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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발행인칼럼] 별의 순간, 탐욕의 순간

지난해 늦가을쯤이다. TV를 보던 아내가 불같이 화를 냈다. '삼성전자, 마침내 10만전자 등극'이라는 뉴스 자막이 언뜻 보였다. 머리가 하얘졌다. 이내 잔소리가 쏟아졌다. 발단은 그보다 1년 전이었다. 그때도 뉴스를 보던 아내가 말했다. "우리도 삼성전자 주식 좀 살까."

[발행인칼럼] 별의 순간, 탐욕의 순간

지난해 늦가을쯤이다. TV를 보던 아내가 불같이 화를 냈다. '삼성전자, 마침내 10만전자 등극'이라는 뉴스 자막이 언뜻 보였다. 머리가 하얘졌다. 이내 잔소리가 쏟아졌다. 발단은 그보다 1년 전이었다. 그때도 뉴스를 보던 아내가 말했다. "우리도 삼성전자 주식 좀 살까." 8만원하던 주가가 5만원으로 추락했다는 보도를 본 뒤였다. 30년 가까이 전자산업을 취재해온 필자가 정색했다. "안돼, 삼성전자 곧 망할지도 몰라."

세상은 예측 가능한가. 요즘 자주 되묻는 질문이다. 지난 2년간 삼성전자의 드라마틱한 반전 때문만 아니다.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변화는 빠르지만, 어디로 튈지 모른다. 구글이 발표한 ‘터보퀀트’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 AI 가속기 메모리 사용량을 크게 줄여주기 때문이다. 엔트로픽의 새로운 AI 모델 ‘미토스’는 강력한 보안 취약점 탐색 기능으로 보안 솔루션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AI 때문에 각광 받던 산업이 AI 때문에 추락한다. 그것도 불과 몇 개월 만에 반전된다. 여기에 이란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처럼 자리 잡았다.

삼성전자가 올 1분기 57조원이라는 역대급 영업이익을 냈다. 모두 알다시피 AI 덕분이다. 2년 전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번번이 퇴짜 맞을 때만 해도 회사가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HBM 수요 때문에 범용 D램 공급 부족 사태가 빚어질지는 꿈에도 몰랐다. 57조원이라는 ‘꿈의 숫자’도 그렇게 별안간 작성됐다.

메모리 장밋빛 전망이 넘친다. 그런데 장담할 수 있을까. '5만전자'가 '20만전자'가 되는데 2년도 안 걸렸다. 반대 방향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이미 냉탕과 온탕을 오간 메모리 사이클을 경험적으로 안다. AI 혁명 때문에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이다. ‘터보퀀트’처럼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이 쏟아질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요즘 이런 미래에 대해 걱정할 겨를도 없다. 노조와의 갈등 때문이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자고 주장한다. 불발되면 총파업에 나서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노조 주장대로 하면 올해 성과급 규모가 40조원을 훌쩍 넘는다. 작년 삼성전자의 R&D 투자비 37조7000억원보다 많다.

가장 걱정되는 대목은 오늘의 탐욕이 미래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축소판이다. 잘 나가는 메모리도 있지만, 해외 기업에 한참 뒤진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부도 있다. 메모리 사이클에 따라 울고 웃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한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트너에 따르면 2024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다. 숱한 팹리스와 파운드리, 패키징 등으로 엮인 생태계가 두 배 이상 크다. 한국이 '반쪽짜리 반도체 강국'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냉정하게 보면 메모리는 '주연'도 아니다. PC 시대에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가, 스마트폰 시대엔 퀄텀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시장을 이끌었다. AI 시대에도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사실상 성장엔진이다. 메모리는 낙수효과를 본 측면이 크다. 삼성전자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부에 투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의 역대급 실적은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와 같다. 그간 지지부진했던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패키징 부분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TSMC나 퀄컴을 당장 따라잡지는 못해도 속도감 있게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AI 시대, 메모리 올인 전략의 위험을 줄이는 최선책이기도 하다.

탐욕은 또 다른 탐욕을 부른다. 지금은 노조지만 다음은 주주들이 나설 수도 있다. 더 많은 배당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래보다 오늘의 탐욕과 싸우는 삼성전자가 ‘별의 순간’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18일간 총파업으로 30조원 손실을 낼 수 있다'는 삼성전자 노조의 주장이 현실화된다면 정말 최악이다. 1년 뒤 '5만전자 복귀'라는 뉴스를 다시 볼 수도 있다.

장지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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