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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수요칼럼]오만한 지식과 굳어진 특권 -엘리트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방식

역사는 종종 전혀 다른 시대의 옷을 입고 반복된다. 고려시대의 음서제와 오늘날 고착화된 엘리트주의는 동일한 제도라 할 수 없다. 그러나 특정 집단에 기회와 권력이 집중되고 사회적 이동성이 축소될 때 발생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지닌다.

[수요칼럼]오만한 지식과 굳어진 특권 -엘리트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방식

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역사는 종종 전혀 다른 시대의 옷을 입고 반복된다. 고려시대의 음서제와 오늘날 고착화된 엘리트주의는 동일한 제도라 할 수 없다. 그러나 특정 집단에 기회와 권력이 집중되고 사회적 이동성이 축소될 때 발생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지닌다.

고려의 음서제가 고위 관료의 자손 등에게 과거를 거치지 않고도 관직에 진출할 기회를 제공했듯, 현대사회는 혈연 대신 ‘능력’이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노력과 실력에 따라 보상받는다는 원칙은 건강한 사회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하지만 문제는 출발선의 차이를 외면한 채 결과를 오로지 개인의 능력으로 설명할 때 발생한다.

능력주의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성공 그 자체가 아니라 성공을 오직 개인의 노력과 능력 덕분이라고만 착각하는 오만이다. 개인의 성취에는 노력뿐만 아니라 가정환경, 교육, 사회적 관계, 시대적 기회 등 다양한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뿐만 아니라 자신이 누린 기회의 조건을 성찰할 책임도 따른다.

그러나 엘리트주의가 심화될 때 더 큰 문제는 전문성이 특권의식과 결합하는 데서 나타난다. 전문가가 지식을 활용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전문가라는 이유로 시민의 판단을 무시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더 많이 알고 있으니 대중은 따라오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할 때 전문성은 민주적 정당성을 위협하는 독단으로 변질된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 정치의 단면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인이나 논객들을 향해 엘리트 의식 또는 선민의식의 발로라는 비판이 자주 제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이들이 대중의 복잡한 민심이나 절차적 민주주의의 무게보다, 자신들이 스스로 정의 내린 올바른 가치나 정치적 정통성을 우위에 두고 정국을 재단하려 할 때 이러한 비판은 정당성을 얻는다.

가치를 독점한 이들의 계몽주의적 태도는 대중을 설득해야 할 주권자로 보는 대신,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지도받아야 할 대상이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한 집단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예컨대 대통령의 당선이나 국정 운영 난맥상을 민심의 흐름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대중의 무지한 선택이나 구조적 사고로 규정하는 태도는 스스로를 정세의 유일한 해법을 아는 지적 엘리트층으로 상정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나아가 헌법적 절차인 탄핵을 정치적 분석이나 압박의 수단으로 가볍게 언급하거나 예견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가 지닌 타협과 설득의 공간을 축소시키며, 정치를 극한의 대결 구도로 몰아넣는 주된 요인이 된다.

이처럼 지적 우월성에만 매몰된 엘리트주의는 자기 교정 능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킨다. 정책이 실패했을 때 그 원인을 깊이 성찰하기보다 “대중이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대중의 탓으로 돌려버린다면, 건전한 비판과 반론은 무지의 소산으로 묵살되고 결국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는 사라진다. 진정으로 전문성이 높은 집단일수록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특히 오만한 엘리트주의는 포퓰리즘이 파고들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자신의 삶과 경험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시민은 기존 제도와 기성 권력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의 부상을 단순히 대중의 무지나 비합리성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왜 시민들이 기존 질서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지, 왜 제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무너졌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해법은 엘리트 집단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에 대한 견제와 권력의 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현대사회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역할은 필수적이지만, 엘리트가 영구적인 특권계급으로 굳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발 과정에서 실질적인 기회의 격차를 좁히고, 시민사회의 감시와 참여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건강한 사회의 기준은 소수의 엘리트가 얼마나 성공했느냐에만 있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가, 노력이 공정하게 평가된다고 믿는가, 목소리가 사회와 정치에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엘리트의 전문성과 대중의 민주적 참여는 서로 적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전문성은 민주주의의 정책적 질을 높여주고, 민주적 참여는 전문성이 오만한 독선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 주는 방패가 된다.

역사가 반복하는 것은 제도 그 자체라기보다 권력을 쥔 이들이 자신의 특권을 당연한 권리로 여길 때 나타나는 오만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고 오늘의 정치를 성찰하는 진정한 이유는, 과거의 오류를 오늘의 우리가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경계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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