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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줌인 아웃] 그거 좋네, 좋아

한물간 스타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여행에 나선다는 설정은 할리우드의 고전 문법 중 하나다. 짐 자무시의 ‘브로큰 플라워’가 그랬고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도 마찬가지였다.

[백정우의 줌인 아웃] 그거 좋네, 좋아

영화 ‘부메랑’ 스틸컷.

한물간 스타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여행에 나선다는 설정은 할리우드의 고전 문법 중 하나다. 짐 자무시의 ‘브로큰 플라워’가 그랬고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영화의 주인공이 과거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만나는 건 소위 잘나가던 시절을 난봉꾼처럼 지낸 자신의 부끄러운 행적들이다. 하룻밤 유희와 풋사랑에 불과했고 서로가 암묵적으로 동의했을지라도,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을 소환할 때면 없는 앙금도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게 남녀관계 아니던가. 부적절하거나 부도덕하거나 불법적인 쾌락을 추적하는 여정이 블랙코미디와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이 남자 리프 호크는 다르다. 최고의 커리어를 달성하고 여전히 인기스타인 그에게 날아든 의문의 협박. 그를 촬영한 비디오를 공개하겠다는 얘기다. 무엇이 찍혔고 어떤 수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톱스타라는 사실이 핵심이다. 연예인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야 일상다반사. 톱스타일수록 즉 잃을 게 많을수록 되짚어야 할 상황과 관계가 부지기수일 터. 이런 류의 영화를 많이 본 관객 눈에 왠지 뻔하고 식상한플롯이 펼쳐지려는 찰나, 감독 조나 힐은 두 개의 삽화를 삽입한다. 거의 모든 관계에 개입하고 영향 미치는 평판의 위력과 그 대척에서 인간미로 맞서는 낭만이 그것이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부메랑’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어두운 이면을 이야기한다. 리프 호크가 할 일은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고의든 실수든 무의식이든)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거나 불이익을 입은 탓에 미워하고 증오하며 혐오할 만한 이들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 수영장 관리인에서부터 해고한 매니저(무려 마틴 스콜세지가 맡았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사과하지만, 마지막까지도 쉽지 않은 건 가족이다. 곧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건 좀체 쉽지 않다. 어릴 적 연예계로 진출하고 싶어 집요하게 떼쓴 아들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엄마는 스타가 된 아들의 후광을 이용하려다가 거리가 벌어진 것. 그래서인지 자기 가정을 꾸리기보다 “그런 기회가 내게 오면 항상 더 중요하거나 큰일이라고 생각한 다른 일을 선택”하곤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비디오 촬영자와 만난 리프는 기회가 되면 꼭 묻고 싶었다면서, 나를 증오해요, 내가 싫어요? 라며 힘들게 입을 뗀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을 좋아해요. 단지, 빈털터리라서요.”라며 황급히 자리를 뜨는 무기력하고 빈곤한 청년의 수치심 가득한 표정에서 우리 사회를 뒤덮은 자본주의의 짙은 그림자를 본다.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그런데도 영화가 끝내 놓지 않는 건 낭만이다. 앞선 1시간 20분이 돈과 평판의 아수라장이었다면, 일상 회복에 힘 쏟는 마지막 4분. 어쩌면 톱스타를 나락 직전에 건져 올리고, 영화를 건져 올리면서, (언젠가) 키아누 리브스의 삶도 건져 올렸을지 모를, 안전하고 인간미 넘치는 쇼트와 만난다. 영화 마지막 리프는 오래전 해고한 매니저 레드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근황을 주고받는 대화에 이어 “저도 오늘 별일이 없어요.”라는 리프 말에 건네는 레드의 화답. “그거 좋네, 좋아.”

영화는 자기의 행적으로 돌아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해 ‘별일 없는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우며 끝난다. 이제, 그는 구글에서 자기 이름을 검색하며 평판을 확인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 모질게 굴지도 않을 것이며 그리하여 단단해진 자아를 붙들고 살아갈 것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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