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제작=박상철 기자
SK그룹 지주사 SK(034730)의 수익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투자 전문 지주사를 표방하며 공격적으로 지분 투자에 나섰던 기존 문법과는 달리, 계열사 배당과 사업 부문에 의존하는 현금 흐름 중심 구조로 이동하는 모양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배당 수익과 현금창출력이 동시에 약화되며 외부 자금 조달 및 재무 리스크가 함께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SK의 별도 기준 매출은 3조6123억 원으로, 이 가운데 76.0%(2조7467억 원)가 IT서비스 사업에서 발생했다. 해당 사업은 ‘SK AX’로 재편된 이후 AI·클라우드 중심으로 성장하며 지주사의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SK AX는 같은 기간 영업이익 2098억 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38.6% 늘었다. 디지털 전환 수요 확대에 힘입어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하고 있지만, 이는 투자 성과가 아닌 사업 부문에서 발생한 수익이라는 점에서 지주사 구조 변화의 단면으로 평가된다.
SK계열 주요 배터리 기업실적. 제작=박상철 기자
◆ 2년 만에 배당 65% 급감…무너진 현금 창출력
투자부문의 현금 흐름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SK가 종속·관계기업으로부터 수취한 배당금은 2023년 1조3994억 원에서 2025년 4913억 원으로 2년 만에 약 65% 감소했다. 지주사의 핵심 수익원이었던 배당이 급감하면서 전체 현금창출력도 동반 하락했다.
실제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같은 기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연결 기준 EBITDA는 2023년 14조 원 수준에서 9조 원대로 줄었고, 별도 기준 역시 1조6000억 원대에서 9000억 원 수준으로 축소됐다. 차입금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EBITDA 감소 폭이 더 크게 나타나면서, 실질적인 재무 체력은 오히려 약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당 감소의 배경에는 단순한 실적 둔화가 아닌 구조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 안정적인 배당을 제공하던 SK E&S가 SK이노베이션에 흡수합병되면서, 지주사로 직접 유입되던 현금 흐름이 축소됐다. 합병 이후 SK이노베이션의 자금이 SK온 투자로 빨려 들어가면서 배당 여력이 급격히 약화됐고, 배당 축소·중단이 반복되며 지주사의 현금 창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처럼 내부 현금 창출력이 약화하자, SK는 새로운 방식의 현금 확보 구조를 가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SK하이닉스와 SK스퀘어의 자본 재편이다. 양사는 각각 수조 원 규모의 자본준비금을 이익잉여금으로 전입해 배당 재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자본준비금 8조7000억 원 가운데 약 4조800억 원을, SK스퀘어는 5조8900억 원을 각각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자본 구조 조정이 아니라, 지주사로 유입되는 현금 흐름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한다. 특히 감액배당은 일반 배당과 달리 세금 부담이 낮아, 지주사 입장에서는 보다 효율적인 현금 확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SK텔레콤-SK스퀘어 인적분할 내용. 제작=박상철 기자
◆ 회사채·파생까지 외부조달 의존 심화
문제는 이 같은 내부 수혈에도 불구하고 현금 흐름 개선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SK는 최근 차입금 상환을 위해 총 42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확보된 자금은 전액 제296-2회 및 제307-1회 회사채 상환 등 기존 차입금 리파이낸싱에 투입됐다. 시장에서는 지주사의 현금창출력(EBITDA)이 3년 새 반토막 나면서, 사실상 자체 수익으로 빚을 갚지 못하고 새로운 부채로 기존 부채를 돌려막는 ‘차환’ 구조에 갇혔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파생상품 기반 우발채무까지 더해지며 재무 리스크는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SK는 자회사 투자 및 재무 구조 조정 과정에서 주가수익스왑(PRS)과 총수익스왑(TRS) 계약을 활용하고 있으며, 관련 위험 노출 규모는 약 4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PRS는 회계상 자본으로 인식돼 재무지표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주가 변동에 따른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구조다. 특히 수수료 비용이 일반 차입 대비 높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EBITDA 대비 이자비용 배율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2023년 4배 수준이던 해당 지표는 최근 2배 중반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량 신용등급인 ‘AA+’에도 불구하고 회사채 금리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결국 현재 SK는 ▲IT서비스 사업을 통한 영업이익 ▲계열사 배당 ▲자본 재편을 통한 현금 확보 ▲외부 조달이라는 복합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과거 투자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파이낸셜 스토리’와는 다른 방향이다.
4200억원 규모 회사채 세부 사용내역. 제작=박상철 기자
SK는 지난 2015년 SK C&C와의 합병 이후 ‘한국형 버크셔 해서웨이’를 지향하며 글로벌 투자 확대에 나섰다. 그러나 최근 재무제표에서는 투자 성과보다는 현금 흐름 관리 기능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향후 지주사의 핵심 변수로 ‘배당 정상화’를 꼽는다. 특히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계열사의 수익성 회복 여부에 따라 배당 여력이 개선될 경우, 지주사의 현금 흐름 구조 역시 일정 부분 안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그동안 확장해 왔던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과정에 있다”며 “특히 상반기 중으로 포드와의 JV(합작법인) 파트너 체제 종결 등 굵직한 구조 재편이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차입금이 줄어들면 이자 비용이 즉각적으로 절감되는 만큼, 상반기 내에 약 5조4000억 원 규모의 자산 및 사업 정리가 완료되면 그룹 전반의 재무적 상황은 현재보다 한층 더 호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지주사 SK의 현금 흐름 개선 여부도 이 같은 계열사 차원의 리밸런싱 성과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42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며 ‘버티기’에 나선 지주사 입장에서는 상반기 예정된 자산 효율화가 실질적인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박상인 기자 qmfkdlxm91@naver.com 이동희 선임기자 prestige12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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