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위협하는 등 고환율 기조가 굳어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환 위험 관리 능력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 이유다. 과거 우리 경제는 환율의 급격한 변동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진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정교해진 방어 체계를 구축하며 새로운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시각으로 고환율 시대 속 우리 산업계의 대응법을 톺아본다.
원·달러 1500원, 물가 폭등·자본 이탈 ‘심리적 저지선’
환율 급등, 대우그룹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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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발식 차입 경영의 종말
환위험 파생상품 ‘키코’의 상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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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기반 대응 절실
[아시아타임즈=이하영 기자] 원·달러 환율은 3월부터 1500원대를 지속해서 시험하고 있다. 최근 3개월 동안 1400원대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으며,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는 1500원대를 유지하기도 했다. 환율 1500원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에 대한 불신이 임계점에 도달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3월말부터 4월초 사이 원달러 환율은 우리 경제의 관리 불능 상태를 야기하는 1500원대를 기록했다. (사진=네이버 환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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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원대 환율 부작용은 안팎으로 예상된다. 먼저 수입 물가 폭등으로 인한 물가 관리 불능 상태를 야기할 수 있다. 여기에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주식과 채권 시장의 유동성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실제 과거 우리 기업들에게 고환율은 예리한 흉기와 같았다.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당시, 준비되지 않은 환율 폭등은 건실한 기업들까지 연쇄 도산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세계 경영의 그림자 ‘대우그룹’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생전 모습. (사진=대우세계경영연구회)
1997년 외환 위기의 비극을 상징하는 이름은 단연 ‘대우그룹’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위세를 떨쳤던 재계 2위 대우는 환율 급등과 금리 폭등이라는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빚을 내어 몸집을 불린 ‘차입 경영’이 화근이었다. 1998년 말 기준 대우의 해외 법인은 396개에 달했으나, 투자금 80억달러 중 83%에 달하는 68억달러의 현지 차입금으로 채워진 ‘모래성’이었다.
환율이 요동치자 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 대우그룹 전체 차입금은 1997년 말경 29조원 수준에서 이듬해 9월 말 약 48조원으로 1.5배 이상 늘었다. 공격적 경영이 오히려 기업의 주춧돌을 갉아먹은 셈이다. 결국 대우를 비롯해 한보, 기아, 쌍용 등 기라성 같은 대기업들이 환율의 직격탄을 맞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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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우리 산업계에 도입된 안전판이 ‘부채비율 200%’ 원칙이다. 외환 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부채비율 400~500%를 넘나들던 재벌들의 방만한 경영 방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정부는 1999년 말까지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라는 엄격한 지침을 제시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 기업들이 재무 건전성을 지키는 ‘생존 수칙’으로 자리 잡았다.
우량 강소기업 무너뜨린 ‘키코(KIKO)’의 덫
수출기업이 다수인 우리나라는 환율 변동에 의해 어려움을 겪어왔다. (사진=연합뉴스)
멀쩡한 기업도 환율 위험에 쓰러지기도 했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촉발된 세계 금융 위기는 환위험 관리 상품인 ‘키코(KIKO)’ 사태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키코는 환율 하락에 거는 상품으로 환율이 오를 경우 손실을 보는 구조다. 미국발 금융 위기로 세계적인 신용 경색이 일어났고, 시중에 자금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한국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도 이탈하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게 됐다.
키코로 갑작스럽게 파산에 들어선 회사가 바로 ‘태산엘시디’다. 태산엘시디는 당시 삼성전자의 핵심 협력사이자 2007년 연매출 6000억원을 넘길 정도로 기술력도 탄탄하고 재무 구조도 좋았다. 다만 키코에 가입한 것이 화근이 됐다. 환율이 폭등하면서 단숨에 수천억원대 손실을 입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태산엘시디 이외에도 당시 900여개 중소기업이 수조원의 손실을 입고 흔들렸다.
이 같은 외환 위기에 전문가들은 대응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09년 보고서를 통해 “국제 금융 질서 재편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국가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금융 전문가들은 향후 과제로 리스크 관리 강화와 정교한 ‘비상 대응 계획’ 마련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단순히 정부 지원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가 최악의 환율 변동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맷집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과거가 남긴 뼈아픈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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