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제1기 출범을 맞이해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정부 때 ‘축구도 복지도 티키타카 전략으로’라는 칼럼(한겨레 2024년 1월24일치 27면)을 쓴 바 있다. 복지 사각지대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빈곤정책과 같은 골키퍼와 수비수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노동·사회 정책과 같은 좋은 미드필더와 공격수도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모자 사건’, ‘반지하 세입자 사건’, ‘일가족 사망 사건’ 등이 계속된다. 반복되는 참사 앞에서 우리의 대응은 한결같다. 먼저 전수조사하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강화하며, 더 찾아갈 인력 보강을 고려한다. 새롭게 추가된 것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위기 가구를 선별하며 급여 제공을 추진하는 것이다.
‘세 모녀 사건’ 이래로 12년이 지났다. 빈곤정책은 더디지만 지속적으로 보강되었다. 다양한 체납이나 건강·고용 등 44종 위기 정보를 활용하는 ‘발굴’ 시스템은 추정하건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다. 그럼에도 비극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있다면, 이제 우리는 수비수만 문제 삼는 지금의 대응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수비에 관심이 없는 허술한 공격수들과 미드필더들, 그리고 수비수만 비난하는 이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안정된 복지국가라면 노동시장과 고용정책을 통해 1차적으로 시민을 보호하고, 실직이나 돌봄 혹은 정신건강과 같은 위험에 대해 사회보험과 사회서비스가 2차 완충지대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 최대한 수비수의 부담을 덜고, 시민들이 최대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시스템은 1차와 2차 완충지대가 허술하다. 정규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거나 자영업에 실패한 이들은 사회보험 자격마저 없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으로 유입된다. 완충지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시민들은 위기 발생 즉시 존엄을 위협받는 극빈층이나 공공부조의 경계로 내몰린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비극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인구-기후라는 복합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노동시장은 더욱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최근 노조와의 대화에서 자동화의 불가피성을 역설한 바 있다. 이러한 전환 과정에 밀려난 이들은 시스템 밖으로 밀려날 위험이 현실화하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부모들과 아이들은 10대부터 과도한 경쟁과 정신건강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심화되고 있는 우울과 불안, 고립과 은둔의 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적 난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정신건강의 위기는 복지 사각지대로 빠져들 수 있는 잠재적 위기 가구를 전세대에 걸쳐 양산하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취약성의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빈곤정책만을 복지 사각지대의 유일한 해법으로 활용하는 전략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이다. 자동화가 본격화하면 혹은 또 다른 팬데믹이 온다면 우리의 현재 사회정책은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문제는 손볼 곳이 너무 많고, 각 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정교한 디자인이 필요하다. 가족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교육, 돌봄, 정신건강 문제부터 노동시장 대책까지 재설계가 필요하며, 이를 이행할 정교한 추진 전략도 요구된다. 유연안정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 아래 새로운 종류의 현금급여와 교육·훈련 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세정책도 강구되어야 한다. 또한 어떻게 국민과 변화에 대해 합의할 것인가에 대한 숙의 전략도 필요하다.
현 정부는 복지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구체적 청사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의 실용적 정책은 문제에 대한 단기적 대책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사회 분야 각 부처가 하는 나름의 열심은 공격수-미드필더-수비수 간 유기적이지 않은 기존의 분절 시스템을 공고히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많이 논의되는 인공지능의 활용은 취약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약자복지 시즌 2’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지방자치단체나 일선 공무원 혹은 빈곤정책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낡은 전술을 고집하며, 끊임없이 희생자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방관하는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과 지속가능성이 달린 복지국가 재설계에 대통령께서 직접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서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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