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항 보안 넘어 설계 데이터까지 연결… IT·OT 통합 플랫폼으로 선박 생애주기 장악
-글로벌 규제·AI 전환 맞물리며 ‘문서·설계·운항’ 데이터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
라쿠텐 마리타임을 중심으로 해양 사이버보안 기업 Cydome과 선박 설계·문서관리 솔루션 기업 Lattice가 연결된 통합 플랫폼 구조도. 선박 아이콘을 중심으로 설계 단계의 데이터 관리와 운항 단계의 보안 체계를 하나로 묶어, 신조선과 현존선, IT와 OT 전 영역을 아우르는 전 생애주기 기반 해양 사이버보안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전략을 시각화했다. [그래픽=라쿠텐 마리타임]
선박의 위험은 더 이상 바다 위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조선소 책상 위에 놓인 설계 도면, 협력사와 오가는 기술 문서, 선박에 탑재될 소프트웨어의 변경 이력에서 먼저 시작된다. 라쿠텐 마리타임이 해양 사이버보안 기업 Cydome, 선박 설계·문서관리 솔루션 기업 Lattice와 손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박을 해킹으로부터 지키는 문제를 운항 중인 배 한 척의 보안으로 보지 않고, 설계부터 건조, 운항까지 이어지는 산업 공정 전체의 문제로 본 것이다.
지금까지 해양 사이버보안은 대개 선박 운항 단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항해 장비, 통신망, 기관 제어 시스템, 선박 운영망을 보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 취약 지점은 더 앞단에 있다. 조선소와 협력사가 공유하는 설계 데이터가 흔들리면, 선박은 바다에 나가기 전부터 위험을 품는다. 도면 하나가 잘못 관리되고, 기술 문서의 변경 이력이 누락되고, 외부 협력사의 파일이 검증 없이 반영되면 그 결과는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라 납기 지연, 인증 실패, 운항 리스크로 번진다.
라쿠텐 마리타임의 이번 파트너십은 이 지점을 겨냥한다. Cydome은 이미 운항 중인 현존선과 앞으로 건조될 신조선을 아우르는 사이버보안 체계를 맡는다. 핵심은 선박 한 척을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선대 전체를 하나의 위험 단위로 관리하는 데 있다. 선박의 IT와 OT, 즉 업무망과 제어망을 함께 보고, 실시간 위협 탐지와 리스크 관리를 단일 체계로 묶는 방식이다. 국제선급협회 IACS UR E26·E27, IMO 2021 사이버 리스크 관리 지침, 미국 해안경비대 지침, 유럽 NIS2 같은 규제 대응도 이 구조 안에 들어간다.
Lattice와의 협력은 더 깊은 층을 건드린다. 조선업의 경쟁력은 현장 경험과 설계 문서에 축적돼 있다. 문제는 이 데이터가 대부분 비정형이라는 점이다. 도면, 사양서, 변경 요청서, 검사 기록, 협력사 문서가 제각각 흩어져 있으면 AI를 붙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Lattice의 YardGrid는 이 문서와 도면을 구조화하고 자동으로 인덱싱해 조선소의 암묵지를 검색 가능한 데이터 자산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조선업의 AI 전환은 거창한 알고리즘보다, 먼저 문서를 정리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뜻이다.
이 구도가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선박은 이제 철판과 엔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센서, 통신망, 원격 유지보수, 자율운항 기술이 결합된 복합 시스템이다. 배 한 척의 사이버보안은 선박 내부 장비만 지켜서는 끝나지 않는다. 설계 데이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가 수정했는지, 어떤 문서가 어떤 장비와 연결되는지까지 추적돼야 한다. 라쿠텐 마리타임은 이 흐름을 ‘설계–건조–운항’의 단일 데이터 체계로 묶으려는 것이다.
해양 산업의 다음 경쟁력은 배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 설계 정보를 얼마나 안전하게 관리하고, 선박 운영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게 읽고, 사이버 위협을 얼마나 빨리 차단하느냐가 선사의 비용과 조선소의 신뢰를 가르게 된다. 선박 사이버보안은 비용 항목이 아니라 수주 경쟁력과 직결되는 품질 기준으로 올라서고 있다.
라쿠텐 마리타임 총괄인 손승현 대표는 “해양 산업의 디지털 전환은 선박 운항 단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건조, 운항 전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문제”라며 “Cydome, Lattice와의 협력을 통해 선박 생애주기 전반의 보안 공백을 줄이고 글로벌 해운·조선 시장에서 통합 보안 플랫폼의 기준을 높이겠다”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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