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자
사랑이라는 퍼즐을 철학적 사유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사랑은 감정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근원적인 힘이다. 운명과 밀접하게 연결된 실천적 행위이다. 우연이었다고 믿었던 인연은 돌이켜보면 벗어날 수 없는 실존적 조건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잃은 뒤에야 관계의 본질을 깨닫는다. 이별은 상실감과 혼란 그리고 이어지는 후회 등 관계의 종말이다. 동시에 자신의 존재와 운명의 진실을 마주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사랑의 본질을 '운명'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한다. 사랑의 파국에서 운명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질 들뢰즈(1925~1995) : 사랑은 생산적 흐름이다.
들뢰즈에게 사랑은 결핍의 보상이 아니다. 욕망하는 기계들이 만나 서로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동력이다. 새로운 존재를 생산한다. 운명은 정해진 경로가 아니라 생산적 흐름 자체가 된다. 그는 욕망을 생성의 힘으로 본다. 사랑은 경계를 허문다.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탈영토화'의 과정이다. 사랑이 끝났을 때, 남는 것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거쳐 생산된 자신의 변형된 모습이다. 이별은 생산적 흐름이 멈추고 새롭게 재편되는 순간이다. 우리는 관계에서 변모된 존재(운명)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소멸이 아니라 변형과 생성이다.
▷미셸 푸코(1926~1984) : 사랑은 자유의 실천이다.
푸코는 모든 관계를 권력과 지식의 장치로 분석한다. 사회가 규정한 이상적인 사랑의 형식(결혼, 낭만주의)은 개인을 통제하고 규율하는 권력 기제일 수 있다. 그에게 진정한 사랑은 사회적 규범이나 제도에 갇히지 않는다. 자유의 실천이자 자기 배려의 윤리적 영역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형성하고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작업이다. 이별은 사랑을 가두려 했던 사회적 기대, 혹은 관계의 틀이 무너지는 경험이 된다. 파국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신을 재정의해야 하는 실존적 과제에 직면한다. 사랑의 끝에서 규율되지 않은 자신을 마주한다.
▷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 : 사랑은 무한 책임이다.
레비나스에게 사랑은 나의 만족이 아니다. 타자(他者)의 고유성에 대한 윤리적 응답이다. 운명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에게 부여된 책임이 된다. 진정한 사랑은 타자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시작된다. 이는 나의 이기적 논리를 중단시킨다. 상대방에 대한 존엄한 대우를 요구한다. 이별은 도덕적 책임을 상실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타자가 남긴 책임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사랑의 파국은 책임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다. 나의 존재를 규정해버린 윤리적 운명, 즉 대속(代贖)의 흔적을 직시하게 한다. 그가 남긴 빈자리가 곧 나의 책임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1913~1960) : 사랑은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다.
카뮈는 삶의 근본적인 무의미함, 즉 부조리를 인정한다. 인간의 유한한 삶과 세상의 무관심 간의 충돌이 부조리이다. 사랑은 이 냉담한 운명에 대한 인격적인 응답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홀로 던져진 두 존재가 서로를 인정하고 손을 맞잡는 연대이다. 사랑의 가치는 영원성이 아니라 짧고 유한한 시간에 있다. 사랑의 끝은 부조리한 운명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카뮈는 이 파국에서도 절망 대신 인식과 자각을 강조한다.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짧은 연대에서 발견했던 인간적 가치를 긍정하며 삶을 지속하라. 그것이 운명에 대한 반항이다.
▷장 뤽 낭시(1940~2021) : 사랑은 분리된 채 함께 있음이다.
낭시는 인간 존재 자체가 공동존재임을 강조한다. 사랑을 두 주체가 하나로 융합되는 불가능한 욕망으로 보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타인을 온전히 소유하거나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닿을 수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하고 욕망한다. 이별은 융합의 환상에서 벗어난 해방이다. 파국을 겪고 나서야 둘이 하나가 될 수 없었다는 것과 그것이 사랑의 운명적 본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의 결말은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과 분리된 채 홀로 서게 되는 실존적 고독을 마주하는 운명이 된다.
들뢰즈에게 사랑의 끝은 새로운 생성이다. 푸코에게는 자유로운 자기 형성의 요구이다. 레비나스에게는 영원한 윤리적 책임의 흔적이다. 카뮈는 파국에서 반항을 이어가라. 낭시는 분리된 채 함께 있었던 운명을 보라 했다. 사랑은 존재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능동적인 운명의 형태이다. 사랑의 종말은 새로운 운명의 원재료이다.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자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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