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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성과급 40조', 어떻게 볼 것인가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40조 파업'과 비정규직 불안정 수당은 과연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일까. 김희승 한겨레 논설위원의 칼럼은 겉으로는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숫자를 강조하는...

'성과급 40조', 어떻게 볼 것인가

[미디어스 탁종열 칼럼]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40조 파업’과 비정규직 불안정 수당은 과연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일까. 김희승 한겨레 논설위원의 칼럼은 겉으로는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특정 숫자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며, 최근 일부 보수언론의 삼성전자 노동조합 비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을 재생산한다. 무엇보다 한겨레 논설위원 칼럼에 기대되는 최소한의 균형감과 구조적 시야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문제는 비교 기준의 불일치다.

칼럼은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를 설명하면서 ‘성과금 40조원’이라는 숫자를 전면에 내세운다. 김희승은 노조의 요구가 지난해 연구개발비보다 많고 주주 배당금의 4배라며 대다수 임금노동자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한다. 이 수치는 삼성전자의 올해 1/4분기 영업이익 57조를 근거로 최대 영업이익을 270조로 가정했을 때 도출되는 일종의 최대 추정치다. 그런데 그 과도함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연구개발비(38조), 배당금(11조)을 확정된 과거 수치(2025년)로 가져와 비교한다. 2025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43.6조원이다. 2026년 영업이익 270조를 기준으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 연구개발비는 235조, 배당은 69조에 달한다. 그럼에도 성과금 40조만을 따로 떼어 ‘과도함’으로 제시하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구성된 프레임이다.

* 성과금 → 미래의 최대 추정치

* 연구개발비·배당 → 과거의 확정 수치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지 않으면 어떤 결론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프레이밍에 가깝다.

그러나 이 칼럼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세금이라는 핵심 요소가 완전히 삭제돼 있다는 점이다.

칼럼은 ‘40조 성과금’이라는 숫자를 통해 마치 그 돈이 그대로 노동자의 소득이 되는 것처럼 서술한다. 하지만 현실의 과세 구조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근로소득세는 강한 누진세 체계다.

*  과세표준 10억원 초과 구간 → 소득세 최고세율 45% + 지방세 4.5% = 49.5%

‘40조 성과급’은 이 최고구간에 상당 부분 해당하게 된다. 실효세율을 보수적으로 잡더라도 35~45% 수준이다. 즉, 성과금 40조를 지급할 경우 약 14조~18조의 추가 근로소득세가 발생한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건강보험료, 지방세 등과 함께 공공 재정으로 환수된다.

반면 같은 40조가 배당으로 지급될 경우 과세 구조는 완전히 달라진다.

* 기본 배당소득세: 14% + 지방세 1.4% = 15.4% (원천징수)

* 금융소득 2천만원 초과 시 종합과세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분리과세 선택, 외국인 투자자 비중 등으로 인해 실효세율은 대체로 20~25% 수준에 머문다. 실제 과세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전반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결과는 명확하다. 같은 40조라도 임금이면 약 15조 안팎의 세금이 걷히고 배당이면 8~10조 수준에 그친다. 즉, 임금은 강하게 과세되고, 자본소득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과세된다. 이 차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이 칼럼이 말하고자 하는 “사회적 격차”와 직결된 핵심 변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이 칼럼의 논리는 스스로 다른 결론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같은 전제를 받아들이더라도, 해석은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성과금이 40조에 이른다면, 그것은 단순히 ‘과도한 임금’이 아니라 수조 원 규모의 세수로 환수되는 재원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 언론 보도에서도 다른 세금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한 근로소득세를 다루면서 주요 배경으로 대기업 성과급 확대가 반복적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렇게 늘어난 세수는 최근 정부의 추경 재원으로 활용돼 전쟁·고유가 대응과 취약계층 지원에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이 칼럼이 정말로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한다면, 핵심은 “성과금이 많다”는 데 있지 않다. 핵심적인 질문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세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이다. 만약 '성과금 40조'라는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14조~18조의 추가 세수는 고용보험 강화, 비정규직 불안정 수당, 사회안전망 확충 등 구체적인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재원으로 연결될 수 있다.

또 다른 질문은 횡재세에 대한 질문이다. 초과이익에 대한 별도의 과세(이른바 횡재세)를 통해 기업 간, 노동시장 간 격차를 조정하는 방법도 논의할 수 있다. 이것이 정책적 사고다. 하지만 이 칼럼은 그런 논의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돈이 너무 많다”는 인상만을 남긴다. 이로 인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노동귀족'이 되어 사회와 고립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예고를 둘러싼 최근 보도를 보면, 언론은 유독 이 사안에 대해 과도하게 ‘흥분된 톤’이 반복된다. 대기업 노조의 임금 요구에는 유난히 엄격하면서, 배당 확대나 자본소득에 대해서는 훨씬 관대한 시선이 적용된다. 이 선택적 엄격함은 단순한 우연일까. 삼성전자가 국내 언론 시장에서 차지하는 광고 비중을 고려하면, 언론이 이 사안을 다루는 방식이 '광고주와의 유착'이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김희승의 칼럼은 비정규직 문제를 말하지만, 정작 그 해결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을 모두 빠뜨리고 있다. 동일 기준 비교를 하지 않았고, 세금과 재분배 구조를 배제했으며 정책적 대안 대신 감정적 인상만을 남겼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성과급 40조’라는 숫자가 만들어내는 공포와 시기, 질투, 욕망이라는 복합적 감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않는다.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숫자가 어떤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논설의 역할이다. 그 역할이 부재한 자리에서 숫자는 설명이 아니라 프레임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 칼럼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40조 공포’를 통해 삼성전자와 보수언론의 ‘삼성전자노동조합 공격’, ‘노동3권 부정’ 프레임에 철저히 복무하게 됐다. 이것이 이 글이 남긴 가장 문제적인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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