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원 대구가톨릭대 연구교수, 인간공학박사
대구의 봄은 늘 단단했다. 팔공산의 잔설이 녹기 전부터 이곳의 정치적 공기는 이미 하나의 색깔로 선명하게 물들곤 했다. 이른바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는 논리 이전의 정서였고, 변치 않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지금, 대구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 거리를 메우던 견고한 지지세는 간데없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서늘한 무관심과 서운함을 넘어선 분노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힘 지지율 하락과 민주당의 접전 양상은 단순한 ‘일시적 흔들림’으로 치부하기엔 그 깊이가 너무 깊다.
왜 대구는 등을 돌리고 있는가. 중앙 정치권은 이를 당내 계파 갈등이나 특정 인물의 행보 탓으로 돌리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대구 시민들의 목소리는 훨씬 본질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기만의 누적’이다. 그동안 대구는 보수 정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최후의 보루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정작 당선증을 거머쥔 이들은 서울로 올라가 중앙 정치의 논리에 매몰되었고, 대구는 다시 ‘잡은 물고기’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예산 폭탄”과 “지역 발전”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고, 대구의 1인당 지역내 총생산(GRDP)은 여전히 전국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보수의 가치를 지킨다는 자부심만으로 버티기엔 시민들의 삶이 너무도 고단해진 것이다.
둘째는 ‘오만한 공천 시스템’에 대한 염증이다. 대구 시민들이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중앙당의 안일한 인식이다. 지역의 현안을 꿰뚫고 시민과 호흡해온 인물보다는, 중앙당의 눈치를 잘 살피거나 권력의 핵심과 닿아있는 인물들이 낙하산식으로 내려오는 광경을 대구는 수십 년간 목격해왔다. 이는 대구 정치를 하향 평준화시켰고,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 정치인들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시민들은 이제 자신들의 선택권이 중앙당의 공천장 한 장에 좌우되는 상황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셋째는 비전의 부재다. 인공지능(AI)과 로봇, 신공항 건설 등 거창한 구호는 난무하지만, 그것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체감 지수는 낮다. 특히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대구가 어떻게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보수 정당이 대구를 지키는 방식은 과거의 향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먹거리를 제시하는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과거의 영광을 복기하는 데 급급할 뿐,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 힘은, 그리고 보수 진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자명하다. 먼저 ‘보수의 심장’이라는 가스라이팅을 멈춰야 한다. 대구가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줄 것이라는 착각을 버리고, 이곳을 가장 치열한 ‘경합 지역’으로 상정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힘이 보여줘야 할 것은 기득권 수호가 아니라 ‘파격적 혁신’이다. 관료 출신이나 중앙당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아닌, 대구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할 실무형 인재를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공천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개방형 경선을 도입해 잃어버린 ‘선택의 효능감’을 돌려주어야 한다.
또한, ‘지역 민생’으로의 완전한 회귀가 필요하다. 중앙의 정쟁은 여의도에 맡겨두고, 후보들은 대구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무너진 자영업자의 삶과 청년들의 이탈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대구경북 통합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시·도민의 삶에 어떤 실질적 이익을 주는지, 신공항이 단순한 토목 공사를 넘어 어떻게 대구의 산업 지도를 바꿀 것인지 증명해야 한다.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고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는 ‘태도의 변화’도 필수적이다.
대구 민심의 변화는 보수 진영에 닥친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건강한 보수로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대구 시민들은 지금 “우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정당은 우리도 필요 없다”는 존엄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번 6월 지방선거는 국민의힘에 대한 채점이 아니라, 대구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지지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오직 실력과 진심으로만 민심의 파도를 넘을 수 있다. 대구의 자존심은 투표용지 위에서 다시 세워질 것이다.
보수 정당이 이 준엄한 명령을 받들지 못한다면, 대구라는 보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좋아요
0
도움돼요
0
아쉬워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채영택
다른기사 보기
저작권자 © 대구신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