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기를 둘러싼 아파트 갈등이 점차 격화되고 있다. 울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지하 주차장의 충전기를 지상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확산되는 가운데, 전기차 차주와 비차주 간의 입장 차이가 충돌하고 있다. 화재 우려로 충전기를 지상에 설치하자는 입장과, 이는 과도한 공포에 근거한 조치라는 주장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정부는 제도적 중재를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실과 과학, 공공성이라는 원칙 위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전기차 충전기를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화재 사고 이후 급물살을 탔다. 화재 당시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불은 순식간에 확산됐고, 다수의 차량이 피해를 입으면서 전기차에 대한 불안 심리가 확산됐다. 지하 주차장의 구조적 취약성,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열기와 유독가스, 소방차 진입의 어려움 등은 실제 위기 상황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입주민들이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충전기 지상 설치를 추진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일방적으로 추진되면서 전기차 소유주들과의 갈등을 키우고 있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충전기를 건물 출입구에서 가장 먼 곳에 배치하거나, 설치 비용을 전기차 차주에게만 부담시키는 등 사실상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안전 조치를 넘어 소수에 대한 차별로 비칠 수 있다. 특히 지하 충전기의 편의성과 효율성, 겨울철 배터리 성능 문제 등을 감안할 때 무조건적인 지상 이전은 오히려 전기차 사용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1만 대당 전기차 화재는 1.32건으로, 비전기차의 1.86건보다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퍼진 ‘전기차는 불이 잘 난다’는 인식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감정적 불안에 가까운 측면이 있다. 물론 전기차 화재가 한 번 발생하면 진화가 어렵고 피해가 크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공포를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수립하거나, 특정 집단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돼서는 안 된다.
문제의 핵심은 공포와 편의, 안전과 형평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는 식의 유보적 태도는 아파트 현장에서의 갈등만 부추긴다. 충전기 설치 위치에 대한 합리적 기준과 안전 설비에 대한 규정, 비용 분담 원칙 등을 조속히 정립해야 한다. 예컨대 지하 충전기에는 보다 정교한 감지 센서, 습식 스프링클러, 방화 재질 사용 등을 의무화하고, 일정한 조건을 갖춘 경우 지하 설치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동시에 충전기 설치로 인한 지상 공간 부족 문제, 비용 분담의 공정성도 함께 다뤄야 할 것이다.
또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구성의 형평성도 중요하다. 전기차 소유주가 소수라는 이유로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이는 공동체의 민주적 운영 원칙에도 어긋난다. 모든 주민의 권리가 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주민 의견 수렴 구조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결정이 언제나 정의롭다는 보장은 없다.
전기차 시대는 이미 성큼 다가와 있다. 충전 인프라 확충은 이 시대의 필연적 과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갈등과 불신이 깊어진다면 전기차 보급의 속도는 물론 공동체의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충전기 문제는 단순한 시설물 배치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과 이성, 그리고 공동체적 상식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적 설계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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