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수 한길치과 원장·울산신문 독자권익위원
지난주 조부모님 제사를 지내러 어머니 댁엘 갔다. 아내가 과일과 튀김류를 준비해 갔지만 대부분의 제사 음식을 어머니께서 홀로 마련했다. 그래도 방학을 맞아 이집트에 사는 막내동생 가족들이 모처럼 들어와 제사 때 다들 모였다. 정성스레 제사상을 차린 뒤 촛불과 향을 피우려니 라이터가 안보였다. 양초 상자 안에 라이터 하나를 함께 보관해 두었는데 누군가 쓰고는 제자리에 두질 않았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애연가였던 아버지께서 폐암으로 돌아가신 후부터 우리 삼 형제들은 모두 금연을 하였기에 아무도 라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스레인지에서 불을 옮겨다 붙이려 해도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주방도 모두 인덕션으로 바뀌어서 이젠 어디에서도 불꽃을 구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슈퍼에서 목이 긴 토치 하나를 사 와야만 했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불의 사용이 아니던가. 어둠을 밝히고 따뜻함과 맹수로부터 안전을 보장해 준 불, 제우스의 뜻을 어기고 감히 신의 권위에 맞설 수 있는 불을 인간에게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 산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겪어야만 했다지.
그렇게 소중한 불이 현대의 가정에서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난방과 취사, 조명등의 역할은 전기를 비롯한 다른 에너지의 형태로 변형되어 공급되고, 특히나 아파트 같은 공동주거시설에서는 화재예방을 위해서라도 직접적인 불의 사용은 금하는 게 당연하다. 이제 불은 캠핑장에서 불멍을 하거나 삼겹살 바비큐를 즐길 때나 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인류에게 불은 오늘날엔 과학과 창조적 기술의 혁신을 상징하는 의미만 갖게 됐다.
나는 장남이지만, 장손은 아니다. 그러니 내가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는 것은 당연하지만 조부모 제사까지 맡아야 할 위치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부모의 제사까지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는 막내 삼촌이 아직 할머니 태중에 있을 때 돌아가셨기에 할아버지의 제사는 거의 80년 이상 지내왔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 형제분들과 장손인 사촌 큰형님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돌아가실 때까지 차례대로 맡아왔다.
나는 유년 시절부터 집안 어른들 댁에 생전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할아버지의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러 다녔는데, 아버지 제사가 생긴 후로는 더이상 참석하지 않고 제사비만 보냈다. 이는 다른 사촌 형제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사촌 큰형님도 연로해지시니 마침내 제사를 절에 올리겠다고 하셨다.
의당 형님의 장남인 종손이 맡아야겠지만 조상 제사까지 이어받겠다는 조카는 없었다. 부끄러운 일이긴 하나 현실적으론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기에 사촌 형제들은 집안 대표들끼리 모여 큰형님의 뜻에 따르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그 제사를 기어이 우리 어머니께서 가지고 오신 것이다. 어머니에게 제사는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들이 잘되길 바라는 신앙과도 같았다. 어머니께서는 며느리 고생 시키지 않는다며 당신이 직접 제사상을 차릴 테니 우리 형제들이 와서 제사만 지내라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우리 삼 형제는 아버지 기일과 할아버지 기일을 비롯해 명절 차례까지 일 년에 몇 번씩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이다.
기일과 명절이면 제사를 매개로 일가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는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명절 연휴는 가족 여행의 좋은 기회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20여 년 전 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추석 때 해외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치과에서 골치 아픈 일도 겪었고,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인 터라 과감하게 내린 결단이었다.
차례도 지내지 않고 부모 형제들에게 장남으로서 미안한 마음으로 무겁게 나선 여행길이었지만 아직 어렸던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났었다. 출발하는 공항 로비에서 방송국 카메라와 함께 아나운서가 다가와 우리 가족과 인터뷰도 했다. 아이들은 TV에 나온다고 들떠서 아나운서가 유도한 질문에 따라 카메라를 향해 한껏 예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즐거운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낙원 같았던 동남아 리조트에서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돌아와 보니 나라가 온통 난리였다. 악명 높았던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것이었다. 휴양지에 있던 우리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지인들이 우리 가족이 방송에 좀 안 좋은 이미지로 나왔다길래 찾아봤더니, 악마의 편집으로 인해 마치 명절에 조상 차례도 지내지 않고 해외여행이나 다니는 한심한 신풍속도의 전형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은가. 국내에선 태풍으로 인해 난리를 겪고 있는데 명절에 일가친지들을 외면하고 저희들끼리 해외로 놀러 갔다 온 천하에 몹쓸 인간이 된 것이다. 요즘이야 명절에 해외 여행가는 일이 다반사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사회적 인식이 용인되지 않던 시절이라 괘씸한 젊은 세대의 표본이 되고 말았다.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절벽의 시대를 맞은 지금, 다들 금쪽같은 외둥이들이 대부분인 핵가족 안에서 과연 앞으로도 언제까지 제사가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진 모르겠다.
이제는 우리 어머니의 신앙처럼 제사가 죽은 조상들을 위한 의식이 아니라 산 자들의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요즘처럼 먹을 게 넘쳐나는 시절에 젊은 사람들이 잘 먹지도 않는 짜고 질긴 산적이며 금방 쉬어지는 오색 나물들, 칼로리 폭탄의 각종 전과 튀김류들을 홍동백서 조율이시에 맞추어 진설하는 것은 진정 산 자들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나.
결국 다 먹지 못해 집집마다 바리바리 싸서 나눠 가져가야 하고 며칠 동안은 한데 섞어서 비빔밥으로 우걱우걱 먹어야만 하는 일이 반복된다.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했던 불이 가정에서 사라지고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형되어 존속하듯, 한국인의 유교적 전통과 집안의 결속을 위해 필요했던 제사도 앞으로는 산 사람을 위한 합리적인 형태로 편리하게 변형돼야 존속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허용수 한길치과 원장·울산신문 독자권익위원
허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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