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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석유화학 위기에 전쟁까지… 여수의 눈물

어우러져 있는 반면, 여수는 큰 나무 하나에 나뭇잎(소규모 협력업체)들만 바닥에 깔려 있는 상황"이라며 "첨단소재, 반도체 등에 필요한 산업으로 방향을 빠르게 틀지 못하면 여수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위기에 전쟁까지… 여수의 눈물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에틸렌 제조 공장 입구 앞에서 한 근무자가 걸터앉아 있다. photo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4월 1일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지로 꼽히는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일대는 을씨년스러웠다. 흰 연기를 내뿜어야 할 공장 굴뚝엔 아무 연기도 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공장 건물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자욱해야 했지만, 현재는 약 5㎞ 이상 떨어진 산 중턱 전망대에서도 간판이 잘 보일 정도였다. 을씨년스러운 날씨 탓인지 오가는 노동자들의 왕래가 더 드물어 보였다. 수출입 물자를 적재해야 할 컨테이너 박스들은 속이 빈 채로 겹겹이 쌓여만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를 싣고 분주히 오가야 할 트럭들 역시 나란히 도로 한쪽에 주차돼 있기만 했다. 이란 전쟁의 여파로 석유화학산업단지의 핵심 물자인 나프타 수급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주요 공장들의 가동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공장 인근의 한 근로자는 "주요 공장 협력업체 근로자들 10명 중 4명꼴로 그만뒀다"며 "주변에서 듣기로는 최근 한 달 사이에 여기 근무자들 중 1만명 이상이 이사를 갔다더라"고 말했다.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갈 때 공단 내 좁은 2차선 도로는 승용차가 곡예운전을 하며 대형 트럭들 사이를 빠져나가야 할 정도로 분주했지만, 주요 공장들이 멈춰 선 현재는 근무가 본격 시작되는 오전 9시였음에도 도로가 한산했다.

산업단지 내 들어선 LG화학, 롯데케미칼, 여천NCC 등 주요 기업의 공장들은 가동을 멈춘 채로 고요한 상황이었다. 여수 석유화학 단지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에틸렌을 생산하는 산업단지로, 지난해 약 640만t의 에틸렌이 여수에서 생산됐다. 충남 서산의 대산 산업단지는 약 470만t, 울산 산업단지는 약 170만t을 생산했다. 여수 내에서는 여천NCC가 약 220만t으로 가장 많은 생산 비중을 차지했고 LG화학(약 200만t), 롯데케미칼(약 120만t), GS칼텍스(약 90만t)가 그 뒤를 이었다. 최근 분위기를 반영하듯 기업들은 언론 취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취재진이 100m 거리에서 외관 촬영을 하려 하자 곧바로 제지했다. 드나드는 차량으로 가득 차야 할 각 공장 입구 역시 텅 비어 있었다. 근무자 중 한 명이 입구 옆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기도 했다. 근무자에게 다가가 '일거리가 많이 줄었나'라고 묻자 "올해 성과급이 절반 이상 깎일 거고 제대로 회사를 못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연간 에틸렌 약 80만t을 생산하는 LG화학 2공장은 가동을 전면 중단했고 여천 NCC 3공장 역시 가동을 멈췄다. 에틸렌은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주요 물질로, 국내 석유화학산업을 통해 생산되는 대부분 물품의 재료다. 에틸렌을 활용해 만들어지는 대표적 제품이 플라스틱과 비닐이다. 에틸렌 공장 가동이 멈추면 대부분의 생필품 가격이 오르게 된다.

여수 산업단지 한편에 적재용 컨테이너 박스들이 출하되지 못하고 쌓여 있다. photo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

"국내 석유화학, 미래 없다"

공장이 멈춰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장 근로자들은 정상 출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성과급 삭감이 불 보듯 뻔할지라도 기본 임금마저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장 근로자 A씨는 "공장 쉰다고 집에 있어봤자 별 다른 할 일도 없다"며 "나와서 파이프라도 닦아야 돈이 나올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공단 내 트럭 운전기사 B씨는 "여수에서 화물업 하는 사람들은 싹 다 백수됐다"며 "공단 직원들도 힘들겠지만 그 친구들은 대기업 연봉이라도 받는데 밑에 우리들은 일을 10만큼 해야 돈이 5 정도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동조합 만들고 시위해봤자 국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재료가 있어야 밥을 만들든 반찬을 만들든 할 것 아니냐"고 했다.

