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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이다 대통령'도 망설여야 한다 [메아리]

인공지능(AI)에게는 없는 것은 망설임이라고 했다. 타인의 고민과 아픔 앞에서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거나 헤아리는 찰나가 사람에게만 있더라고 했다. 그 주저 안에 배려와 품위가 있다고, 유려하고 빠른 AI의...

'사이다 대통령'도 망설여야 한다 [메아리]

"망설임은 인간에겐 있고 AI는 없는 미덕"

권력 독점한 '사이다 대통령'은 위험천만

속도 늦추고 "나도 틀릴 수 있다" 겸손을

편집자주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논설위원과 뉴스룸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애란 작가. 왕태석 기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올해 들어 가장 가슴을 울린 말은 김애란 작가의 것이다. 그는 망설임에 관해 말했다. 지난주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나와서, 인간에게는 있고 인공지능(AI)에게는 없는 것은 망설임이라고 했다. 타인의 고민과 아픔 앞에서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거나 헤아리는 찰나가 사람에게만 있더라고 했다. 그 주저 안에 배려와 품위가 있다고, 유려하고 빠른 AI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더 위로가 되기도 하더라고 했다.

누군가를 위안할 말을 고르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할 때, 겨우 생각해낸 말이 형편없는 것 같아서 미안할 때, 무슨 말이라도 더 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애가 탈 때, 그때가 인간다운 망설임의 순간이다. 질문을 입력하면 그저 빨리, 돌진하듯 답을 내놓고 책임지지 않는 AI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AI가 주저하는 것은 기술의 결함이지만, 찬찬히 살피느라 인간이 주저하는 것은 미덕이다.

김 작가 이전에도 망설임에 주목한 이들이 있었다. 일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는 책 ‘망설임의 윤리학’(2001)에서 결론 내기를 미루고 한 번 더 숙고하는 과정에서 진실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으며, ‘나의 옳음’을 입증하는 데 몰두하는 지성이 아니라 ‘나의 틀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성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2023년 한국문학번역대상을 받은 이탈리아 번역가 리아 요베니티는 번역을 끝없이 망설이는 작업이라 불렀다. 소통의 실패가 없으려면, 시간을 들여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속도와 효율의 시대에 그런 망설임은 환영받지 못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정의부터 ‘이리저리 생각만 하고 태도를 결정하지 못함’이다. ‘망설임 없이’는 결단의 진정성을 보장하는 관용구로 쓰이고, 쇼핑 채널에선 “망설이면 품절”이라고 겁을 준다. 이렇게 질주하기만 해도 괜찮을까. AI의 데이터 오판을 맹신한 미군이 이란 초등학교를 미사일로 때려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16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다. 힘 있는 존재가 망설이지 않을 때 얼마나 큰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다. 기술은 스스로를 억제할 능력이 없으나, 인간은 달라야 한다. 손에 쥔 힘 앞에서 망설여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로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권력이 무르익는 대통령 취임 1년이 다가오고, 이변 없이 더불어민주당이 6월 지방선거에서 압승하고 나면 입법·사법·행정·지방 권력을 다 갖게 될 것이다. ‘말 한마디면 대체로 다 이루어지는 세계’가 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권력의 생리란, 그 효능감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학습할수록 자기 통제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 무엇이든 빨리 결론 내고 빨리 관철시키겠다는 유혹이 거세질 것이다. 가뜩이나 ‘사이다 업무스타일’로 뜬 대통령이다. 최근 발언이 거칠어진 것은 위험을 알리는 신호다.

민간 테크기업의 성공 전략은 망설이느니 시도해 보고 실패를 양분 삼는 것이라지만, 정치권력의 통치는 그럴 수 없다. 한 번의 오판으로도 무수한 사람들의 삶이 무너진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일수록 취약하다. 이 대통령은 망설여야 한다. 우유부단하라는 게 아니라, 속도와 시원함이 목표인 것처럼 국정을 운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틀릴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 필요할 때 멈추고 기다리는 것은 무능이 아니다. AI가 망설이지 않는 것은 제가 생성하는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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