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은 끝이 아니었다. 삼성전자 노사 잠정합의 뒤에는 ‘유보’라는 단어와 27일 오전 10시 조합원 표심이 남았다. 반도체 공급망과 납기 신뢰까지 걸린 삼성 파업의 진짜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일러스트=AI 생성
사인은 했다.
그런데 아무도 끝났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20일 밤 10시 30분.
삼성전자 노사가 잠정 합의서에 서명했다. 총파업 돌입 90분 전이었다.
시장은 안도했다.
하지만 안도는 숫자의 반응일 뿐이다.
현장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삼성전자 노조가 발표한 단어 하나가 분위기를 바꿨다.
"철회"가 아니었다.
"유보"였다.
그 순간부터 질문이 다시 살아났다.
정말 끝난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충돌 직전인가.
■ 잠정합의는 종착점이 아니다
삼성전자 노조는 파업을 끝냈다고 발표하지 않았다.
"추후 별도 지침 시까지 유보."
공식 문구는 명확했다.
이제 공은 조합원들에게 넘어갔다.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가 진행된다.
과반 찬성이면 잠정합의안은 최종 가결된다.
그러나 부결되면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국 노동운동은 이미 수차례 그 장면을 보여줬다.
잠정합의가 끝이라고 믿는 순간, 현장 표심은 다른 결론을 냈다.
■ 잠정합의 뒤 더 크게 터진 사례들
2025년 7월 HD현대중공업.
노사는 기본급 13만3000원 인상과 격려금 520만원 등을 담은 잠정합의안을 만들었다.
사측은 "1인당 평균 2700만원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조합원 투표 결과는 달랐다.
63.77% 반대.
3명 중 2명이 합의안을 거부했다.
이후 현장은 더 거칠어졌다.
40m 크레인 고공농성.
11차례 부분파업.
4개월 대치.
결국 2차 합의안이 나온 뒤에야 사태가 마무리됐다.
현대자동차도 비슷했다.
2025년.
7년 만의 파업 위기.
조합원 86%가 파업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1차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기본급 5만8000원 인상.
성과급 300%+280만원.
그러나 결과는 부결이었다.
반대 50.24%.
과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2차 합의안이 52.9%로 가까스로 통과됐다.
불과 2.9%포인트 차이였다.
잠정합의는 끝이 아니었다.
현장 표심이 진짜 결론이었다.
■ 삼성 내부엔 더 복잡한 균열이 있다
이번 삼성전자 상황은 더 복잡하다.
단순 임금 문제가 아니다.
"누구를 위한 합의냐."
그 질문이 내부에 남아 있다.
DS는 협상 중심에 있었다.
DX는 주변에 있었다.
DS(Device Solutions·반도체) 부문 쟁점이 전면에 섰고, DX(Device eXperience·스마트폰·가전) 부문 조합원들의 소외감은 깊어졌다.
이른바 "DX 패싱" 논란이다.
DX 기반 동행노조는 공동교섭본부에서 이탈했다.
발단은 초기업노조 지도부의 강경 발언 논란이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초기업노조 부위원장은 노조 내부 소통방에서 삼성전자를 없애버리는 게 맞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논란이 커지자 당사자는 "기업 자체를 없애자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노조를 무시하거나 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취지였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동행노조의 판단은 달랐다.
동행노조는 공식 공문을 통해 해당 발언을 문제 삼았다.
노조의 존재 이유와 상생 연대의 정신에 반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취지였다.
그리고 교섭 테이블을 떠났다.
갈등은 발언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DS와 DX의 이해관계 차이로 번졌다.
노조 안팎에서는 DX 조합원 수천 명 규모의 탈퇴 움직임이 거론된다.
교섭 내내 DX 현장에서는 "우리 얘기가 빠진 합의"라는 불만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이 표심이 찬반투표에서 어느 쪽 버튼을 누르느냐.
그것이 27일 오전 10시의 진짜 변수다.
■ 핵심 쟁점은 사실상 유예됐다
이번 잠정합의 핵심은 적자 사업부 성과급 문제였다.
사측은 파운드리·시스템LSI 등 적자 사업부에 고액 성과급 지급은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반면 노조는 영업이익 15% 기준과 OPI(Over Performance Incentive·초과이익성과급) 상한 폐지 등을 요구했다.
복수의 교섭 관계자에 따르면, 최종 합의안에는 절충안이 포함됐다.
적자 사업부 성과급 배분 방식을 1년 유예하는 방식이다.
해결이 아니다.
유예다.
강경 조합원들이 이것을 "시간 벌기"로 읽는 순간, 유보는 다시 파업의 문이 된다.
"6개월 싸운 결과가 이것인가."
그 질문이 투표장 안에서 살아나면 결과는 달라진다.
■ 삼성 파업은 이미 AI 공급망 리스크가 됐다
주요 외신은 이번 파업 사태를 한국 내부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
블룸버그는 이번 사태를 "부자들과 더 큰 부자들 간의 충돌"로 규정했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확보하자 삼성 노조가 15%를 요구하고 나선 구조를 꿰뚫은 표현이었다.
"노동 행동은 서로를 먹고 자란다."
이 한 문장이 삼성 파업의 본질을 찔렀다.
CNBC는 한국 정부의 긴급조정권 카드를 집중 조명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총리가 직접 협상 타결을 촉구했고, 노동부 장관이 긴급 조치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을 상세히 보도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Korea)도 공식 성명을 냈다.
"삼성전자의 생산 차질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추가적 부담을 줄 수 있다."
공급 병목.
가격 변동성.
조달 불확실성.
이 세 단어가 세계 시장이 삼성 파업에서 읽어낸 위험 신호였다.
결론은 하나였다.
이번 삼성 파업은 단순 임금 협상이 아니다.
AI 반도체 공급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글로벌 사건이다.
■ 삼성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
지금 삼성전자가 두려워하는 건 하루 파업 손실만이 아니다.
더 위험한 건 반복 가능성이다.
반도체 산업은 신뢰 산업이다.
특히 AI 반도체와 HBM(High Bandwidth Memory·고대역폭 메모리) 경쟁 구간에서는 안정성과 납기가 곧 경쟁력이다.
라인이 하루 멈추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고객사가 이렇게 느끼는 순간이다.
"삼성이 흔들릴 수 있다."
그 인식은 숫자보다 오래 남는다.
한 번 흔들린 신뢰는 재무제표보다 늦게 회복된다.
공급망은 가격만 보지 않는다.
약속을 본다.
납기를 본다.
그리고 위기 때 흔들리는지를 본다.
삼성전자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은 파업 하루의 손실이 아니다.
고객사의 머릿속에 남는 한 문장이다.
"다음에도 이럴 수 있다."
■ 결론
삼성전자 파업 사태가 끝났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합의서에는 사인이 들어갔다.
그러나 현장 표심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철회가 아니다.
유보다.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잠정합의는 종종 더 큰 충돌의 시작이었다.
합의서는 지도부가 쓴다.
그러나 결말은 조합원이 쓴다.
만약 부결된다면, 다음 국면은 노사 재교섭만이 아니다.
정부의 긴급조정권 카드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라올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삼성의 문제는 노사 문제가 아니다.
납기 신뢰의 문제가 된다.
27일 오전 10시.
그때 삼성전자 파업은 끝날 수도 있다.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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