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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유와 성찰]문질빈빈을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정치인들 가운데는 서로 다른 유형의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서민의 삶을 살피는 정책을 입안하는 데 진심이고, 식견과 추진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신념이 강한 만큼 다른 생각에 배타적인 성향이 있다. 정의를 향한 열정은 훌륭하지만, 다정함이 아쉽다.

[사유와 성찰]문질빈빈을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정치인들 가운데는 서로 다른 유형의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서민의 삶을 살피는 정책을 입안하는 데 진심이고, 식견과 추진력도 뛰어나다. 하지만 신념이 강한 만큼 다른 생각에 배타적인 성향이 있다. 정의를 향한 열정은 훌륭하지만, 다정함이 아쉽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정중하고 겸손하지만, 그의 정책과 행보에는 구체적인 삶을 헤아리는 감각이 부족하다. 결국 탁월한 능력에는 포용이, 따뜻한 성품에는 공동체를 헤아리는 감각이 부족한 셈이다.

어디 정치권뿐이겠는가. 기획력은 뛰어나나 독선적인 사람, 겸손하지만 역량이 부족한 사람, 거시적 정의를 말하면서도 일상의 차이를 배척하는 사람을 쉽게 만난다. 실력과 인품, 지식과 관계성이 조화를 이루는 ‘원만구족’과 ‘재덕겸비’의 전인성(全人性)이 어려운 현실이다. 이들을 볼 때마다 씁쓸한 질문이 남는다. 왜 능력과 인품, 지식과 윤리는 어우러지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내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성공을 위해 높은 학력과 전문 자격증으로 무장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정량적 능력주의의 시대다. 그러나 화려한 스펙을 갖춘 이들이 고위 공직자 후보로 인사청문회에 설 때마다 드러나는 민낯은 새삼스럽지 않다. 논문 표절, 부정청탁, 편법 증여, 인권 침해, 세금 탈루 등에서 인간적 성숙의 한계와 공공 윤리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런 현실 앞에서 ‘전인적 인간’이라는 화두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왜 지성과 인품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을 길러내게 되었을까. 그 답은 결국 능력주의에 따른 정량적 평가에 몰두해온 교육에 있다.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고, 지식을 정확히 습득하는 능력은 철저히 검증하면서도, 그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격적 성숙은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 결과 정답은 잘 맞히지만 타인의 삶에는 무감각한 ‘기능적 인재’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은 아닐까.

일찍이 공자는 <논어>에서 “바탕(質)이 꾸밈(文)보다 지나치면 거칠어지고, 꾸밈이 바탕보다 지나치면 형식에 치우친다. 바탕과 꾸밈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문질빈빈(文質彬彬)’의 가르침이다. 인품과 능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면의 바탕은 비어 있는데 외형만 화려하면 허식에 그치고, 인품은 갖추었으나 실천적 역량이 부족하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본래 우리의 가르침과 배움에도 이러한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조선의 과거제는 경전과 철학적 식견만이 아니라 시대를 경영할 방책을 묻는 책문(策問)을 중시했다. 오늘날 대학의 교육 이념에도 진리와 자유, 봉사와 사랑 같은 가치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지식과 능력만이 아니라 그것을 바르게 쓰는 품성과 윤리까지 길러야 한다는 전인교육의 뜻이 담겨 있다.

한의학에는 “통하면 아프지 않고, 막히면 병이 난다(通則不痛 不通則痛)”는 말이 있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머리의 지성과 가슴의 윤리, 손의 실천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막힐 때 개인은 오만해지고 공동체는 병들기 시작한다. 머리만 비대하고 가슴이 식은 사람이 권력을 쥐면, 그 사회의 병은 결국 가장 약한 사람들의 고통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내면을 먼저 바르게 다듬고(修己), 그 바탕 위에서 세상을 위해 전문성을 펼치는(治人) 인재가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 수기를 잃은 치인은 오만과 독선으로 흐르기 쉽고, 치인의 역량을 갖추지 못한 수기는 관념에 머물기 쉽다. 교육은 지식을 삶과 타인에게 연결하는 힘을 길러야 하고, 채용은 스펙과 시험을 넘어 판단력과 협업 능력, 공적 책임까지 살펴야 한다. 능력과 인품, 지식과 실천이 한 사람 안에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지식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된다. 결국 교육이 길러야 할 인재는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것을 바르게 살아내는 전인적 인간이다.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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