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수요칼럼] ABB와 신공항, '내 지갑'과의 거리 좁히기가 먼저다

후보마다 대구의 미래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산업 육성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을 전면에 내세운다. 수조 원의 예산 투입과 수십만 명의 고용 창출이라는 숫자들이 매일같이 지면을...

[수요칼럼] ABB와 신공항, '내 지갑'과의 거리 좁히기가 먼저다

-거대 담론의 홍수 속에서 길 잃은 민생…이제는 ‘체감형 정책’의 실력을 물어야 할 때

이충원 대구가톨릭대 연구교수 인간공학박사

대구의 정치가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방선거라는 거대한 계절의 변화 앞에서 대구의 하늘은 장밋빛 약속들로 가득 채워진다. 후보마다 대구의 미래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산업 육성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을 전면에 내세운다. 수조 원의 예산 투입과 수십만 명의 고용 창출이라는 숫자들이 매일같이 지면을 장식하며 마치 내일 당장 대구의 지도가 바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화려한 수사(修辭) 뒤에서 시민들은 차갑게 묻는다. “그래서 그 거대한 사업들이 당장 오늘 나의 지갑, 그리고 내 아이의 일자리와는 도대체 어떤 상관이 있는가?”

대구는 오랫동안 ‘희망 고문’의 도시였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최하위라는 뼈아픈 꼬리표는 30년 넘게 떼지 못한 훈장 아닌 흉터가 되었다. 그동안의 정치가 외형적인 인프라 확충에 치중해왔다면, 이제는 그 성장의 과실이 어떻게 시민 개개인의 식탁 위에 오를 것인지를 증명해야 할 때다. 신공항이 들어서고 첨단 산업 단지가 조성되는 것이 대구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임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것이 ‘나의 풍요’로 치환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정책도 시민들에게는 그저 남의 집 잔치일 뿐이다.

지금 대구에 필요한 것은 거대 담론을 읊는 확성기가 아니라, 그 담론을 시민의 일상으로 정교하게 연결할 ‘정책의 설계자’다. ABB 산업이 대구의 미래라면, 그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대구의 대학들이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산업 육성이 아니다. 우리 지역 대학에서 배출된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고도 대구의 기업에서 적정 임금을 받으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인재 양성-기업 매칭’의 선순환 구조가 작동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정책적 근육’을 냉정하게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예산을 따오겠다는 호기가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우선 배정하고 어떻게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실무적 식견 말이다. 특히 대학 교육의 혁신은 대구 소멸을 막을 마지막 보루다. 대학이 지역 산업 현장과 호흡하며 신산업에 최적화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자체는 이를 행정적으로 뒷받침하여 지역 인재가 지역 산업을 지탱하는 고리를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 설계야말로 화려한 공약보다 백 배는 더 가치 있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필자는 최근 지역 정가에서 들려오는 정책 자문 요청들을 접하며 한 가지 희망과 우려를 동시에 갖는다. 정치권이 드디어 전문가의 실무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자칫 전문가의 이름이 선거용 소품으로만 소비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지울 수 없다. 진정한 정책 자문은 후보의 등 뒤에 서서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편에 서서 공약의 허실을 매섭게 따지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행위여야 한다. 정책에는 이념이 없어야 하며, 오직 시민의 삶을 단 1%라도 개선하겠다는 실용주의적 투지만 남아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대구 시민들이 주목해야 할 지표는 명확하다. 후보의 인지도나 정당의 깃발이 아니라, 그가 내놓은 정책이 얼마나 내 삶의 현장에 밀착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ABB를 하겠다”는 구호보다 “ABB 산업을 통해 청년들의 초임 연봉을 얼마만큼 올리겠다”는 약속이 훨씬 무겁다. 시민들은 이제 숫자로 포장된 거대 담론에 속지 않는다. 내 지갑과의 거리가 먼 정책은 죽은 정책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정치는 사람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후보들이 내놓은 설계도가 부실하다면 과감히 반려하고, 실생활을 바꿀 제대로 된 대안을 가져오라고 요구해야 한다. 대구의 미래는 팔공산의 기세가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바꾸겠다는 시민의 권리 의식과 이를 현실로 만들어낼 전문가들의 헌신적인 설계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대구의 봄은 짧고 여름은 치열하다. 이번 6월의 선택이 대구 시민들의 지갑을 채우고 청년들의 꿈을 고향 땅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실질적인 대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화려한 수사 뒤에 숨은 정책의 민낯을 가려내는 안목, 그것이야말로 대구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전문가의 식견이 선거의 소음 속에서도 빛을 발하여, 대구의 4년이 ‘말’이 아닌 ‘실력’으로 채워지길 바란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