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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덕칼럼] 14년전 그 추운 봄날의 약속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까지 전염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 회장이 약속을 지켰으면 한다. 일종의 SK하이닉스 특수성이다. 최 회장이 14년 전 직원들에게 바로 그런 행복의 꿈을 심어줬다. 매일 아침 행복 날개를 단...

[손현덕칼럼] 14년전 그 추운 봄날의 약속

SK하이닉스 출범식 날

최태원회장이 약속했다

세계일류기업과 직원행복을

뜬구름 같은 꿈이 실현됐다

손현덕 주필

계절은 봄인데도 겨울 날씨였다. 수은주는 영하로 떨어졌다. 14년 전인 2012년 3월 26일. SK하이닉스가 공식 출범했다. 요란한 팡파르는 없었다. 산업부(당시 지식경제부)에선 장차관이 아닌 실장이 참석했다. 이천 본사에서 오렌지색 바탕에 'SK하이닉스 출범식'이라고만 쓴 현수막을 앞에 놓고 주요 임직원들과 기념촬영하고 끝냈다. 새 주인 맞았다고 크게 기대하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회사가 어려워 메모리 반도체만 빼고 나머지는 다 매각했다. 은행 관리라 신규 투자는 언감생심. 호황과 불황 사이에서 흑자 적자를 반복하던 회사였다. 낯가림이 심한 최태원 회장이 단상에 섰다. 생존이 시급한 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 같았던지 대부분 직원들은 귓등으로 들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저는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 이상으로 도약하는 SK하이닉스를 꿈꾸고 있습니다. 세계 일류 반도체 기업으로 거듭나서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행복을 나누는 SK하이닉스를 만들어가겠습니다."

당시로선 어느 한구석도 실현될 것 같지 않았던 인사말. 그러나 14년이 흐른 지금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보면 전율이 흐른다. 이노베이션과 텔레콤 이상으로 도약한 건 물론이고 세계 일류 회사가 됐다. 꿈은 이뤄졌다.

최 회장은 인수 첫해부터 과감한 투자에 나선다. 책임감을 갖고 반도체 사업을 키우겠다는 약속을 지킨다. 그는 출범식이 끝나고 직원들과 어울렸다. 인근 호프집을 잡아 치맥파티를 벌였다. 회식 명칭이 '해피토크오픈이벤트(Happy Talk Open Event)'. 직원들은 빈말로 들었을지 모르나 최 회장은 진심이었다.

"여러분을 만나서 행복하다. 오늘보다 내일은 더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면서 생겼다. 앞으로 행복을 키워가자."

검은색 점퍼 차림으로 500㏄ 잔에 맥주를 가득 채워 테이블을 돌면서 직원들과 통음(痛飮)했다.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결국 그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천 숙소에서 하루를 묵었다.

지금 재계에선 이익 많이 내는 기업의 보너스가 화제다. SK하이닉스가 불을 질렀다. 작년 9월 노사 합의를 통해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주기로 했기 때문. 물론 이 중 20%는 2년에 걸쳐 유예한다. 8대1대1의 원칙. 그렇게 해서 작년 실적 기준으로 직원들이 평균 1억원 이상의 보너스를 받았다. 영업이익이 47조원이고 이 중 10%를 3만4000명 정도가 나눠 가지면 대충 그 금액이 나온다. 문제는 올해다. 예상대로 영업이익이 200조원가량 된다면 보너스 규모는 평균 5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 기업이 반도체만 있는 건 아닌지라 대부분 직장인들은 배 아파할 거고,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위화감을 조성할 게 분명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까지 전염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 회장이 약속을 지켰으면 한다. 일종의 SK하이닉스 특수성이다. 최 회장이 14년 전 직원들에게 바로 그런 행복의 꿈을 심어줬다. 매일 아침 행복 날개를 단 높이 15m, 폭 25m의 은빛 아치형 정문을 통해 출근하는 직원들. 고난을 헤쳐 나온 그들의 기억회로 어딘가에는 최 회장의 출범식 인사말이 저장돼 있을지 모른다. 사회적 갈등을 이유로 그 약속을 깨는 건 월급쟁이들의 미래마저 깨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번엔 노조가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한다. 반도체산업의 속성을 잘 알고 있을 직원들이다. 지금의 영업이익을 지속하려면 초격차 실력을 계속 유지해야 하고 그러려면 영업이익의 몇 배에 해당하는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번엔 직원들이 받게 될 보너스의 일부를 미래를 위한 투자로 돌려 훗날 더 크게 보상해달라고 사측에 제안하는 깜찍한 상상을 해본다. 마침 내일이 1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하는 날이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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