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수 한길치과 원장
울산의 모 방송국 유명 아나운서가 우리 치과의 환자였던 인연으로 라디오 방송에서 몇 년간 치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방송 경험도 없고 실시간 생방송이란 점도 부담스러웠는데, 나른한 오후에 활력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라 욕만 아니면 무슨 얘기든 하면 된다기에 용기를 냈다. 본격적인 상담에 들어가기 전에 남녀 두 분의 아나운서와 함께 대본에 따라 간단한 코믹 콩트와 퀴즈 문제를 낸다. 그 후로는 대본 없이 생방송 중에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청취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인데, 혹시 나도 모르는 돌발 질문이라도 들어올까 봐 방송 초기에는 늘 청심환을 먹어야만 했다. 하지만 두 분 아나운서들의 물 흐르듯 대화를 유도해나가는 능숙한 진행 솜씨 덕분에 어느덧 방송임을 잊고 함께 낄낄대며 즐기는 여유를 가지게 됐다. 방송 때마다 그날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었지만, 매번 주제와는 상관없이 임플란트와 관련한 식상하고 뻔한 질문들만 반복되었다. 나는 청취자들에게 치과에서는 훨씬 다양한 치료들이 이루어짐을 알리고자 노력했고, 요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먹튀치과, 이벤트성 덤핑치과, 자칭 양심치과, 과잉진료 논란 등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케이블 TV의 건강 대담 프로그램에서는 의사들이 출연해 환자의 체험 사례를 전하며 다양한 의학 지식을 전해준다. 유익한 내용이 많지만, 어떤 특정 성분을 유독 강조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땐 그 해당 프로그램에서 한 두 채널만 옮기면 어김없이 그 성분을 원료로 한 건강 보조 식품의 홈쇼핑 광고를 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너무 노골적이다. 의사라는 사람이 방송에 가운을 입고 나와서 제품 광고나 하고 매스컴을 통해 자기 과시와 병원 홍보로 결국 돈벌이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이들을 우리는 일명 '쇼닥터'라고 부른다. 아마 이들은 출연료를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내고 방송을 하지 싶다. 돈만 내면 명의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단다. 예전에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안다. 젊은 시절 미스코리아 지역 예선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심사위원이 되려면 주최하는 언론사에 상당한 금액을 내야 했다. 그 대가로 진선미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심사위원 위촉패를 받아 병원 내 홍보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명백히 쇼닥터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의학 지식과 상식은 얻되 쇼닥터들의 상업성에 현혹되지는 말아야 한다. 진짜 실력파 의사들은 소위 마케팅이나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재야의 은둔 고수처럼 조용히 지낸다. 하지만 돈벌이에 눈먼 의사들은 광고와 조회 수를 먹고 사는 매스컴을 들락거리며 환자들을 선동한다. 그들은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찬양할 것이다'라는 말을 신조로 하기에 연예인들처럼 기를 쓰고 방송 출연을 하려는 것이다.
SNS를 도배하며 양심 치과 운운하는 특정 치과들은, 병원을 공장처럼 돌리며 덤핑을 치면서 다른 치과들을 모두 비양심 치과로 매도를 한다. 이들은 홍보비로만 매월 억 단위를 쓴다. 협회에서 시정을 요구하면 의뢰한 마케팅 회사에서 한 일이라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뗀다. 게다가 요즘은 AI가 만든 가짜의사를 이용한 광고까지 기승을 부린다. 외국에서 인증받은 특허 물질을 원료로 만든 약이라고 광고를 하면서 관절염이나 통풍, 이명, 황반변성 등 잘 낫지 않는 만성 질환들을 대상으로 이 약만 먹으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선전한다. 나는 이명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SNS상에서 약을 구입한 적이 있다. 몇 달을 먹어도 아무 효과가 없자 결국 아내에게 핀잔만 들었다. 바르기만 해도 녹아내린 잇몸을 재생시켜 준다는 황당한 광고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잘 아는 치과의사가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의사마저 이러니 인터넷의 어설픈 의료지식으로 병원에서는 묻고 따지는 똑똑한 환자들조차 SNS상의 뻔한 미끼는 덥석 물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가짜 약사까지 나와서 한술 더 뜬다. SNS상에서 사기 치는 약들을 보면 분노를 금치 못한다면서 자기가 소개하는 약은 믿어 보라니 이런 코미디가 없다. 도대체 못 고치는 병이 없으니 이러다 나중엔 암까지 치료하는 약도 나올 판이다. 실로 노벨상감이 아닐 수 없다. 식품 광고에서 의사 등의 추천, 보증 광고는 법령상 금지 되어있고 허위, 과대광고는 반드시 처벌해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
방송을 하고 나면 지인들에게 링크를 보내 모니터링을 부탁하는데, 무슨 의학 상담이 이렇게 낄낄대며 정신이 없냐고 놀린다. 실시간 청취자 반응 중에, 약속 시간에 늦었는데 상담이 너무 웃기고 재밌어서 차에서 내리질 못하고 있다는 댓글도 있었다. 잠 깨우는 예능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거 같다. 하지만 그래봐야 나는 남의 입으로 먹고사는 치과의사이지 자기 입으로 먹고사는 아나운서들에 비할 바이겠나. 말만 잘하는 쇼닥터가 아니라, 말도 잘하는 유능한 치과의사가 되고 싶을 뿐이다. 허용수 한길치과 원장
허용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