기업들 역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단지 내 주요 대기업 공장 소속 한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임직원들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며 "여수 출신 직원들보다 공장에 취직하고 여수로 이사 온 외지인들이 대부분인데 이들 모두 떠날 준비를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청업체와 플랜트(공정 건설업계) 노동자들은 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업 측은 중동 사태로 인한 나프타 수급난에 대해서는 '일시적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었다. 해당 관계자는 "직원들도 그렇고 사측 역시 중동 사태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며 "나프타 부족은 유럽 등 제3국에서 수입해 오면 되지만 수년 전부터 이어지는 여수 산단 자체의 몰락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여수 산업단지의 위기는 대기업 공장들과 협력 관계인 하청업체가 더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석유화학 폐기물 후처리 약품 제조업체 대표 남모씨는 주간조선에 "하청업체들은 지금의 산단 위기는 물론 환율 상승에 더 큰 타격을 입는다"며 "대기업 공장 직원들과 달리 소규모 업체들은 대부분 직원들이 그만뒀고 회사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남씨가 운영하는 회사는 후처리 약품을 포함해 각종 플라스틱 손잡이·부품 등을 생산하는 업체인데, 석유화학산업에 연계된 분야에서는 50% 이상 수입이 줄었다고 했다. 그는 "LG나 롯데 같은 대기업들은 오히려 여수에 지은 공장들을 철수하고 싶어 한다"며 "이미 수년 전부터 석유화학 사업은 수익성이 나지 않고 있으니 전쟁으로 인한 가동 중단이 좋은 명분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질적인 타격은 결국 소규모 협력업체들만 입게 된다"고 강조했다. 여수 산업단지 내 공장 근로자 출신인 남씨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1만t 생산할 때 중국·인도는 10만t 생산한다"며 "국내 소매업체들 입장에서는 중국에서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라고 말했다. 중동 사태에 대해서는 "굳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석유화학산업은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전쟁이 이를 가속화시킨 것"이라며 "대부분 소매업체들 입장에서 전쟁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찍힌 제품들을 수입 못 하게 만든 요인일 뿐, 국내 석유화학산업계의 걱정을 현실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015년 기준 한국의 석유화학제품 대중국 수출 비중은 45%였는데, 2022년 38%, 2024년에는 36.9%까지 감소했다.

전기요금의 지속적 상승도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꼽힌다. 2024년 기준 여수 산업단지 내 10개 업체의 전기료 합계는 약 1조6000억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1조8500억원대로 상승했다. 자연스럽게 석유화학산업 전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지역 내 한 인사는 "석유화학산업은 여수 지역 경제의 절반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한다"며 "여기(석유화학)에서의 침체는 지역 상권의 침체로 이어지고 이는 곧 여수 경제 전체의 위기로 커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단지 인근 먹거리 골목과 상가 대부분 건물에는 '임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산업단지 근무자들이 자주 찾는 여수시 무선지구 일대는 점심시간인 낮 12시경이었음에도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영업 중인 식당은 손에 꼽힐 만큼 적었고, '휴업'과 '임대'를 내놓은 가게들이 더 많았다. 과거 맛집으로 알려진 삼겹살집과 나란히 붙어있던 술집 모두 임대 표시가 붙었다. 그나마 정상 영업 중인 가게 내 상인들 역시 손님을 맞을 준비보다는 테이블에 의자가 올라간 채 휴대폰을 보고 있거나 아예 자리를 비워놓기도 했다. 도로 한 블록을 기준으로 입점해 있는 가게 10곳 중 6개가 폐업 상태였다. 주류를 함께 판매하는 노래방 한 곳은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로 노래방 기기를 철수하고 있었다. '영업 안 하시냐'고 묻자 노래방 주인은 "저번 주 주말 토ㆍ일 합쳐서 손님이 딱 두 팀 왔다"며 "고깃집이나 술집이나 사람이 없는데 누가 노래 부르러 오냐"고 호소했다. '왜 손님이 없냐'고 묻자 "공단(산업단지) 아저씨들이 싹 다 없어져버렸다"고 답했다.

무선지구와 함께 여수의 대표적 상권인 학동거리 역시 과거의 활발한 모습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 부영3단지아파트 인근에 위치해 있어 일명 '부삼'으로도 불리는 학동 먹거리 골목은 산업단지 입구에서 차로 10분이면 도착할 만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저녁 7시경 찾은 부삼 상권은 무선지구에 비해서는 오가는 사람이 꽤 있었지만 대부분 소수의 특정 맛집으로만 몰렸다. 이외의 가게들에는 마찬가지로 '임대'와 '폐업' 표시가 붙어있었다. 골목이 활성화됐을 당시 주차장이 항상 '만차' 상태였던 것과는 달리 주차 자리가 넘쳐났다. 사실상 관광지를 제외한 여수시 내수 상권을 책임지는 두 동네 모두 산업단지의 쇠퇴와 함께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여수시 무선지구 일대에 위치한 식당 바닥에 ‘임대문의’ 현수막이 떨어져 있다. photo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

"여수 살리려면 울산 따라가야"

여수시에 닥친 전초적인 위기 앞에, 지역 내에서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수 산업단지 내 업체 대표를 겸임 중인 김창주 전 여수경영인협회 회장은 "경영에 대한 감각이 없는 법률가, 행정가들이 지역단체장을 계속 해오다 보니 위기가 찾아왔다"며 "여수 석유화학산업단지가 몰락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평소대로라면 80%대의 가동률을 보여야 산업단지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데 이미 2022년 전부터 60%대로 적자 상태였다"며 국내 대기업들은 사실 폐업을 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재정적·경영적인 해결책을 찾는 지역단체장이 필요하다"며 "멈춰 있는 공장을 보고도, 텅 빈 식당 거리를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는 지역 내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고 강조했다.

지역 내 인사들 사이에선 '울산광역시의 모델을 따라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공단 내 한 협력업체 대표는 주간조선에 "울산은 석유화학 외에도 첨단산업, 제련산업 등을 통해 자체적인 내수 먹거리를 크게 키웠다"며 "여수는 이것을 못했기 때문에 인구 3만~4만이 빠져나갔다"고 했다. 전라남도 소재 한 여당 인사 역시 "숲으로 이 상황을 비유하자면 울산은 큰 나무(대기업), 중간 나무(중견기업), 작은 나무(협력업체)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는 반면, 여수는 큰 나무 하나에 나뭇잎(소규모 협력업체)들만 바닥에 깔려 있는 상황"이라며 "첨단소재, 반도체 등에 필요한 산업으로 방향을 빠르게 틀지 못하면 여수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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