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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풍 세계관 그대로… 30억뷰 ‘로판’ 실사로 만난다

황후 나비에(신민아)의 손 위에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내려앉는다. 그 정체는 새의 모습으로 변한 서왕국 왕자 하인리(이종석). 황제와 황후가 등장하는 궁중극이지만 무대는 조선이 아닌 서양풍 제국이다. 한국 배우들이 유럽의 고성을 배경으로 낯선 이름을 부르며 사랑과 권력을 다툰다.

디즈니+‘재혼 황후’ 공개

원작 웹소설, 웹툰으로 제작돼 큰 인기

10개 언어로 서비스… 해외 팬 두터워

설정 변경 않고 유럽 고성 배경 등 살려

네 남녀의 사랑에 황실 권력 다툼 얽혀

판타지적 외형·인물들 현실 감정 결합

K드라마 새 장르 시장성 가늠 시험대

황후 나비에(신민아)의 손 위에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내려앉는다. 그 정체는 새의 모습으로 변한 서왕국 왕자 하인리(이종석). 황제와 황후가 등장하는 궁중극이지만 무대는 조선이 아닌 서양풍 제국이다. 한국 배우들이 유럽의 고성을 배경으로 낯선 이름을 부르며 사랑과 권력을 다툰다. 웹소설과 웹툰에서 인기를 끈 ‘로맨스 판타지’(로판)의 세계를 실사 드라마로 옮긴 것이다. 전 세계 누적 조회수 30억회에 육박하는 ‘재혼 황후’가 3일 디즈니+에서 공개됐다.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서양풍 로판의 실사화로, 새로운 장르의 시장성을 가늠할 시험대다.

3일 공개된 디즈니+ 시리즈 ‘재혼 황후’의 주요 장면. 디즈니+ 제공

◆30억뷰 로판, 서양 황실 그대로 실사화

‘재혼 황후’는 동대제국의 황후 나비에가 도망 노예 출신 라스타(이세영)에게 마음을 빼앗긴 황제 소비에슈(주지훈)로부터 이혼을 통보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나비에는 이혼을 받아들이는 대신 하인리와의 재혼 승인을 요구한다. 네 남녀의 사랑과 배신, 질투에 황실의 권력 다툼이 얽힌다.

원작은 알파타르트 작가가 2018년 연재를 시작한 웹소설이다. 이듬해 웹툰으로 제작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난 7월 기준 웹툰의 글로벌 누적 조회수는 29억7000만회. 영어와 일본어, 스페인어 등 10개 언어로 서비스되며 해외에서도 두터운 팬덤을 형성했다.

로판은 로맨스에 판타지적 세계관을 결합한 장르다. 특히 서양풍 로판은 유럽의 궁정과 귀족 사회를 연상시키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웹소설과 웹툰에서는 이미 인기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실사 드라마로 제작된 사례는 드물다. 그림 속 화려한 궁전과 의상, 초현실적인 설정을 실제 배우와 공간으로 옮기는 데 많은 비용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자연스러운 장면도 실사로 구현하는 순간 어색해질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재혼 황후’는 원작의 서양풍 세계관을 그대로 구현하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가상의 제국이라는 설정을 한국식으로 바꾸지 않았다. 지난해 방영된 KBS 드라마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가 서양풍 원작의 배경을 가상의 조선으로 옮긴 것과 대조적이다. 대신 제작진은 프랑스와 독일, 체코의 성 16곳을 답사한 끝에 독일 슐라이스하임 궁전 등을 촬영지로 택했다. 실제 건축물에 세트와 시각특수효과(VFX)를 결합해 황실의 공간을 완성했다.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와 언론에 먼저 공개된 1~3회는 이러한 시도가 만들어낸 낯선 풍경을 보여준다. 한국 배우들이 서양식 이름을 부르며 황제와 황후를 연기하는 모습은 생소하지만, 유럽의 고성과 화려한 의상, 정교한 미술은 가상의 제국을 설득력 있게 구현한다. 특정한 시대나 국가에 얽매이지 않는 세계관 덕분에 하인리가 새로 변신하는 판타지 설정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화려한 서양풍 세계관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의외로 익숙하다. 남편의 배신과 아내의 선택,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인의 욕망이 맞물리며 한국 드라마 특유의 치정과 권력 다툼이 전개된다. 나비에는 황제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아니라 황후로서의 역할과 존엄을 지키려 한다. 소비에슈는 황후와 라스타 사이에서 모순된 행동을 보이고, 라스타는 불안정한 신분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원작의 판타지적 외형에 인물들의 현실적인 감정을 결합한 것이다.

다만 방대한 원작을 10부작으로 압축하면서 복잡한 인물 관계는 네 주인공을 중심으로 단순해졌다. 선공개된 3회까지도 이야기의 상당 시간을 인물 소개와 감정의 축적에 할애한 만큼 이후 전개의 밀도가 중요해졌다. 원작의 팬들이 기대하는 장면을 충실히 구현하면서도 처음 작품을 접하는 시청자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하렘의 남자들’도 제작… K로판 시장성 주목

‘재혼 황후’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한 편의 인기 웹툰을 영상화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웹소설·웹툰에서 이미 인기를 입증한 로판이 K드라마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본격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는 이미 웹소설과 웹툰의 판타지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재벌집 막내아들’과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은 과거로 돌아가 삶을 다시 사는 회귀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현대 한국 사회와 결합해 흥행했다. 반면 ‘재혼 황후’는 가상의 서양 제국과 황실이라는 세계관 자체를 영상으로 구현했다. 원작의 사건과 인물뿐 아니라 장르 특유의 공간과 분위기까지 옮겼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시도다.

후속 작품도 준비되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같은 알파타르트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렘의 남자들’을 제작 중이다. 수지가 제국의 여황제 라틸을 연기하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의 이응복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여황제가 황권을 지키기 위해 여러 남자 후궁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궁중 로맨스 판타지로, 내년 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재혼 황후’와 마찬가지로 황실 여성을 중심으로 사랑과 정치적 갈등을 풀어낸다.

로판의 영상화가 본격화하는 배경에는 이미 세계적인 독자층을 확보한 웹소설·웹툰 지식재산권(IP)이 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입장에서는 기존 팬덤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청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서양풍 판타지라는 배경도 해외 시청자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특정 국가의 역사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도 가상의 황실을 둘러싼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판 IP의 영상화는 실사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네이버웹툰은 지난달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하야테, 글로벌 애니메이션 플랫폼 크런치롤과 협력해 웹툰의 애니메이션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재혼 황후’도 제작 대상에 포함됐다. 일본 제작사 트로이카가 제작하는 TV 애니메이션은 2027년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 웹소설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웹툰을 거쳐 한국 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각각 제작되는 것이다.

다만 원작의 높은 인기가 드라마 흥행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웹툰 독자와 드라마 시청자는 소비 방식부터 다르다. 특히 로판은 현실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드라마와 달리 궁전과 의상, 판타지 장면을 구현하는 데 상당한 제작비가 들어간다. 기존 팬덤을 넘어 안정적인 시청자층을 확보해야 후속 작품 제작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3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서울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조수원 감독은 “인물들이 움직이는 공간이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미술과 VFX에 공을 들였다”며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려 했다”고 밝혔다. 주지훈은 “가상의 세계관이지만 사극의 익숙한 관계성을 바탕으로 어투를 다듬어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권이선·이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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