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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수출 전진 기지 '구로공단' 조성

이후 1990년대부터 경공업의 쇠퇴와 함께 구로공단은 첨단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2000년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이 변경되며 IT 기반 산업단지로 탈바꿈하였다. 출처: 『한국 · 한국인 · 한국사회 뉴스로...

수출 전진 기지 '구로공단' 조성

[이창재의 한국 · 한국인 · 한국사회 읽기](4)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사진=구로공단 노동자 생활 체험관)

ABC뉴스=이창재 기자 / 구로공단은 대한민국 최초로 조성된 수출산업공단으로 제조업과 수출산업의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63년 수출산업촉진위원회가 발족되고, 일본에 파견된 실태조사단이 재일교포 기업인들로부터 공단 설립 요청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계획이 시작되었다. 구로공단은 서울 구로구에 조성된 1·2·3단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1965년부터 분양이 시작되어 1973년까지 3단지의 분양이 완료되었다. 이곳에는 섬유, 봉제, 가발 등 경공업 중심의 업체들이 입주하여 수출을 견인했고, 1978년에는 210개 업체가 약 7만 5천 명의 근로자를 고용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노동집약적 산업은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된 여성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도시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촉진했다.

구로공단의 업종 분포는 한국 산업화 초기의 수출 중심 제조업 구조를 잘 보여준다.[1] 1971년 제1·2단지의 입주가 완료된 시점에서 구로공단에는 총 74개 업체가 입주해 있었으며, 이 중 섬유봉제업체가 25개로 전체의 33.8%를 차지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그 뒤를 이어 전기전자업과 가발 제조업이 주요 업종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1982년에는 제3단지까지 준공되어 전체 입주업체 수가 211개로 증가했으며, 섬유봉제업체는 64개로 전체의 30.3%를 차지하며 여전히 가장 높은 비중을 유지했다. 전기전자업체는 55개로 26.1%를 차지하며 두 번째로 많았고, 가발 제조업체는 3개로 크게 감소하였다. 입주 초기 구로공단에는 섬유봉제, 전기전자, 가발 등 노동집약적 수출 제조업체들이 주로 입지해 있었으며, 당시 국가 경제 전략과 맞물려 수출 중심 산업 육성의 일환이었다.

구로공단의 성공은 전국적으로 산업단지 개발 붐을 일으켰고, 광주·대전·전주·청주·대구·춘천 등 지방 도시에도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지역 균형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가 빠르게 자리 잡았고, 노동집약적 산업을 통해 수출을 확대하며 국가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구로공단은 민간 기업이 산업단지 개발에 뛰어들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1970년대에는 영등포기계공단(현 서울온수산업단지) 등 민간 주도의 산업단지가 수도권에 잇달아 건설되며 산업 생태계가 확장되었다. 이를 통해 대규모 고용이 창출되고, 서울 서남권은 급격히 성장해 도시 발전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2]

영등포구는 일제강점기부터 공업지역으로 1960년대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되었고, 이에 따라 대규모 공장 신설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문래동과 영등포동 일대에는 기계공장이 도로변과 골목을 따라 밀집해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영등포구는 도시정비 사업과 함께 대규모 상가 및 주택단지가 들어서면서 공업지역 성격이 점차 약화되었다. 여기에 정부의 수도권 과밀 억제 정책이 더해지면서, 영등포에 위치한 많은 공장들이 반월, 안양, 의정부, 성남, 부천, 인천 등 수도권 외곽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영등포구의 제조업 비중은 점차 감소하게 되었으며, 서울 내 제조업 중심지로서의 위상도 약화되었다.

또한 구로공단은 1970~80년대 노동운동의 중심지로 부상하며 사회적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이 성장했고, 대학생들의 위장 취업을 통한 연대 활동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후 1990년대부터 경공업의 쇠퇴와 함께 구로공단은 첨단산업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2000년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이 변경되며 IT 기반 산업단지로 탈바꿈하였다.

출처: 『한국 · 한국인 · 한국사회 뉴스로 읽다1』 좋은땅

[1] 서울역사편찬원. 『서울 2천년사 34』-현대 서울의 경제와 산업. 2016. p242~244.

[2] 산업화 토대 구로공단의 성쇠… 퇴적된 ‘노동 희생’ 등 명암 잊지 말고 되새겨 봤으면 [마강래의 함께 살아가는 땅]. 서울신문. 2023.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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