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한국직업상담협회 이사·전 부산시교육청 교육연수원장
지난해 말 미국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발생한 14세 소년의 죽음은 우리에게, 특히 아이를 둔 학부모들에게 섬뜩한 충격을 주었다. 소년은 친구들보다 AI 챗봇인 ‘대너리스’와 더 자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정서적으로 의존했다. 챗봇과 대화를 나누던 중 죽음으로써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데이터가 만들어낸 가짜 공감에 마음을 빼앗기고, 현실과 가상을 구별할 수 없게 된 걸까. AI는 도구를 넘어 아이들의 영혼에까지 깊숙이 파고들고 있는 것 같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2026년 다보스 포럼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칼’이 등장했다고 발표하며, 인간이 AI를 도구로 쓰려다 오히려 AI에게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대표적 예가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AI에게 타격 순서 결정의 핵심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이는 군사작전 의사결정에 인공지능이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말해준다. 과거의 기술은 인간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도구’였으나 이제 AI는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며 목적지까지 결정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한 것이다.
AI는 내가 원하는 업무에 언제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력서도 뚝딱 써주고, 절세 방법, 재산 증식 방법도 알려주니, 참으로 편리하고 유익한 도구다. 어떤 귀찮은 질문을 반복해도, 틀린 답을 계속해도, 지치지 않고 투정까지 친절하게 받아주고 위로해 준다. 하지만 그저 얻기만 하는 일은 없는 법. 인간이 기계가 되고 기계가 인간이 되어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세상이 코앞이다. 우리 사피엔스들은 목적지도 알 수 없고 멈출 수도 없는 기차에 이미 몸을 실은 걸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길러야 할까. ‘칼’은 의사가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지만, 강도에게 맡기면 생명을 해한다. AI를 제대로 알고 나의 필요에 맞게 잘 활용하는 아이, 즉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며 책임질 줄 아는 민주시민’으로 키워야 하는 이유다.
다행히 부산시교육청은 제대로 방향을 잡았고, 대학 입학 전형 관점도 달라졌다. 부산시교육청은 올해 4대 역점사업 중 하나로 ‘지혜로운 인재로 성장하는 시민교육’을 꼽았고, 서울대학교는 2026년 대입 전형에서 미래역량을 평가하는 기준을 ‘타인의 관점을 존중하고 소통하며 공동체 발전에 적극 참여하는 사람, 자아정체성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인재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알아야 한다. 교사 시절 새 학기가 시작하면 늘상 아이들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3가지 질문을 던졌다.
어쩌면 쉬운 질문인데 “잘 모르겠어요” “생각 안 해 봤어요”라고 답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럴 때는 교사인 내가 먼저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의 좌절, 다시 회복하게 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그러다보면 아이들도 하나둘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요즘은 커리어넷 워크넷 어디가 등의 진로 관련 앱도 개발되어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고, 직업카드를 활용한 진로적성 검사 및 전문가와의 진로상담도 권할 만하다. 또한 진로진학지원센터를 찾아가 직접 상담해 보는 것도 좋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성찰하는 시간,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끈기, 신문을 보고 나와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사색,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용기, 자연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 기울여 보는 여유…. 이런 경험은 AI가 복제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것들이다.
유난히 춥고 마음도 시렸던 몇 해 전 어느 겨울 날, 서울 광화문을 지나다 “봄이 말하네. 그대 앞길 따뜻이 데워 놓았다고”라는 글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맞은편 나무들도 그 문구를 읽었을까? 겨울나무들이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담담하게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글귀와 나무를 보며 위로받고 용기를 내었던 기억. 우리를 사람으로 살게 하는 건 이런 기억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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