰로부터 ‘네가 고소를 해서 더 위험해진 것’이라는 2차 가해도 당했다. 가해자가 누범임에도 검찰이 공소장에 누범 가중 법조를 누락하고 2년만 구형하는 일도 있었다. 검찰은 공소장이 잘못됐다는 취지로 제출한 진정서를 읽어보지조차 않았다. 결국 시스템이 제대로 설계돼있지 않는 한, 개인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해도 망가진 시스템 속의 희생양이 될 뿐이었다.

검사가 피해자를 대리하는 구조 속에서 피해자는 형사재판의 당사자가 아니기에 시스템에서 배제되는 문제도 있었다. 곽 기자는 “피해자니까, 무고하니까 신고만 하면 국가가 모든 일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하겠지만 시스템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경찰과 검찰은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법원은 피해자의 보호보다는 피고인의 방어권에 더 신경을 쓴다”며 “‘나는 기자니까, 나는 시스템을 잘 알고 있으니까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시스템이 이미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상황에서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 책 '탁월한 피해자' 표지.

그래서 곽 기자는 6년간의 소송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고, 시스템이 부정한 당사자성을 확보하며, 현재 피해를 겪고 있는 이들뿐 아니라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목표로 쓴 책이다. 곽 기자는 “기자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자신을 보호하고,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소명을 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시스템의 결함 때문에 피해자가 겪는 부당함을 낱낱이 취재해 고발하고 보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뒤이어 “사건을 겪는 내내 국가로부터 가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아닌 국가와 싸워야 한다는 현실이 굉장히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며 “형사 사법 시스템을 비판하기 위해 쓴 책”이라고 밝혔다.

다변화되는 플랫폼 속 여성 기자 보호 방안 마련됐나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여성 기자들이 겪는 피해는 더 광범위해지고 있지만, 회사의 보호 없이 개인이 혼자 피해에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곽 기자는 “대부분 언론사의 사내 결정권자들은 남성인데, 스토킹에 대해 ‘좋아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라는 말을 하거나, 디지털 성폭력에 대해서도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한 것이 아닌데 뭔가 문제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며 “기자들은 유튜브와 팟캐스트 등 온라인상에 더 무분별하게 노출돼 있고, 여성 기자라는 이유로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해 전략적으로 더 노출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노출에 대한 피해 대비책과 기자 보호 시스템이 시대 변화에 발맞춰 진화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곽 기자는 한국여성기자협회 차원에서 각 회원사에 네 가지 사항을 권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취재 과정에서 범죄를 당했을 때 사내 신고 가이드라인 마련 △사내 2차 가해 금지 가이드라인 마련 △사내에서 2차 가해가 이뤄졌을 때 조사하고 인사평가에 반영하도록 하는 체계 마련 △자문 및 변호사가 성실했는지, 기자 보호가 얼마나 이뤄졌는 지 등 법무팀 자문 변호사 자문 및 변호 실적 공개 등이다.

곽 기자는 “우리에겐 피해를 이야기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고, 피해를 기록할 수 있는 펜이 있고, 법적 지식과 탄탄한 인맥이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만일 피해자가 되더라도 대한민국 평균의 피해자에 비해 월등히 ‘탁월한 피해자’일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피해자는 재판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자를 배척하는 현행 시스템 하에서는 여러분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보호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 시스템을 감시하고 부조리를 바로잡는다는 본연의 의무를 다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여성 발화 사회적 신뢰 무너뜨리는 AI 시대 온라인 폭력

이날 두 번째 발제를 맡은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플랫폼 환경에서 여성 기자를 향한 온라인 폭력이 공론장을 위축시키는 구조적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허 연구관은 “과거의 폭력은 댓글을 달거나 발언 내용에 대한 단편적 공격이었다면, AI 시대에서의 젠더폭력은 별로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상대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한 것과 마찬가지다. 딥페이크, 합성 성폭력 이미지처럼 피해자의 얼굴이나 신체를 강제적으로 전유하면서 훼손시키는, 발언하는 주체 자체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 1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한국여성기자협회 포럼W ‘위협 받는 기자들 어떻게 지킬 것인가’ 현장.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사진=한국여성기자협회.

여성 기자를 향한 온라인 폭력은 개인에 대한 폭력을 넘어 여성의 공적 참여를 좁히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허 연구관은 ‘증언부정의’(testimonial injustice)라는 개념으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증언부정의란 발화자의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그 사람의 말이 신뢰받지 못하는 현상으로, 내용이 아닌 ‘누가 말하는가’에 대한 편견이 신뢰 여부를 결정짓는 개념을 뜻한다. 허 연구관은 “여성 언론인이 팩트를 전달하려 할 때 딥페이크, 이미지 합성 등을 통해 훼손해 발화자의 신뢰성을 구조적으로 박탈하려는 것”이라며 “성적 대상화된 조롱거리로 전락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신뢰성이 없어진다. 온라인 공격이 단지 불쾌감이 더 깊어진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성의 발화에 대해 사회적 신뢰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선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정부와 언론사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보호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곳도 있다. 호주 공영 ABC방송은 자체적으로 기자와 뉴스룸을 위한 온라인 안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이 과정에서 국가 규제 기관인 디지털안전위원회(eSafety Commissioner)의 안전 가이드와 신고 절차를 수용·연계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자가 매우 높은 위험에 노출될 경우 연락 담당자가 ‘소셜미디어 웰빙 어드바이저(Social Media Wellbeing Advisor)’에 추가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신고에도 플랫폼이 대응하지 않을 경우엔 디지털안전위원회에 추가 지원을 요청하도록 권고된다.

영국 최대 뉴스 미디어그룹 ‘Reach plc’도 2021년 레베카 워팅턴 박사를 업계 최초의 ‘온라인 안전 에디터(Online Safety Editor)’로 임명했다. 에디터는 온라인 학대 사건 발생 시 즉시 도움받을 수 있는 보고 시스템에 기자를 연결하고, 악성 환경으로부터 기자를 분리해 추가 학대를 방지한다. 허 연구관은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도 비슷하다”며 “전담 인력이 신설될 필요가 있고, 사내 컨트롤 타워가 가동될 필요가 있다. 일상적인 보안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미디어오늘은 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나 소수자·약자 대상 혐오 발언이 우려되는 보도의 댓글창을 비활성화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관한 의견은 news@mediatoday.co.kr로 남겨주시면 검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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